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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리콴유 시대의 싱가포르

포스트 리콴유 시대의 싱가포르

LEE KUAN YEW 1923~2015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가 지난 3월 23일 타계했다. 리 전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대단한 나라 중 하나의 부상을 이끌며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히 관리한 인물이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의 서거는 시기를 잘 맞춘 듯하다. 싱가포르는 오는 8월 독립 50주년을 맞는다. 이제 그 축하행사는 바위를 깎아 세운 작은 도시를 혁신적 글로벌 국가로 성장시킨 한 남자의 일생에 바치는 국가적 헌사가 될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과 냉전의 거센 바람을 타고 식민지를 갓 벗어난 나라를 원자재 기반 경제에서 새롭고 역동적인 산업 중심지로 변모시켰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무함마드, 태국의 푸미폰 아둔야뎃 같은 지도자들과 함께 중앙집권화를 통해 경제개발을 이끌며 동남아 국가의 전반적인 발전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했다.

특히 싱가포르에선 그 효과가 놀라웠다. 산업 발전, 도시화, 빈곤 퇴치, 교육 증진이 일거에 이뤄졌다. 그런 성공 신화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강철 같은 결의와 작은 도시국가라는 사실 때문인지 모른다.

그 결과 갈수록 자신만만해지는 거대한 중산층이 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중산층이 현재 2억 명에서 2030년 1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나리라 내다본다. 그들은 리 전 총리가 현재의 싱가포르를 만들기 위해 채택한 가부장적이고, 하향식이며, 중앙통제식인 통치 모델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리 전 총리의 서거로 싱가포르 국민은 내심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다. 강단 있는 건국의 아버지를 잃었을 뿐 아니라 싱가포르가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믿고 의지하며 순종했던 엄격한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동안 받은 훈련과 교육을 바탕으로 스스로 삶을 향상시키고 이전보다는 좀 더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싱가포르는 ‘정상적인’ 정치로 서서히 전환할 수 있다. 서로 경쟁하는 정당과 지도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가 최고라고 논리 정연하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체제가 돼야 한다.

사실 이런 전환은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2011년 총선에서 야당 노동당(WP)이 처음으로 의회 전체 87석 중 6석을 차지했다. 외부에선 리 전 총리가 창당한 인민행동당(PAP)의 압도적인 지배가 지속된 것으로 보였지만 싱가포르 국민에겐 정치지형 변화의 서곡으로 느껴졌다. 그런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싱가포르에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PAP 지도층의 일부는 옛 시절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전철은 피해야 한다. 집권당 말레이시아민족연합기구(UMNO)는 현재 초보수주의 노선으로 회귀하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선 글로벌한 감각을 가진 PAP 지도부가 새로운 방향을 찾아 포스트 리콴유 시대의 정치를 혁신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아들 리셴룽 총리를 포함한 지도부는 핵심 정책이 한 천재의 비전보다는 국가적 합의에 바탕을 두는 ‘정상적인’ 나라로 싱가포르를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싱가포르의 성장은 약간 더뎌지고 지정학적 역할은 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혼돈으로 빠져드는 게 아니라 진화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리 전 총리의 유산을 기려야 마땅하다. 그의 성공으로 싱가포르는 번영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게 그의 진정한 유산이다.


[필자 어니 바우어는 미국 정책연구기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동남아시아 전문가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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