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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협정 ‘산 넘어 산’

TPP 협정 ‘산 넘어 산’

미국을 비롯한 12개 환태평양 국가 대표들이 세계 경제의 40%를 통제하게 될 자유무역협정을 오랜 진통 끝에 마침내 마무리 지었다. 협상 타결 후 기자회견을 하는 12개국 대표들.
7년 동안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협상이 타결됐다. 12개 환태평양 국가 대표들은 지난 10월 5일 새벽 5시경(현지 시각) 미국 애틀랜타의 한 호텔에서 자유무역 협정에 합의했다. 전 세계 제품과 용역 중 5분의 2가 더 수월하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알려진 이 조약은 급부상하는 경제대국 중국을 배제한 채 아-태 지역의 통상 규칙을 수립했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를 비롯한 참가국 협상 대표들은 6일 간의 철야 협상을 통해 남은 이견을 매듭지었다. 특허권 보호규칙과 낙농품 무역의 정치적으로 까다롭고 복잡한 이슈들이 문제였다. 일련의 타협과 절충을 통해 30개 챕터에 달하는 합의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는 포괄적이고 수준 높은 협정을 타결 지을 수 있었다. 기념비적인 성과”라고 프로먼 미국 대표가 말했다. “이번 협정은 제조업·농업·서비스업 그리고 사업가·발명가·창작예술가 등 경제 전반적으로 유익하다.”

이번 결과는 각고의 노력과 고도로 기술적인 협상의 산물이지만 그 실현에는 올 들어 새로 부각된 참가국들의 국내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속협상권(fast-track authority)’을 승인하도록 미국 의회를 설득하면서 TPP 추진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국회의원들이 찬반 의사만 표시하고 협약을 수정할 수 없게 만들어 협상에서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한다. TPP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초반 이후의 목표인 대(對) 아시아 외교정책 균형 회복의 일환이다.

막강한 상원 재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린 해치 상원의원(공화·유타)은 프로먼 미국 대표가 좋은 조건을 얻어낼 “절호의 기회”를 망쳤다고 주장했다. 지금껏 이 문제와 관련해 오바마 정부와 어긋났던 공화당 측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세부 사항은 아직 모두 공개되지 않았지만 불행히 이번 협정은 턱없이 부족한 듯하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2012년 보고서에서 TPP의 소득증가 효과를 2950억 달러로 예상했다. 그중 미국에는 수출 증가를 통해 780달러가 돌아간다. 소비자는 물가하락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통계는 자유무역 확대에 따른 혼란은 보여주지 않는다. 예컨대 미국 낙농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면 세계적인 가격인하로 기업 도태가 가속화할 수 있다. 미국은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최대 3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함으로써 관세철폐의 충격을 완화하려 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가 이번 TPP 협정 타결의 최대 승자 중 하나일지 모른다(왼쪽). 베트남에는 독립 노조의 결성이 금지돼 있다. 호치민시 섬유 공장의 근로자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협정에서 자신의 국내 개혁 아젠다를 밀어붙일 동력을 얻으려 한다. 총선(19일)을 2주 앞둔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도 이번 협정에서 캐나다의 자리를 지키려 자국 낙농업자들의 반발을 무릅썼다.

미국은 대선이 열리는 2016년 의회에서 협정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바마 대통령과 노조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 노조는 TPP를 반대하는 핵심 유권자 세력이다. 공화당 대선 선두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몇 달 전 TPP를 “너무 한심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대선 선두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당초의 TPP 지지 입장을 번복해 반대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협정에 관한 그들의 입장이 뒤집어질 수도 있다. 보수당인 하퍼에 맞서 총리직에 도전하는 신민주당의 톰 멀케어는 TPP에 반대 입장을 보인다.

프로먼 미국 대표는 인터넷 개방정책과 노동권 관련 규칙을 언급하며 TPP가 중국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이끌어가리라고 시사했다. “TPP는 아태지역에서 우리의 가치에 맞는 통상 규칙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상담당상은 만일 중국이 일찍이 TPP 참여를 원했다면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인터넷 접근과 기타 ‘관리 자원’을 차단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물학 제제(biologics)로 알려진 첨단 의약품의 특허권 보호 문제도 협상의 걸림돌이 됐다. 미국은 의약품 복제를 법으로 강력히 규제해야만 신규 연구개발 자금이 유입된다는 제약업계의 입장을 지지했다. 반면 호주는 새로운 치료제의 엄격한 보호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며 미국에 필사적으로 반대했다.

심야협상은 상당 부분 프로먼 미국 대표와 앤드류 롭 호주 대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두 사람은 제약회사들이 임상실험 관련 데이터를 얼마나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할 수 있느냐를 두고 씨름했다. 경쟁사들이 그 정보를 이용해 비슷한 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해 특허권 가치가 올라가는 이른바 ‘록업 기간(lockup period)’이 문제다. 암젠과 화이자 같은 회사들은 생물학 제제 연구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왔다.

프로먼 미국 대표는 제약 분야의 협상조건이 TPP의 의회 통과에 영향을 미칠 것임을 의식했다. 현재 미국 법에 정해진 12년의 록업 기간 요구를 철회하면서도 호주가 요구한 5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규제 당국자들이 유사 약품 신청을 받되 재량에 따라 추가로 3년 동안 출시를 제한하는 방안으로 협상을 진행했다.

뉴질랜드부터 캐나다, 일본, 뉴잉글랜드 지방(미국 동부 매사추세츠 등 6개 주)까지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낙농업자들의 상충되는 요구가 협상을 수십 시간이나 지연시켰다. 협상 대표들은 분유, 유청 단백질(whey protein), 치즈 무역의 세세한 문제에 매달렸다. 낙농품 수출 대국인 뉴질랜드와 호주는 관세·보조금·쿼타의 네트워크로 오래 보호 받던 분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고 애썼다.

