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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인터넷 대세론은 시기상조

사물인터넷 대세론은 시기상조

사물인터넷이 일반화되면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자연에선 서로 전혀 다른 종이 의사소통을 나누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갯가재와 기러기가 대화를 나눈다고 해보자. 이 두 종은 어느 정도 생활 환경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혀 다른 생태 속에 살고 있으며 인식 기반도 완전히 다르다. 아마 똑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해도 두 종은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할 말도 없을 것이다.

기계의 세계에선 어떨까? 가령 공기청정기와 오븐이 서로 대화를 나눈다면 서로 무슨 얘기를 할까? 허튼 소리가 아니다. 최근 세계가전박람회(CES)에서 화제로 떠오른 사물인터넷 기술이 일반화되면 그런 일이 일어날 듯하다. 윤부근 삼성전자 가전사업부문 사장은 이 자리에서 “5년 안으로 모든 제품이 사물인터넷화할 것”이라며“지금으로부터 5년 안에 공기청정기, 오븐 할 것 없이 모든 삼성 하드웨어가 사물인터넷이 된다”고 밝혔다. “사물인터넷은 우리 삶을 혁명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공기청정기가 인터넷을 통해 주변 사물과 연결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 휴대전화를 통해 어디에서나 공기청정기를 켜거나 끌 수 있을 것이다. 측정한 공기질 데이터를 휴대전화로 보내주거나 통계로 만들어 서버에 저장할 수도 있겠다. 그 다음엔 뭐가 더 가능할까? 평범한 상상력으로는 여기서 더 나아가기가 힘들다. 공기청정기와 오븐이 연결된다 한들 그 두 기기가 서로 어떤 데이터를 주고 받고,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지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사물인터넷에 열광하지만, 아무도 사물인터넷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삶을 바꿔놓을지는 말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사물인터넷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전문가들 가운데 그런 구체적인 사항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는 “인터넷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하며 “곧 몸에 착용하는 수많은 IP 주소들, 즉 아주 많은 기기와 센서가 등장한다”고 내다봤다. “방 안의 모든 물건이 사람과 상호작용해 승인을 받아 작동하는 ‘동적인 존재’가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이를테면 방 안의 청소기, 책상, 에어컨 등이 사람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상상의 영역에 남아 있다. 슈미트 회장 역시 결국은 “매우 매우 흥미롭다”고 말할 뿐이다. 벤처투자업체 PAG&파트너스 박성혁 부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사물인터넷이 “다소 모호한 용어”라고 지적했다. “무인항공기, 건강관리 등 사물인터넷과 안 어울리는 키워드가 없다”는 것이다. 박 부대표는 “이제는 구체적인 사례가 나와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구호로만 외치다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사물인터넷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CES 2015에서 사물인터넷이 화두로 떠오르자 언론은 그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설명하느라 열심이다. 그러나 여러 언론이 제시하는 사례를 보면 정말 그렇게 대단한 기술인지 의문이 든다. 이를테면 현관문이 자동으로 집 주인을 인식해서 문을 열거나 잠근다든지, 냉장고가 이용자의 취향과 냉장고 속 내용물을 바탕으로 요리를 추천하고 레시피를 보여준다든지 하는 정도다. 이런 미래는 대부분 이미 구현돼 있거나, 아니면 사물인터넷만으론 실행이 불가능하다.

열쇠 없이도 집 주인을 인식하는 잠금장치는 이미 시중에 나와 있다. 2013년 미국에서 출시된 키보(Kevo)는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집 주인의 스마트폰이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잠금장치를 해제한다.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에 전자 열쇠를 전송해주거나 특정인의 출입을 일정 시간 동안만 허가하는 기능도 있다. 스마트폰을 열쇠 대신 이용하는 또 다른 기기 고지(Goji)의 경우 방문객의 사진을 찍어서 실시간으로 스마트폰에 전송해준다. 훌륭한 사물인터넷 기술이지만 미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정도 기술은 이미 수 년 전에 구현됐다. 한국에서도 원하기만 하면 당장 해외 웹사이트에 주문해서 현관에 설치가 가능하다.

