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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보다 대의 중시가 ‘품격’이라고?

행복보다 대의 중시가 ‘품격’이라고?

2011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강연하는 데이비드 브룩스. 그는 뉴욕타임즈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칼럼니스트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신간 ‘인간의 품격’은 여러모로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이다. 첫째로 나는 독자에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서는 자기개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품격’은 바로 그런 책이다. 또 나는 옛날이야기도 싫어하는데, 특히 “옛날에는 이랬는데 요새는”으로 시작해 과거의 가치가 현대보다 더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는 딱 질색이다. ‘인간의 품격’이 바로 그렇게 전개된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인간의 품격’이 미국에서 벌어지는 ‘문화 전쟁’의 현황을 이해하기에 아주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문화 전쟁이란 19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벌어진 보수와 진보 간의 가치관 대립을 말한다. 양측은 낙태·피임·이혼·동성애 등 다양한 쟁점을 둘러싸고 수십 년 간 갑론을박을 벌였다. 최근 전황은 진보 진영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거의 모든 쟁점에서 진보적 가치관이 사회 주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나온 동성결혼 합헌 판결은 이미 빈사 상태에 처한 보수 진영을 쓰러뜨릴 최후의 일격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지난 4월 출간된 ‘인간의 품격’은 그 처참한 패전의 현장에서 보수적 가치를 재건하려는 시도다. 동성결혼 합헌 판결이 나온 뒤 브룩스가 쓴 뉴욕타임즈 칼럼 ‘차세대 문화 전쟁’을 보면 그 의도가 더 뚜렷하다. 그는 현 보수층이 성 관념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문화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음을 시인하며, “그와 다른 종류의 문화 전쟁”을 제안한다. “공통 규범 없이 야만적 환경에서 자라나는 젊은이들”과 “선과 의미를 갈구하지만 영적인 언어가 결여된 성인들”에게 보수의 가치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보다 실질적인 투쟁은 분열돼 각박해지고 불친절해진 사회를 개선하는 일이다.”

브룩스가 촉구하는 것이 ‘다른 종류의 문화 전쟁’이라면, ‘인간의 품격’은 그 전쟁을 위한 교본에 해당한다. ‘인격 수양의 길(the road to character)’이라는 영문판 제목에선 그 의도가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우리가 왜, 어떻게 보수적 가치로 인격을 수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안내서다. 브룩스는 우리 사회가 “자신을 낮추라고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도록 권장하는 문화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과거엔 개인의 용기·신의·겸양 등 도덕적 덕목이 중시됐다면 오늘날엔 개인의 성공·성취·능력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그는 겸양의 문화에서 자기과시 문화로의 변화가 “딱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너무 과도했다”며 그로 인해 “현대 문화는 피상적인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덕의 영역에서 말이다.”

브룩스가 보기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다. 이는 단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인간이 끊임없이 죄를 지으려 한다는 발상은 기독교의 ‘원죄’ 개념과 연결되는 서구의 도덕적 전통이다. 이 전통이 살아 있던 시대에 사람들은 늘 스스로의 죄악을 자각하고 이와 맞서 싸웠다. 그들의 목적은 현대인과 달리 욕망의 성취가 아니라 도덕적 기쁨을 누리는 것이었다. 도덕적 기쁨은 자기 내면의 결점과 끊임없이 투쟁하는 과정에서 인격을 갈고닦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궁극적 기쁨이다. 현대인이 그 도덕적 전통과 너무 멀어졌다.

브룩스는 도덕적 삶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기 위해 10명의 위인을 동원한다.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제외한 중간 부분은 각 인물에 대한 위인전이다. 인물들의 면면은 여성 노동운동가 프랜시스 퍼킨스, 미국의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마셜 플랜으로 유명한 장군 조지 캐틀렛 마셜, 게이 흑인 인권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 3~4세기에 걸쳐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 등 폭넓다. 브룩스 자신이 설명하듯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한 길을 걸었고,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아마 성별·업적·성격·종교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한 끝에 선정한 인물들이리라. 브룩스는 이 10명이 어떻게 본인의 결점을 극복하고 위대한 성취를 이뤘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한편 본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덕적 덕목을 중간중간 끼워넣는다.

위인 10명이 성취한 업적이나 숭고한 도덕성엔 배울 점이 있다. 문제는 브룩스가 그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브룩스는 위인들이 하나같이 개인의 행복보다 도덕적 사명을 선택했다고 칭찬한다. 이를 테면 퍼킨스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개인적인 기쁨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필연성이 느껴지는 부름에 응했을 뿐이다.... 그런 소명에는 거의 대부분 한 사람의 인생을 초월하는 임무가 걸려 있게 마련이다.”

