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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우리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시리아 난민 소비 칼라발리크는 동생과 함께 지난 7월 중순 레스보스 섬에 도착했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캠프는 6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시설에 3000명 이상이 들어앉았다. 시리아·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에서 건너온 난민들이다. 폭력과 빈곤이 극에 달해 그리스의 혼란은 오히려 아이들 장난쯤으로 여겨질 정도의 나라들이다.

그들은 배가 정박하는 북부 미틸레네 항구에서 약 70㎞를 걸어 왔다. 바다를 횡단하는 동안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간신히 해안경비대에 구조되는 위기를 넘긴 뒤였다. 일부는 이제 간이 수용소로 개조된 옛 군대 막사에서 잠들었다. 길가 인도에 드러누운 사람도 있었다. 상륙하는 난민이 너무 많아 캠프에는 식량과 깨끗한 식수가 항상 부족했다. 유엔 구호대원들이 자갈길에서 청소작업을 하고 있었다. 길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치워 사람들이 참고 견딜 만한 환경을 유지하려는 노력이었다. 구호대원들은 누군가 앓아 누울 경우 질병이 들불처럼 확산될까 걱정했다.

“채권단의 그리스 자본통제에 조속히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상황이 갈수록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국제이주기구(IOM)의 유제니오 임브로시가 말했다.

그리스 정부가 나름의 위기(경제 붕괴)와 씨름하는 동안 지역분쟁을 피해 그리스 해안으로 몰려드는 이민자와 망명자가 갈수록 늘어난다. 그에 따라 이처럼 심각한 난민 문제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섬들 전반에 걸쳐 하루 유입되는 난민 수가 900~2000명으로 추산된다. 시 당국과 적십자사의 통계다. 그리스가 이탈리아를 제치고 하루 신규 유입 난민 수 최다 유럽국가로 올라섰다.

고르고니 일가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피해 아테네로 망명했다.
7월 13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유럽 채권단이 제시한 최신 구제금융안에 서명했다. 그가 이끄는 정부는 동시에 구제금융에 수반되는 조건들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국가예산을 또 한 차례 대폭 삭감하는 조건이다. 그에 따라 가뜩이나 한정된 난민 지원예산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게 됐다.

그리스의 경제 파국을 지켜보는 유럽인은 왜 사람들이 목숨 걸고 그리스로 몰려드는지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를 짓누르는 경제위기는 난민에게 매력적인 요소다. 국가예산 위기에 직면하면서 국경통제를 포함한 모든 정부기구가 축소됐다. 그에 따라 난민 상륙에 따르는 위험성이 더 줄었다. 상륙하는 난민 수가 많아질수록 그들을 받아들이는 가난뱅이 소읍들의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소비 칼라발리크(26)는 지난 7월 중순 밀항선을 타고 그리스로 향했다. 터키에서 레스보스 섬으로 향하는 연락선 운임은 10~20유로에 거리도 약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밀항선은 야음을 틈타 난민을 실어 나르는 대가로 1500달러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칼라발리크는 동생과 함께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도보로 터키 국경을 넘은 뒤 고무 보트를 타고 레스보스 섬에 상륙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이 계속되면서 코스·키오스·레스보스 같은 그리스 동부의 섬으로 밀려드는 칼라발리크 형제 같은 난민이 하루 수천 명에 달한다. 레스보스 섬은 아름다운 해변, 그림 같은 항구, 그리고 풍부한 역사를 자랑하는 에게해의 휴양지로 명성이 자자하다(기원전 600년 경의 시인 사포가 이곳 출신이다).

“자고 일어나면 마을 하나가 새로 생긴다”고 레스보스주 미틸레네 시의 공보관 마리오스 안드리오티스가 말했다. 미틸레네 시의 상주 인구는 9000명에 불과하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난민 수가 하루 수백 명에 달한다. 지난 6월 레스보스 섬에 수용된 난민이 1만4500명이었다. 아이카테리니 키티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설명이다.

난민 수의 변동이 문제라고 그리스 적십자사의 안젤리카 파나키가 말했다. 섬 한곳에 어떤 날엔 500명의 난민이 유입되고 다음 날엔 2000명이 들어오기도 한다. 따라서 보급물자 또는 구호요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이 기사를 쓸 때쯤 그리스에서 활동하는 적십자사 요원은 800명이라고 파나키가 말했다. 그러나 모두 난민 문제에 관여하지는 않았다.

숨막히는 생활 환경으로 인해 일부 난민 캠프의 시리아인과 아프간인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지난 6개월 사이 정치·역사적 긴장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서 폭동이 시작됐다. 일부 시리아인은 아프간 인이 탈레반에 속한다고 간주했다. 아프간인은 종종 아랍어를 구사하지 않으며 시리아인이 우월감을 드러낸다고 반감을 품었다. “따라서 지금 바로 이곳에서 똑같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안드리오티스 공보관이 말했다. 그들이 도피해 나온 조국의 내전에 현지 상황을 비유했다.

