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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MATE - “기후변화 이미 닥쳤다”

CLIMATE - “기후변화 이미 닥쳤다”

폴란드 중부 포즈난의 열기관 공장 굴뚝에서 연기구름이 피어오르고 있다.
마셜 제도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사라지고 있다. 밀려오는 태평양의 바닷물이 해변의 모래를 쓸어가고 식수를 오염시킨다. 지속되는 가뭄으로 작물이 말라 죽는 한편 대규모 홍수로 주민 수천 명이 집을 잃었다.

마셜 제도의 토니 드브럼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삶이 전쟁터 같은 형국이 돼간다. 우리에겐 기후변화가 ‘강 건너 불’이 결코 아니다. 이미 이곳에 들이닥쳤다.” 드브럼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관리 수백 명과 전문가, 시민이 9월 하순 기후관련 행사를 위해 뉴욕시에 모였다.

9월 21일에는 약 60만 명이 맨해튼의 웨스트 사이드 거리를 행진했다. 사상 최대의 기후 관련 시위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할리우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빌 드 블라지오 뉴욕 시장 등의 저명인사도 행진에 참여했다. 런던, 파리, 마드리드 등 세계 도처에서도 소규모의 기후 행진이 열렸다. 22일부터는 뉴욕시 기후주간이 시작됐다. 저탄소 경제에 관한 기업의 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연례행사다. 23일에는 5년 만에 최대 규모의 유엔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번 정상회의는 식어가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필리핀 마리키나시의 거리가 태풍 풍웡이 몰고 온 폭우로 물에 잠겼다.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싸움에서 중대한 전환점에 이르렀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체결된 최초의 국제 협약인 1997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가 거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2년 전 효력이 만료됐다(미국은 교토의정서에 서명했지만 비준하지는 않았다). 후속 협약을 마련하려 했지만 2009년 코펜하겐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2015년 12월 파리에서 새로운 협약을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에 따라 협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감이 커지고 있다.

지구의 기온은 21세기 말 산업혁명 이전보다 4℃ 높아질 전망이다. 기후과학자들에 따르면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온난화 폭이 2℃ 아래로 억제돼야 한다.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 지역의 새우 양식장이 가뭄으로 말라붙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유엔 기후변화협약사무국(UNFCCC)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사무총장이 최근 기자들에게 말했다. “점진적인 조치 같은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아주 획기적인 변화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주재하는 이번 정상회의는 국제기후협약의 세부 내용을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보다는 각국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적극적인 국내 전략을 채택하고 청정에너지 기술에 투자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다음 그런 계획이 내년 파리 정상회의에서 공식 협약안으로 통합될 것이다.

반기문 총장의 기후지원팀을 이끄는 셀윈 하트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세계가 기후변화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다른 나라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국이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약속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9월 23일 유엔 기후정상회의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125여 개국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진정한 책임은 그중에서 일부 국가가 떠맡을 수밖에 없다. 가장 유해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세계 전체 배출량에서 약 45%를 차지하는 중국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그외 유럽연합(EU),인도, 러시아, 일본, 브라질도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꼽힌다.

기후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기후전략이 실질적인 효과를 나타내려면 세계 각국이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전기, 운송, 연료 부문에서 저탄소 기술에 전례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 둘째, 이산화탄소 배출에 가격(a price on carbon dioxide emissions)을 매기는 것이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말한다. 그렇게 하면 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사용하는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다양 한 수준으로 이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이런 접근법이 세계적 표준으로 정착되지는 않은 상태다.

유엔 지속가능 발전해법 네트워크(SDN) 산하 ‘대규모 탈탄소화의 길’ 프로젝트를 이끄는 에마뉘엘 게린은 무엇보다 기술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필요한 저탄소 기술 중 다수가 현재로선 화석연료 의존 에너지 시스템을 대체할 정도로 성숙했거나 저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기술이 적시 적소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하려면 대규모 연구 개발 응용이 필요하다”고 게린은 말했다.

그의 프로젝트 팀에 따르면 예를 들어 미국과 중국은 석탄·천연가스를 사용하는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궁극적으로 ‘탄소 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CCS)’ 기술을 채택해야 한다. 현재로선 미국도 중국도 상업용 규모의 CCS 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현재 개발 중인 설비를 갖추려면 하나에 1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 인도는 부상하는 중산층의 수요 증가에 부응하기 위해 태양력과 풍력 같은 신재생 에너지에 크게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신재생 에너지는 화석연료에 비해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실용화하기가 여전히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추가적인 청정에너지 투자에 모두 합해 36조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지난해 세계가 저탄소 기술에 지출한 금액의 약 250배다.