마셜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속한 조직의 필요에 맞췄다”는 찬사를 받고, 아이젠하워는 “몸담고 있는 집단을 위해 자기 자신의 욕망을 억제했다”는 평을 받는다. 심지어 아우구스티누스는 “일련의 쾌락과 욕망을 거부하고 더 고귀한 기쁨과 즐거움을 향해” 올라갔다며 “여기에 함축되어 있는 자세는 복종”이라고 평한다. 여기서 복종이란 “자기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지를 신에게” 맡기는 것을 뜻한다.

일련의 위인전이 보내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개인의 행복이나 욕망보다 더 가치 있는 질서와 의미가 있으며, 그 질서를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가치 있는 질서와 의미란 “조직” “제도” “신”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브룩스의 말대로 “나름의 규칙과 의무와 훌륭한 기준”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인을 탄압하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측면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인권 탄압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다. 브룩스는 기존 질서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사실을 종종 간과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를테면 퍼킨스는 정계에서 남자들이 여성을 모성과 연관지어 생각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들의 호감을 사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엄마 같은 옷차림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나이든 남성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의 취향, 여성성, 그리고 심지어 정체성의 일부마저 억제한 것이다.” 물론 브룩스는 이처럼 대의를 위해 개인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것을 칭찬하기 위해 이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나 현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보면 여성을 모성과 연관짓는 것, 거기에 맞춰 개인의 정체성조차 버리고 엄마 같은 옷을 입는다는 것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일정한 역할에 구속하는 구시대적 악습이다.

브룩스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는 퍼킨스의 행동이 “여성들이 성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의구심이 드는 전략”이라고 하면서도 “1920년대에는 그럴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인다. 언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던가? 오늘날 여성들이 1920년대와 다르게 생존을 위해 남심을 자극해야만 할 필요가 줄어들었다면, 그건 바로 퍼킨스처럼 행동하지 않은 여성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모든 여성들이 그녀처럼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에 편입되는 길을 택했더라면, 아직도 여성들은 1920년대처럼 모성 내지는 여성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만 남자들과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도 대다수 여성들은 그런 현실에서 살아간다.

“삶을 조직의 필요에 맞췄다”고 찬사를 받은 마셜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버지니아 사관학교에 입학한 마셜은 외모와 억양 탓에 선배들로부터 괴롭힘을 받는다. 바닥에 난 구멍에 박아 놓은 총검 위에 쪼그리고 앉는 신고식을 받다가 엉덩이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 신고식은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마셜은 그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킨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는다. 브룩스는 이 일화를 마치 무슨 미담인 양 소개하지만, 조직의 화합을 이유로 규칙에 어긋나는 부당한 인권 침해를 묵인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일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든 건 현대인이 과거 사람들에 비해 자기중심적이며 도덕성이 떨어진다는 브룩스의 견해다.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없다. 브룩스가 내미는 것이라곤 “여중생들에게 누구와 같이 식사하고 싶은지 물은 결과” 제니퍼 로페즈가 1위, 예수가 2위, 패리스 힐튼이 3위를 기록했다는 식의 불분명한 통계 몇 개가 전부다. 그는 여기서 1위와 3위에 주목하는 모양이지만, 나로선 2위에 예수가 들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다. 브룩스는 여중생들에게 뭘 기대하는 걸까? 여중생들이 아이젠하워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위인을 선망하길 바라는 걸까? 여중생들이 잘 생기고 예쁜 연예인보다 근엄하고 숭고한 위인들을 만나고 싶어 하게 만들려면 그 아이들을 얼마나 억압해야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마 북한 여중생들이라도 김정은보다는 멋진 연예인을 더 선망하지 않을까?

브룩스와 같은 방식으로 브룩스의 주장에 반하는 근거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예컨대 지난 11월 초 학술지 현대생물학저널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이기적이었다. 브룩스가 강조해 마지 않는 ‘원죄’나 ‘신’ 같은 개념에 친숙하다고 해서 더 도덕적이진 않다는 증거다. 이런 식의 연구 결과나 통계는 얼마든지 있고, 자신이 원하는 주장을 하기 위해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선택해 조합하는 것은 브룩스 같은 전문작가에겐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브룩스의 말에 전혀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쩌면 현대인은 지나치게 자기과시적일 수도 있고, 피상적인 가치에 몰두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성향이 어떤 문제를 내포하는지, 만약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모색해야 옳다. 이 책처럼 현대 문제의 해답을 과거에서 찾으면서, 당시의 문제들은 덮어놓고 ‘그때가 좋았는데 요즘 것들은 쯧쯧’을 설파하고 있다면, 한국에선 ‘꼰대’ 소리 듣기 딱 좋다.

-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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