아테네에서조차 정부 당국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고르고니 일가는 7월 16일 아테네에 도착했지만 거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여기서 15일 머무는 동안 식량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고 마흐디와 로가야 고르고니가 말했다. “은행이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하루에 60유로 이상 인출하지 못한다는 점을 안다. 그러니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

2013년 7월에 수립된 더블린 규정(Dublin Regulation)에 따르면 이민자가 상륙하는 나라에서 그 사람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 ‘최초 도착 국가(country of first arrival)’가 유입 이민의 신원을 확인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지문을 채취해야 한다. 그 뒤 그 정보를 공동의 데이터베이스에 수록하도록 돼 있다. 이민자가 망명을 요구할 경우 해당국은 필요에 따라 난민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돌봐줬다. 이들도 전쟁으로 핍박 받는 사람들이니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안드리 오티스 공보관이 전화 인터뷰로 설명했다. 이민자들을 먹이고 돌보는 구호활동은 대부분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의 무지 때문에 봉사자들도 난민에게 등을 돌린다”고 그가 말했다.

지정된 유럽 집행위원회 기금에서 난민 상륙과정의 비용을 조달하고 그리스 정부의 예산에서 보조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매일 도착하는 숫자가 대단히 많아 그들을 돌보는 자금의 태반이 섬 지자체 예산에서 조달된다.

거리에 수백 명의 이민자가 돌아다니면 섬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지 모른다고 일부 당국자는 우려했다. 키오스와 코스 섬의 현지 당국자들은 많은 휴양객이 이미 숙박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민자 대다수가 조용하고 평화롭기 때문에 그것은 근거 없는 우려라고 덧붙였다.
 대륙의 부담을 짊어지는 그리스 마을들
그리스 코스섬의 한 버려진 호텔에서 급식을 기다리는 시리아와 아프간 난민들.
이민자의 대규모 유입에 그리스의 재정압박 심화가 맞물려 그리스인과 이민자 간의 충돌로 이어질까 IMO의 한 관계자는 걱정했다. 그 기구의 유럽지역 책임자인 유제니오 임브로시는 이렇게 말했다. “이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흔히 그렇듯 이민자든 그리스인이든 취약한 그룹들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

그런 사태가 발생할 경우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차별적인 주장에 기름을 부을 위험성이 크다. 그것은 계속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1930년대 빚에 허덕이던 독일의 유대인과 같은 경우다. 눈에 띄게 많은 이민 집단은 종종 사회 전체의 더 큰 문제의 속죄양이 된다.

이 기사 게재 시점까지 그리스 전체 그리고 섬들의 민족적 인구구성에 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그리스에선 인구조사에서 응답자의 민족성을 묻지 못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완벽하지 않았다. 2009년 이후의 데이터에선 그리스 국민의 93%가 그리스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그리스 여권 보유자를 모두 포함한다. 따라서 어떤 민족 출신인지는 감안하지 않았다.

IMO의 임브로시는 직접 겪어 보니 섬에서 다수의 이민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전혀 접촉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마음이 열려 있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웃을 미워할지도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그의 집에 불이 날 경우엔 필시 미워하는 생각을 접게 된다.”

구호 대원들과 현지 당국자들은 이민자 집단을 향한 현지 주민의 계속되는 후한 인심을 칭찬했다. 생활 형편이 갈수록 나빠지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돕기 위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냈다.

섬 주민 다수가 겪고 있는 이 같은 경제적 압박감을 감안할 때 그들의 희생은 작지 않다. 긴축 조치로 인해 그리스 국민의 하루 은행 인출액은 60유로로 제한된다(지역 당국자에 따르면 더 작은 섬에서는 하루 30유로까지만 인출 가능하다).

키오스 섬의 마놀리스 부르노스 시장은 섬의 사업체들이 난민 텐트 설치를 돕고 매트리스를 기증했다고 전했다. 키오스 시민은 어린이들에게 특별 음식을, 엄마들에게는 우유를 제공했다. 그 밖에도 많은 식품을 공급해 이민자들의 제한된 비상식량을 보충하도록 했다. 몇몇 여성은 난민 캠프를 찾아가 아무리 적더라도 매일 뭔가를 기부하곤 했다.

“우리는 그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부르노스 시장이 말했다. 아직도 섬의 일상을 지배하는 기독교 정신과 전통에 따라 “우리와 남을 구분 지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작은 마을의 인심은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난민들 중 섬에, 나아가 그리스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키오스와 미틸레네 시장들은 전했다. 부채 위기의 악화로 인해 이민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그리스를 떠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다수가 그리스를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북유럽 국가로 넘어가기 위한 교두보로 생각했다.

시스템의 불균형이 문제라고 그들은 말했다. 더블린 규정에서는 제2의 국가는 어떤 망명 희망자든 받을 필요가 없다. 독일과 프랑스는 최근 자발적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 출신 난민 4만 명을 받아들였다. 매일 유입되는 엄청난 이민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말이다.

유엔은 모든 회원국이 그리스와 이탈리아 출신 난민 중 일정 비율을 받도록 하는 EU 정책을 지지해 왔다. 그것이 실현되려면 EU의 28개 회원국 중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져 그 정책을 비준해야 한다.

이번 위기는 유럽의 문제이지 섬 주민의 문제 또는 나아가 그리스의 문제가 아니라고 키오스 시청의 엘레나 차차로니는 주장했다. “키오스섬은 유럽연합의 마지막, 말단의 변방인데도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 JESS MCHUGH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 With Stella Kasdagli In Athens, Gree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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