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명화 속 음식 이야기 (5) - 브리오슈가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이었다

명화 속 음식 이야기 (5) - 브리오슈가 프랑스 대혁명의 발단이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브리오슈가 있는 정물화’ 1763,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와 부셰(Francois Boucher, 1703~1770)의 그림은 고상한 것에 대한 동경을 자극한다. 손을 댈 수도 없고 감히 다가설 수도 없도록 반들반들 윤이 나고, 바람에 날려 천천히 떨어지는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우아한 것들 말이다. 부셰의 그림은 우리에게 평범한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에 흠씬 젖어볼 수 있게 해준다.

부셰는 루이 15세 통치 시절에 베르사유 궁에서 활약했던 궁정화가이다. 유럽에 가볼 기회가 없던 어린 시절에 서양의 궁정생활에 대해 풍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 만화는 단연 ‘베르사유의 장미’였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왕과 왕비, 궁전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과 희생, 그리고 신분을 넘어선 애틋한 사랑 등 궁정비극의 진수를 보여준 고전만화라고 할 수 있다. 부셰는 프랑스 대혁명 직전, 그야말로 수려함에 있어 최고조를 띠었던 귀족문화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잔 에티안 료타르 ‘초컬릿 걸’ 1743~5, 양피지에 수채.
부셰를 18세기를 대표하는 대가로 선뜻 꼽는 이는 무척 드물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다가 죽어서야 이름을 날리는 여느 화가들과는 반대로, 부셰는 살아있을 때 최고 영예의 자리를 누렸지만, 죽어서는 아예 잊혀져버렸다. 시민혁명의 역사가 궁정적인 취향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이 죽으면 왕의 사랑을 듬뿍 받던 후궁이 갈 곳 없어지는 것처럼 부셰의 뛰어남도 평가되지 못한 채 그냥 파묻혔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의 예술세계가 재조명되고 있지만, 여전히 옛 명성을 회복하지는 못하는 셈이다.

부셰는 모르더라도 루이 15세의 사랑을 받았던 마담 퐁파두르의 이름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희빈쯤 되는 야심만만하고 어여쁜 여인이었다. 부셰는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를 몇 점 그렸는데, 매우 아름답게 그렸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여인이었을지 환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퐁파두르 부인은 베르사유 궁에 들어간 지 5년 만에 미모를 잃었다고 전해진다. 궁정생활이 그만큼 견디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녀의 장밋빛 뺨은 푹 꺼져 광대뼈가 드러나게 되었고, 편두통과 신경증에 내내 시달리다가 43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화려한 궁전의 이면을 말해주는 것 같다.

부셰는 귀족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장식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그는 베르사유 궁전의 세부 장식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주는가 하면, 귀족들을 위한 오페라 무대 감독과 연출까지 맡았다고 한다. 무대 배경으로 쓰이는 나무나 바위를 그가 직접 그렸고, 가수들이 타고 등장하는 조가비 장식에서부터 신비로운 분위기를 내는 조명까지 도맡아 디자인했다. 게다가 전체적인 스타일리스트 역할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목동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도 자주 그렸는데, 궁전의 답답한 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상류층의 마음이 고스란히 거기에 담겨있다. 부셰가 그린 목동은 실제 목동이 아니다. 세상에 어느 가난한 목동이 저토록 뽀얀 피부에 우아한 눈길을 가지고 있을까. 맨발을 하고 있다 해도, 그 맨발조차도 어찌나 섬세한지 목동의 고생어린 현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전원의 목가생활을 낭만적으로 꿈꾸는 귀족이 목동의 겉모습을 하고 나온 것뿐이다.

‘아침식사’는 귀족 집안의 이른 티타임을 보여준다. 가구, 주전자, 커피수저, 초콜릿잔 등 귀족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흥미로운 그림이다. ‘아침식사’라는 제목과 8시를 가리키는 벽시계로도 귀족의 일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평민들에게는 아침식사라는 것이 별로 입에 담아볼 만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민은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느지막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반면, 예상 외로 귀족들이 훨씬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책이나 독서를 했다.

