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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가고 있는 길

삼성그룹이 가고 있는 길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입원한 이후 시장의 반응은 의외다.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리스크가 거의 부각되지 않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경영권을 놓을 때를 전후해 애플이 받았던 충격과 사뭇 대비된다.

삼성은 오히려 외국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주문이 늘고 주가도 뛰었다. 이 회장의 입원 일주일 새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8% 이상 늘었다.

삼성식 시스템 경영의 힘이란 해석이 나온다. 한마디로 총수가 바뀐다고 그룹 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이 적절한 역할 분담을 통해 체계적으로 굴러가는 조직 운영의 틀을 갖춰놨다는 이유에서다. 경영권 3세 승계가 이뤄지면 경영이 더욱 투명해지고 주주친화적이 될 것이란 기대도 가세한다.

사실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다른 재벌 그룹들과 다른 경영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개별회사의 경영에 시시콜콜 관여하지 않고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겼다. 이 회장은 될성부른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크도록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필요하면 외부 인재도 영입했다. 그렇게 요직에 오른 CEO와 임원들에겐 과감한 인센티브를 줬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시장 공략 의지를 피력하면서 “봉급쟁이 부호가 나오도록 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룹 안에서도 “설마”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진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연봉을 수십억원씩 받는 전문경영인이 속속 나왔다. 거액 연봉과 퇴직금이 쌓여 퇴직한 뒤로는 수백억원 대의 재산가도 탄생했다. 그 대신 능력이 예전같지 않은 사람, 사고나 비리를 저지른 사람, 끼리끼리 파벌을 조성한 사람 등은 과감하게 솎아냈다. 그렇게 물러나는 사람들도 군말이 없었다. 과거 잘 나갈 때 충분히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문경영인들에 대한 거액 연봉이 오너의 금고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재들 스스로 창출한 가치의 결과물이다. 이 회장은 이를 직시했다. 인재들이 열심히 일해 회사 가치를 키우도록 하고, 그중 일부를 과감하게 그들에게 돌려줘야 결과적으로 이 회장을 포함한 주주들도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당연한 것 같지만 이를 인식하고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재벌 그룹의 적잖은 총수들은 임직원에 대한 보상을 자기 돈 나가는 것으로 착각한다. 상장회사가 되고도 회사 돈과 자기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너가 많다. 그러다보니 인재에 대한 보상에 인색하다.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거나 일할 의욕을 잃으면 회사의 성장은 정체된다. 일부 오너들은 비자금 조성과 횡령 등에 걸려 고초를 치르기도 한다. 능력이 떨어지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쉽게 제거하지도 못한다. 자신의 약점이나 비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일찍이 삼성그룹이 가야할 기업지배구조의 롤모델로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그룹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에릭슨·사브·SEB 등 계열사를 거느린 발렌베리는 주식 시가총액이 스웨덴 증권거래소의 절반, 매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거대 그룹이다.

150년 역사의 발렌베리는 창업자 가문에 의해 경영권이 5대째 승계돼 내려오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승계 전략은 ‘강인한 의지와 국제적 안목을 가진 유능한 경영자’를 표방한다. 또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 등으로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도록 가르친다.

그러면서 황제식 독단경영의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한다. 가문의 승계자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일상적 경영 권한을 전문경영인들에게 과감하게 이양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승계자는 지주회사를 통해 그룹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고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리면서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을 쏟는다. 그러다 계열사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지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치달으려 하면 가문이 직접 경영에 개입한다.

발렌베리가문의 경영권 대물림 전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있다. 스웨덴 국민의 발렌베리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그룹이 가고자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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