“오늘 우리가 취하는 조치는 우리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더 많은 기회와 번영, 품위로 이끄는 문을 열어젖힐 수 있습니다. 함께 헤엄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라앉고 맙니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유엔은 신흥시장이 이런 투자를 시행하고 지구온난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이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공공·민간 자금으로 조성되는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은 연간 1000억 달러를 개도국에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설립 5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그 기금은 비어 있다. 지금까지 선진국 중 독일만이 4년에 걸쳐 10억 달러라는 상당한 액수의 기부를 약속했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듭니다. 기후변화를 무시하고 우리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계속 회피하고 얼버무리는 것이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 존 케리 미 국무장관
한편 이번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GCF에 앞으로 최대 1억 달러(약 1040억 원)까지 기여를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기후변화 협약 체제 하에서 중추적 재원 기구로 출범한 GCF에 대한 조속한 재원 충원은 2015년 새로운 기후 체제가 출범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므로 각국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며 1억 달러 기여 계획을 밝혔다. 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한 우리 정부는 이미 5000만 달러를 공여하기로 한 만큼 추가 5,000만 달러를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조치인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경제 전반이 탈(脫)화석연료화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기후정책 전문가들은 말한다.

세계은행에서 기후변화 특사로 활동하는 레이철 카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탄소 배출권 거래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경제를 개조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공공부문은 경제를 통해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확실하고도 지속적인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다.”

국제 투자자들은 유엔 기후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정부 대표들에게 보낸 9월 18일자 서한에서 그런 의사를 천명했다. 자산 규모가 모두 합해 24조 달러에 해당하는 기관투자 단체 240여 개는 각국 정부에 저탄소 기술에 CLIMATE투자하도록 경제적 인센티브를 확대하기 위해 탄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지금까지 약 40개국과 20개 지방 정부가 탄소 배출권에 가격을 매기거나 매길 계획이다. 현재로선 EU의 시스템이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탄소 배출권 거래제다. 미국의 경우 전국적인 배출권 거래 시스템 채택에 실패했고, 현재 캘리포니아주와 동북부의 9개 주가 보다 규모가 작은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편적인 노력은 자본시장을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데 충분치 않다고 국제배출권거래협회의 국제정책 담당인 제프 스워츠가 말했다. 거대 석유·천연가스 회사들로 구성된 비영리 업계 단체인 국제배출권거래협회는 세계 각국의 탄소 시장을 서로 연결해 세계적인 시스템을 만들라고 촉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조화가 이뤄질 경우 탄소 배출을 더 많이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에너지 정책도 한층 더 비용 효율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고 스워츠가 말했다. 최근 국제배출권거래협회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과 손잡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다양한 대안을 검토했다. 그 결과는 2015년 파리 세계 기후변화협약안에 탄소 시장 협동조합을 포함시킬 목적으로 이번 정상회의에서 발표됐다.

일부 기후 관련 운동가들은 이런 유엔 후원 행사가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결과를 제어하는 문제에선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의미 있는 배출 감축으로 이어지지 못한 오랜 협상 과정을 계속 끌어가기보다 화석연료 회사들을 직접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석유·천연가스·석탄 회사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고, 정부가 화석연료에 보조금과 규제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한 세계는 기후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운동가들은 최근 온라인 매체 VICE에 말했다.

환경운동단체 라이징 타이드 노스 아메리카의 스콧 파킨 대표는 VICE에 이렇게 말했다. “대규모 환경단체들은 기존의 정치 시스템 안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면 일이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정치 시스템이 환경단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유엔 주도의 협상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지지부진한 과정에 피로감을 피력했다. 환경연구기관인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앤드루 스티어 대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파리 정상회의가 성공하리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주류 환경단체들은 낙관적이다. 지구온난화의 과학적 증거가 늘어나면서 관리들과 대중 사이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21일의 ‘기후행진’ 시위 참가자 수는 주최측의 예상보다 여섯 배나 많았다.

스티어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몇 년 전보다 기후협약 협상에 더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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