그들은 캐나다의 거센 반대에 맞닥뜨렸다. 온타리오와 퀘벡 같은 큰 주에 집중된 낙농업자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공급을 제한하는 시스템 때문이다. 하퍼 총리는 농민과 지방 장관들을 설득하는 데 애먹었다. 협정은 낙농품 수출업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유제품의 자유무역 원칙과는 상당히 큰 거리가 있었다.

TPP는 많은 기업, 노동조직, 인권단체에 드러나지 않는 위협이다. 그러나 도요타를 포함한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성싶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구입한 부품으로 미국 수출용 자동차를 생산하면서도 TPP의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업계 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그 문제에 집중적으로 로비를 벌여 왔다.

자동차 부품의 ‘원산지 규정’ 문제는 TPP 협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말 멕시코와 캐나다 협상 대표가 한 발 물러서는 듯했다. TPP 가입 12개 회원국이 아닌 나라에서 50%의 자동차 부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자동차 부품의 역내 조달 비율 목표를 45%로 잡았다. 반면 일본 대표는 32.5%의 최저 한도를 추진했었다(로이터 보도). 아직 최종 비율은 불확실하지만 어느 쪽이 되든 자동차 부품의 절반을 TPP 국가 외부에서 조달할 수 있다.

미국 의회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부품 중 상당 비율을 다른 나라에서 조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에 반대해 왔다. TPP에서 원산지 규정 기준을 축소하면 “미국 근로자와 제조업체들이 타격을 받는다”고 10월 초 셔로드 브라운 상원의원(민주·오하이오)이 말했다. 45%의 자동차 부품 원산지 규정 보도를 거론하며 한 말이다. 한편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선 자동차 부품의 62.5%를 역내에서 조달하도록 했다.

일본은 최근 몇 년 사이 경제적 압박이 커지자 중국에서 자동차 부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중국 부품 가격이 싼 데다 품질도 좋아졌다. 예컨대 2013년 일본 닛산 자동차에 들어간 중국 부품 비율은 15~20%였다. 그것이 35%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올해 일본자동차공업협회는 로비스트들에게 수만 달러를 지불했다.

2013년 도요타는 로비작업에 100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TPP 협상에 영향을 미치려는 목표였다. 올해 도요타 자동차의 로비 비용 지출은 300만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중 TPP 협상과 ‘시장을 왜곡하는 통상정책’의 방어 같은 통상 문제에 170만 달러를 지출했다.

‘책임 있는 정치 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 기간 중 도요타 자동차 북미법인은 연방 후보와 정당에 28만4500달러(민주당에 43.6%, 공화당에 56.4%)를 기부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프로먼 미국 대표 등을 포함하는 TPP 지지자들은 역대 어떤 무역협정보다 강력한 노동기준을 담았다고 장담한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볼 때 그들의 약속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은 멕시코·중미·도미니카공화국·페루·콜롬비아·파나마·한국과의 무역협정에 관해 비슷한 주장을 해 왔다. 하지만 일단 협정이 발효되고 나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협정의 노동기준을 거의 집행하지 않았다. 의회 내에서 TPP의 저격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당·메사추세츠)은 “자유무역협정의 주창자들은 번번이 이번 협정에는 강력하고 의미심장한 보호장치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지난해 미국 의회 조사기구인 미국회계감사원(GAO)은 중미·도미니카공화국·콜롬비아·오만·페루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의 노동기준을 분석했다. 그런 보호장치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직장에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게 돼 있다(TPP의 보호장치도 그와 비슷하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다수 파트너 국가에서 (자유무역협정) 노동기준이 제대로 준수되는지 전반적으로 감시와 집행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2008년 이후 상대국의 협정 노동기준을 위반한 5건의 신고를 받았지만 페루의 1건만 해결됐다. GAO 조사 결과, 이 같은 신고와 관련해 미국이 정한 조사와 공개 보고서 발표 시한을 평균 9개월씩 넘겼다.

하지만 미국 협상 대표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직은 협정의 세부 내용이 모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참가국이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선언’을 준수하도록 한다고 알려졌다. 단체교섭권을 존중하고, 강제노동과 미성년 노동을 금지하고, 고용차별이 없도록 한다. 이론상 미국 무역협정은 2007년 이후 이를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 무역대표부에 따르면 TPP에는 그 밖에 최저임금, 최대 근로시간, 노동위생과 안전에 관한 규정도 포함된다. 하지만 얼마나 엄격한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더욱이 협상대표들은 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와 노동기준 집행에 관해 부속 협정을 중재했다고 한다. 그 나라들이 약속을 어길 경우 미국은 협약에 따라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작업환경을 가진 나라들이다. 독립 노조를 금지하는 베트남의 일부 지역에선 월 최저임금이 1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말레이시아에선 이주 근로자 3명 중 약 1명 꼴로 강제 노동 환경에 처해 있다. 브루나이 법에선 동성애에 사형을 선고한다. 물론 성적소수자(LGBT)의 공개적인 취업도 허용되지 않는다.

TPP 협정은 오는 11월 중 공표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역적 무역협정으로 세계경제의 약 40%를 차지한다. 7년여의 협상 끝에 극적인 타결이 이뤄졌지만 미국을 포함한 가입 당사국의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발효된다.

올해 초 미국 의회는 근소한 표차로 오바마 정부에 이른바 신속협상권을 부여했다. 그에 따라 의원들은 협정에 손대지 못하고 단순히 찬반 투표만 할 수 있다. TPP를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미국 노동조합은 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로비전을 준비한다.

- CARTER DOUGHERTY, ELIZABETH WHITMAN, COLE STANGLER IBTIMES 기자 /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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