다른 사례는 어떨까? 냉장고가 이용자의 취향과 내용물을 분석해서 요리를 추천하려면 고도의 인공지능이 필요하다. 일단 그런 인공지능이 갖춰진다면 사물인터넷은 부차적인 기술에 불과하다. 미 데이터분석업체 프리럿의 마크 제피 CEO는 “사물인터넷 기기가 수집하는 막대한 데이터를 이해하는 인공지능 기술 없이는 사물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물인터넷이 일반화된다면 우리의 걸음걸이부터 식습관, 주변 환경과 관련된 사소한 정보부터 심지어 냉장고 문을 여닫는 횟수까지도 데이터로 활용된다. 그런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인공지능이 없다면 결국 사물인터넷은 휴대전화로 난방기를 켜고 끄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생활방식
사물인터넷이 진정 ‘삶을 혁명적으로 바꿀’ 기술이 되려면 그저 기기를 서로 연결한다는 기술적인 발전에 그쳐선 안 된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구체적인 비전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발전을 참고할 만하다. 스마트폰은 단지 인터넷에 연결되는 휴대전화라는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서 우리의 생활방식을 크게 바꿔놓았다. 이는 애플, 구글 등 혁신적인 업체들이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그 기술에 어울리는 생태계를 구축한 덕분에 가능했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인터넷 작업 대부분은 모바일로 옮겨갔다. 모바일에 적합한 새로운 기술과 소프트웨어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사물인터넷 분야에서 업계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않는 듯하다. 윤 사장은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TV가 집안 내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시작이 바로 오는 2월 출시되는 삼성전자의 새 SUHD TV와 그 TV에 탑재될 운영체제 타이젠이다. 거실에 놓인 대형 TV와 타이젠을 사물인터넷의 허브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LG전자 역시 3월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 ‘웹OS 2.0’이 탑재된 신형 TV를 내놓는다. 이 역시 ‘웹OS 2.0’을 기반으로 가전제품 제어가 가능한 허브 기능을 한다.
 제로TV가구 증가에 대비해야
프랑스 회사 콜리브리가 내놓은 스마트 칫솔. 이를 닦는 동안 얼마나 많은 치석이 제거되는 지를 감지하는 센서가 장착됐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는 현대 사회에 TV를 중심으로 구축한 사물인터넷 생태계가 유효한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TV 출하량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전 세계 TV 출하량은 2011년 2억5534만 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매년 감소했다. 2012엔 2억3832만 대로 전년 대비 6.7% 줄어들었고, 2013년에도 2억2430만 대로 전년 대비 5.9% 감소했다. TV 출하량이 감소하는 이유 중 하나는 TV를 구입하지 않는 ‘제로TV가구’의 증가다. 닐슨리포트에 따르면 2012년 미국의 제로TV가구는 500만 가구로 2007년 200만 가구에서 크게 늘었다. 이 보고서는 ‘젊고 독신이며 아이가 없는’ 것을 제로TV가구의 특징으로 꼽았다.

전통적인 가구와 달리 이들은 TV를 필수품으로 여기지 않는다. 스마트폰, 태블릿PC을 통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폭발적 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넷플릭스다. DVD 대여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8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1월 30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2015년 1월 40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전 세계 가입자 수가 5000만 명을 넘어섰다. 넷플릭스의 성공을 지켜본 기존 방송업체들도 하나둘씩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준비한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더욱 활성화되고 접근 가능한 매체가 다양해지면 TV 수요는 그만큼 감소할 수밖에 없다.

사물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 민감한 세대 역시 대체로 제로TV가구와 겹치는 젊은 독신 세대다. 미 보험업체 시티즌의 셰 파이크 고객경험 담당 이사는 현재 사물인터넷 기술이 이용자 삶에는 관심 없고 지나치게 기술중심적이라고 비판했다. 파이크 이사는 “20~30대 젊은 세대는 소득이 높지 않고 월세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물인터넷 기기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며 사물인터넷 기술이 이용자의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0~30대는 원룸, 오피스텔 등 좁은 공간을 빌려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종종 집을 옮기기 때문에 집을 꾸미는 데에 큰 욕심이 없다. 가정용 제품에 많은 돈을 쓰지도 않는다. 저렴한 조립식 가구를 판매하는 이케아가 젊은 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다.

사물인터넷의 가능성은 거의 무한하다. 생활 속 모든 사물을 연결하는 기술 자체는 가히 혁신적이다. 문제는 그 광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무엇을 건져올리느냐다. 황병선 PAG&파트너스 대표가 마이크로소프트 온라인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다른 산업에서 인터넷으로 연결했을 때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영역이 어디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무엇에 연결해서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방향성 없이 사물을 연결하는 데만 급급한다면 사물인터넷은 칫솔질 방법을 교정해주는 칫솔, 다이어트 식단을 권하는 냉장고 정도밖에 남기지 못하고 다음 트렌드에 밀려날지도 모른다. 5년 전 CES 2010에 불어닥쳤던 3D 열풍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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