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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 국가에서 배우는 ‘초저금리 생존법’ - 日 저축, 美 펀드, 英 연금이 탈출구

제로금리 국가에서 배우는 ‘초저금리 생존법’ - 日 저축, 美 펀드, 英 연금이 탈출구

제로금리 국가에서 배우는 ‘초저금리 생존법’

우리나라 예금 금리가 1%대에 진입했다. 전례가 없던 일이니 당황할 만하다. 대체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걱정이다. 사실 초저금리는 일종의 선진국 현상이다. 우리에 앞서 많은 나라가 상당 기간 제로금리 시대를 겪었거나 지금도 거기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1999년 2월 단기 금융시장 금리를 거의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낮추면서 제로금리 시대를 선언했다. 이듬해 2000년 8월 잠시 제로금리를 벗어나기도 했으나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2001년에 다시 제로금리로 돌아갔다. 이후 2006년 7월 일본은행이 콜금리를 0%에서 0.25%로 인상하면서 다시 한번 탈출을 시도했으나 2007년 다시 0% 시대에 진입했다. 사실상 1999년 이후 15년 이상 제로금리 정책을 이어가는 셈이다.




일본에선 저축>외환거래>주식 투자미국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제로금리 국가가 됐다. 미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초저금리 정책을 2008년 말부터 6년째 이어오고 있다. 유럽은 더하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 6월 초마이너스 금리 카드를 꺼냈다. 기준금리를 0.25%에서 0.15%로 낮추는 동시에 예치금리를 0%에서 -0.1%로 낮췄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의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필요 이상으로 돈을 맡기면 벌금을 물린다는 의미다. 일종의 현금 보관 수수료다.

투자자 입장에서 저금리는 고통스럽다. 말이 좋아 1%대지 물가를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선진국은 제로금리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식적으로 초저금리 시대에 예금은 큰 매력이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금융자산을 은행에 저축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0.5%(5년 만기)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 가계 금융자산 중 현금 및 예금의 비중은 53%에 달한다. 그나마 떨어진 수치다. 한때 60%을 넘어선 적도 있다.

1990년대 이후 부동산 버블 붕괴에 따른 급격한 자산 가격하락 겪으면서 불안감이 커진 탓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각각 11.9%, 7.3% 상승했던 일본 부동산 가격은 1990년대 0.2% 감소했고, 2000년대에도 4% 가까이 줄었다. 버블 붕괴 전까지 일본에서 부동산은 최고의 자산 증식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일본 가계 자산 구성 중 부동산과 같은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7.9%에서 2012년 39.9%까지 떨어졌다. 저성장에 따른 실물 경기 침체와 맞물려 일본인의 안전 지향성은 더욱 강해졌다.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일본 가계 금융자산의 금융투자상품(주식·채권·펀드 등)비중은 16.1%로 2003년 11.4%에서 조금씩오르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예금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다. 돈을 좀 쓰라고 금리를 낮춘 건데 일본 국민들은 오히려 현금을 묶어둔 셈이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주식 투자에 큰 관심이 없다. 최근 많이 오르긴 했어도 일본 닛케이지수는 여전히 과거 최고치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인이 결코 기관투자자를 이길 수 없다는 인식도 강하다. 주식에 대한 관심이 덜하니 펀드·채권 역시 인기가 별로 없다.

그나마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게 ‘FX(외환)마진거래’다. FX마진거래는 달러·엔·유로 등 서로 다른 통화의 환율 변동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파생 상품이다. 일본에선 1998년 처음 도입됐는데 ‘와타나베 부인’이란 용어가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와타나베는 한국의 김씨나 이씨처럼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씨다. 많은 일본 주부들이 FX마진거래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외환투자자들을 통칭하는 용어가 됐다.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스스로 세계 경제와 환율을 공부하고, 흐름을 예측해 FX마진거래에 나선다.

FX마진거래의 가장 큰 특징은 고위험·고수익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레버리지가 10배에 달한다. 계약 금액의 10%만 증거금으로 넣으면 된다. 이런 효과 때문에 환율이 1%움직이면 수익 역시 10% 움직인다. 안정지향적인 일본에서 이렇게 위험이 큰 FX마진거래가 활발한 게 의아하지만 일본인 대부분은 레버리지를 낮게 가져가며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FX마진거래 레버리지 상한은 25배로 우리나라보다 높지만 투기 성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덜하다.





이자 수입 의존하는 노년층 타격 우려미국은 투자 패턴이 일본과 정반대다. 가계 금융자산 중 현금 및 예금 비중이 꾸준히 10% 초반에 머문다. 대신 주식이나 펀드 투자가 활발하다. 금융투자상품 비중이 53.3%로 일본의 3배, 한국의 2배 수준이다. 집집마다 펀드 2~3개쯤은 보유하고 있는데 여유자금이 생기면 펀드에 넣어뒀다가 필요할 때 환매해서 쓴다.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비중도 33.2%로 전 세계에서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융위기 이후 저축 비중이 조금씩 늘고있긴 해도 큰 틀에서 미국인의 금융투자 사랑은 여전하다. 단, 주식 투자를 할 때도 시세 차익을 노리는 단기형 투자보다 배당수익에 중점을 두거나 장기적으로 투자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배당수익률이 좋고, 안정적인 회사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은 금융위기 이후 더욱 강해졌다.

연금의 본고장답게 유럽은 금융자산 중 보험과 연금의 비중이 매우 크다. 영국의 경우 현금·예금 비중이 27.8%, 금융투자상품이 12.5%에 머무는 대신 연금·보험의 비중은 1995년 이후 계속 5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유난히 금융투자상품 비중이 낮은 게 눈에 띄는데 가계에서 연금·보험에 돈을 넣으면 펀드나 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되기 때문에 실제 금융투자상품 비중은 이보다 더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당장의 투자 수익보다는 노후에 받을 수 있는 기대 수익에 더 중점을 두고 금융자산을 배분하는 경향이 강한 것만은 분명하다.

일본은 저축, 미국은 주식이나 펀드, 영국은 연금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러한 투자 성향은 저금리 시대에만 나타난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고금리 시기에도 예로 든 세 나라의 투자 성향은 거의 유사했다. 각국마다 선호하는 투자 방식이 있고, 이는 금리의 높낮이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연금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긴 해도 우리나라 가계 금융자산 중 보험과 연금의 비중은 아직 30%에 못 미친다. 미국·일본과 거의 비슷하지만 한국의 경우 자산에서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5%에 달한다. 집(부동산)을 제외하면 금융자산 자체가 많지 않고, 금융자산 중에서도 노후를 준비하는 비중이 작다는 얘기다.

초저금리 추세가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본다면 고정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이자 수입에 크게 의존해왔던 노년층이 특히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이나 배당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이 가계로 흘러가고, 이렇게 소득기반이 확보돼야 가계가 적절한 저축과 연금 등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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