아이들이 마시고 있는 것은 아마도 초콜릿 음료일 것이다. ‘초콜릿 걸’에서 보듯 진한 초콜릿 음료는 항상 동일한 양의 따스한 물과 함께 서브되었다. 이 그림은 부셰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스위스계 프랑스 화가였던 잔 에티안 료타르(Jean Etienne Liotard, 1702~1789)가 그린 것이다. 초콜릿 음료에 물을 희석시켜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진한 원액을 마신 후에 까매진 입안을 물로 헹구듯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와 홍차, 그리고 초콜릿은 17세기 무렵부터 유럽의 귀족들이 즐겼던 음료이다. 1594년에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처음으로 초콜릿 음료를 맛보았다고 전해진다.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45년에 이탈리아에서, 1652년에 영국에, 이어서 1672년에는 파리에 오픈했다. 홍차는 영국에서 1657년에 처음으로 판매하기 시작해서 1662년에는 영국의 궁정에도 소개되었다. 희귀수입품목에 대해 붙는 세금으로 인해 이들 음료는 매우 비쌌으며, 차에 대한 영국의 얼토당토않은 과세방식은 결국 1773년 보스턴 차사건의 계기가 되고 만다. 이후부터는 독립혁명과 시민혁명 등 서구세계는 혁명의 분위기에 휩쓸린다. 더불어 커피와 홍차 그리고 초콜릿이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시대도 끝났다.
 달콤하지만 닿을 수 없는 귀족의 빵
프랑스와 부셰 ‘아침식사’ 1739, 캔버스에 유채.
거품 위에 설탕가루를 살짝 얹은 카푸치노와 함께 먹는 눈사람 모양의 빵, 브리오슈는 굶주리던 서민들에게는 단순한 빵 이상의 것을 의미했다. 달콤한 브리오슈의 냄새가 은은하던 장밋빛 궁정문화는 혁명으로 인해 피비린내로 바뀌게 되는데, 그렇게 닥쳐올 세계사의 사건을 알기에 안타깝고 애잔해 보이는 그림도 있다.

샤르댕(Jean-Batiste-Simeon Chardin, 1699~1779)의 ‘브리오슈가 있는 정물화’이다. 샤르댕은 18세기 당시 백과사전에 주력하던 계몽주의 학자들 못지않게 왕성한 학구열과 예리한 관찰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사물을 소재로 택했고, 이런 일상적인 것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질감과 형태를 즐겼다. 그의 그림 속 모든 사물들은 그 놓인 위치에서 마치 사전처럼 정확하게 정의되는 것 같다.

샤르댕은 대부분의 작품을 실내에서 그렸고, 많은 수가 정물화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 밖으로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었던 작가의 삶 자체가 역동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그야말로 일종의 정물화와도 같았다. ‘브리오슈가 있는 정물화’의 오른쪽을 보면 꿀 또는 메이플 시럽을 담아놓은 병이 있는데, 크리스털 병목에 금칠을 한 부위와 금색 뚜껑이 고급스럽다. 왼편에 설탕 통으로 쓰이는 도자기도 품위가 예사롭지 않다. 브리오슈의 반짝이는 부위는 다 부풀어 오른 빵을 오븐에서 완전히 꺼내기 전에 재빨리 달걀흰자를 요리용 붓에 묻혀 바른 자국이다. 그 위에 요리용 흰 분말설탕이 살짝 뿌려져 있는 듯하다. 빵의 달달한 표면이 입에 닿을 때 살짝 녹아들 것만 같다. 언뜻 달콤한 인생을 보여주는 정물이라고 할까.

샤르댕의 그림에서 중앙을 차지하는 것은 빵이다. 우리에게 밥이 그렇듯, 서양인에게 빵은 곧 생명이고 삶이다. 브리오슈는 버터의 부드러움이 더해진 빵이니, 인생으로 치자면 우아한 삶을 은유한다고 할 수 있다. 거친 검은 빵만이 유일한 생명의 빵인 줄 알던 사람들이 브리오슈의 존재를 안다는 건, 현실 속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달콤한 일상을 꿈꾸게 된 것과 같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과 꿈 사이의 괴리는 분노를 일으키는 모양이다.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 먹을 것이 모자라 파리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말로 흔히 알려져 있다. 브리오슈라는 빵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절에는 케이크 또는 쿠키라고 번역되었다. 실제로 왕비가 그 말을 하는 것을 직접 들은 이는 없었다. 철없어 보이는 왕비의 말투를 흉내 내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소문 중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구체적인 브리오슈가 발단이 되어 시민들의 격분은 달랠 길 없이 커져만 갔고,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그림은 1763년에 그려졌고 프랑스 대혁명은 곧이어 1789년에 터졌으니, 어쩌면 이 잔잔하고 평화로우며 정적인 그림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엄청난 폭풍을 예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이주은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시프트업, ‘니케’ 역주행 이어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2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6월 26일 출시 확정

3‘보안칩 팹리스’ ICTK, 코스닥 상장 도전…“전 세계 통신기기 안전 이끌 것”

4신한금융 1분기 순익 1조3215억원, 전년 동기 比 4.8%↓

5LG유플러스,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공식 출시

6하나금융 1분기 순익 1조340억원…1년 전보다 6.2% 감소

7농협금융 1분기 순익 6512억, 전년 동기 比 31.2%↓

8우리금융 1분기 순익 8245억원, ELS 배상에 전년比 9.8%↓

9“미국투자이민 공공 프로젝트 최고 안전”∙∙∙로드아일랜주 축구장 개발사 존슨 대표 인터뷰

실시간 뉴스

1시프트업, ‘니케’ 역주행 이어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2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6월 26일 출시 확정

3‘보안칩 팹리스’ ICTK, 코스닥 상장 도전…“전 세계 통신기기 안전 이끌 것”

4신한금융 1분기 순익 1조3215억원, 전년 동기 比 4.8%↓

5LG유플러스, 실속형 스마트폰 ‘갤럭시 버디3’ 공식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