print

PLASTISPHERE - 바다의 청소부

PLASTISPHERE - 바다의 청소부



전 세계 바다 중에서도 가장 적막한 지역의 수면 위, 수십 억 개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소용돌이치며 돌아간다. 이 쓰레기들이 오염 구역을 넓혀간다. 하지만 바다는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괴물이다. 그리고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들 한없이 외진 지역에서도 이 인공의 쓰레기가 생물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 바다의 플라스틱 섬들이 미생물의 새로운 진화경로를 촉진하며 빈 바다에서 물만으로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음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바다의 쓰레기 섬 이야기는 이제 많이 알려졌다. 바다 위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모이는 커다란 수역이다. 과거에는 이 같은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1970년대부터 스티로폼이 대량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많은 플라스틱 제품들이 뒤를 이었다. 2012년 들어 바다에 떠도는 플라스틱의 양이 지난 40년 사이 100배 늘어났다고 과학자들이 발표할 정도였다. 지금은 바다의 제곱마일(1제곱마일은 2.59㎢) 면적 당 대략 4만6000점의 플라스틱이 발견된다고 유엔환경계획(UNEP)이 추산했다. 태평양에만 1800만t의 플라스틱이 떠돈다. 가장 큰 플라스틱 쓰레기 섬은 대략 텍사스 주 크기 만하다.

그 쓰레기 중 다수는 배에서 나왔다. 배들은 항구에서 먼 바다로 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버렸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국제해사기구(IMO)가 쓰레기 투기를 금지했다. 외항선들이 유발하는 오염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요즘엔 주로 강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온다. 플라스틱이 물가에 버려지거나 바람에 날려 강물을 탄다. 강 하류를 지나 결국 바다로 흘러든다.

폴리에스테르로 흔히 알려진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같은 고밀도 플라스틱이 용기 재료로 쓰인다. 이들 플라스틱은 햇빛으로 산화하거나 날씨로 인해 조각난 뒤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그뒤로는 이들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떻게 되는지 과학자들도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바다 위의 플라스틱이 1개라면 바다 밑에는 10개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추산한다.

나머지 플라스틱은 바다의 5대 환류(gyres) 중 하나에 갇히게 된다. 환류는 지구의 바람 패턴과 자전으로 생기는 세계적인 표층 해류 네트워크다. 환류에 갇힌 플라스틱은 여기저기 휩쓸리며 산산조각 난다. 그뒤 각 해류 중앙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트레이시 민서는 우즈 홀 해양연구소에서 쓰레기 섬의 특성을 연구하는 지구화학자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플라스틱 병이나 스티로폼 조각이 미국 동해안에서 환류의 중심부까지 도달하는 데는 6주가량이 걸린다.

“이들 해류는 강하고 빠르다. 거기서 벗어나 육지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다”고 그가 말했다. 작은 조각들이 중심부에 이르면 “그 자리를 맴돈다. 바람이 불어 30~60㎝ 높이의 파도가 일 경우에는 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다가 아주 잔잔하고 유리처럼 투명할 경우, 도료 파편이나 색종이 조각처럼 보이는 것들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태양과 파도의 작용으로 이들은 ㎜와 수십 ㎜의 조각으로 분해된다. 조각들은 그렇게 떠돌며 아주 오랫동안 존속한다.”

이 조각들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장소는 바다에서도 지극히 적막한 구역이다. 수심이 가장 깊고 수km에 걸쳐 섬이나 다른 표면이 전혀 없는 곳이다.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은 주로 작은 새우와 작은 식물들이다. 그들에게는 극히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영양분이 생기기만 하면 당장 임자가 나타난다.

이들 수십 억 개의 작은 쓰레기 조각들이 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던 곳에 표면을 형성했다. 그리고 바다에 표면이 새로 늘어날 때마다 귀하고 희소한 영양분이 축적되기 시작한다. 그런 표면이 없었다면 생물들이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영양분이다. 영양분들은 이들 플라스틱 조각의 표면에 얇은 막을 형성한다. 유리창 바깥쪽에 먼지 막이 형성되거나 자동차 보닛에 먼지가 쌓이는 식과 아주 유사하다.

과학자들이 최근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농축된 영양소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잠자던 미생물들이 깨어나 몰려든다는 점이다. “미생물들은 주변 환경을 민감하게 인지하며 영양분에 이르는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화학물질을 향해 나아간다. 한 줄기 영양분을 추적해 더 농축된 덩어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민서가 말했다.

먹을 수 있는 영양분으로 덮인 표면을 찾으면 이들 미생물은 그 플라스틱에 자리를 잡고 번식하기 시작한다. 현재 수천 종의 미생물이 바다의 플라스틱 조각 위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음이 조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그중에는 규조류가 많다. 이들 단세포 식물은 플라스틱에 있는 영양분을 섭취하고 햇빛을 쬐어 에너지를 얻는다.

따라서 이제 바다의 사막 한복판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물 군체가 성장하고 번식한다. 그리고 더 큰 동물들이 먹고 싶어하는 탄소와 기타 영양소를 이들 미생물이 생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매일 밤 지상 최대 규모의 생물 대이동이 일어난다. 시각 포식자(visual predators)는 먹이의 색깔 패턴과 행동을 토대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한다. 해가 떨어지면 시각 포식자들이 바다 깊은 곳에서 위로 헤엄쳐 올라온다. 수 많은 물고기와 기타 굶주린 생물들이 먹이를 찾아 물 위로 떠오른다.

먹을 수 있는 영양분으로 덮인 표면을 찾으면 미생물은 그 플라스틱에 자리를 잡고 번식하기 시작한다.
보통, 바다의 가장 깊은 곳에선 먹이를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플라스틱에 달라붙는 미생물들에겐 생물발광(bioluminesce) 능력이 있음을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플라스틱 군집에 관한 최근의 연구 결과다. 다시 말해 해가 지면 플라스틱을 좋아하는 미생물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시각 포식자가 빛을 발하지 않는 먹이보다 발광하는 먹이를 섭취할 가능성이 10배는 크다. 그런 본능이 가장 영양분 많은 먹이를 찾도록 도움을 준다. 과학자들이 쓰레기 섬 주변에 사는 물고기를 조사했더니 그들 중 10%의 내장에 플라스틱이 들어 있었다. 알고 보니 빛을 발하는 미생물 군집은 맛 좋은 먹잇감인 셈이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과학자들은 새로운 추론을 이끌어냈다. 플라스틱이 사이비 먹이 그물을 만들어냈다는 추측이다. 물고기의 위장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미생물의 최종 목표가 촉진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생물들은 물고기 위장 속에서 영양분을 무한히 공급받는다. 밖에서 는 구경도 못했을 양이다.

“이것은 미생물 입장에선 미끼를 깔아 놓고 표적을 기다리는 상황과 같다”고 민서가 말했다. “그들의 유전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내장 조직에 집단 서식하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민서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은 우즈 홀 및 해양교육협회 과학자 팀의 일원이다. 그들이 ‘플라스틱 생물권(plastisphere)’으로 명명한 이 새로운 해양 생태계를 더 잘 이해하려는 목적이다.

연구팀은 이들 미생물이 진화해 그 플라스틱을 목적에 이르는 수단으로 이용하게 됐다는 이론을 내세운다. 실험실에서 이들 미생물의 DNA 분석과 배양을 통해 그 가설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그 플라스틱이 해양 환경에 초래한 변화의 윤곽을 더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지금은 오염의 단기적인 영향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플라스틱이 현지의 동물종에 진화상 변화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흔히 생각하는 수준보다 장기적으로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입증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민서에 따르면 그들의 생각이 옳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

첫째, 미생물들이 플라스틱에 군집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물고기 내장 속으로 들어가려 시도하는 것을 과학자들이 본 적이 없다. 둘째, 플라스틱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과학자들이 발견한 주변의 다른 여느 미생물들과 다르다. 이는 어쩌면 그 해역에 그들 중 극히 소규모의 종자은행 개체군만 서식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위의 군집이 이들 특정한 미생물의 사상 최대 집단인 셈이다.

셋째, 미생물들이 플라스틱에 달라붙을 수 있어야 한다. 플라스틱의 표면은 왁스를 바른 듯 미끌미끌하다. 플라스틱은 소수성, 즉 물도 달라붙을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들 플라스틱에 달라붙으려면 계략이 필요하다”고 민서가 말했다. 모든 박테리아는 표면에 달라붙을 때 편모(flagellum, 아주 작은 촉수)를 이용한다. 먼저 달라붙을 수 있는지 표면을 테스트한 뒤 자신의 몸을 표면에 묶어주는 일단의 섬유를 내뻗는다.

끝으로, 다량의 단백질과 다당류를 분비해 자기 몸을 그 자리에 부착시킨다. 그러나 플라스틱 생물권에서 발견된 미생물 중 일부는 불과 5분만에 플라스틱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놈들은 그것이 플라스틱인 줄 알며 그것을 원한다”고 민서가 말했다. 이들 미생물의 섬유 중 일부는 오히려 플라스틱 표면과 똑같이 소수성을 지닌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다.

연구팀이 현재 특히 알아내고자 하는 유전자가 있다. 미생물의 뛰어난 군집형성 행동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들이다. 민서에 따르면 주된 의문은 다음과 같다. “플라스틱 위의 미생물들이 특정한 도태 과정을 거치면서 급격한 병목현상(개체군의 급격한 감소)이나 일종의 진화를 겪게 됐는가?”

과학자들은 이들 미생물이 어떻게 진화해 바다의 쓰레기 섬에 달라붙게 됐는지를 연구한다. 이를 통해 인간이 초래한 파괴를 되돌려 놓을 방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가 스스로 알아서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리는 행동을 자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해 과학자들은 다른 노선을 선택하고 있다.

“자연의 방식으로 대량서식하고 분해하는 데 적합한 유의 미생물”을 식별해낼 수 있을 경우를 민서는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제조업체들이 만들어내는 플라스틱에 미생물 유인 물질을 추가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플라스틱의 성질을 조작해 미생물들이 우리의 쓰레기를 먹어 치우도록, 그래서 우리 대신 바다를 청소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지구에 가장 유익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구에 수십억 개의 플라스틱을 내던지더라도 바다는 적응하고 생물들은 살 길을 찾는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2민희진 ‘노예 계약’ 주장에 하이브 반박 “논의 촉발, 보상 규모다”

3‘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4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

5이부진 표 K-미소…인천공항 온 외국 관광객에게 ‘활짝’

6목동14단지, 60층 초고층으로...5007가구 공급

7시프트업, ‘니케’ 역주행 이어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8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6월 26일 출시 확정

9‘보안칩 팹리스’ ICTK, 코스닥 상장 도전…“전 세계 통신기기 안전 이끌 것”

실시간 뉴스

1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2민희진 ‘노예 계약’ 주장에 하이브 반박 “논의 촉발, 보상 규모다”

3‘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4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

5이부진 표 K-미소…인천공항 온 외국 관광객에게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