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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⑤] 스스로 언로 막은 대간 향한 일침

[김준태의 ‘사직상소에 비친 조선 선비의 경세관’⑤] 스스로 언로 막은 대간 향한 일침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무릇 대간은 언로(言路)를 열고 잘 지켜내야 그 직분을 다 한 것입니다. 혹 대신들이 박상(朴祥)과 김정(金淨) 등에게 죄를 주라고 주청하더라도 대간만큼은 이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했어야 하는데 도리어 죄를 물어야 한다며 앞장섰습니다. 이는 스스로 언로를 훼손하고 그 직분을 저버린 것이니, 신이 이제 정언(正言)이 되어 어찌 이런 대간과 일을 같이 할 수 있겠나이까? 신과 대간이 서로를 용납할 수 없으니 모두를 파직하여 다시 언로를 여시옵소서.’

1515년(중종10) 11월 22일, 정암 조광조(趙光祖)는 사간원의 정6품 벼슬인 ‘정언(正言)’에 임명된 지 이틀 만에 사직상소를 올렸다. 석달 전 중종이 구언(求言)을 실시했을 때 담양부사 박상과 순창군수 김정이 폐비 신씨의 복위를 건의하자, 대간(사헌부와 사간원)은 합동으로 두 사람을 탄핵한 적이 있었다. 조광조가 지적한 것은 바로 이 사건이다. 이 문제는 본래 크게 확대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구언’은 정치의 잘잘못에 관해 널리 의견을 들어 정책에 반영하는 행위로, 천재지변 등 나라에 위기상황이 일어났을 때 행해진다. 임금이 구언을 지시하면 사람들은 그 어떤 말을 올려도 괜찮았다. 임금의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해도 되고, 급진적이고 과격한 주장을 해도 된다. 무슨 말이든 용인되고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박상과 김정의 건의도 처벌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반정세력 눈치 본 중종
그런데 두 사람의 주장은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했다. 신씨는 중종이 왕자 시절 맞이한 첫 번째 부인으로 반정세력에 의해 죽음을 맞은 신수근의 딸이다. 신씨가 아버지의 복수를 할까 두려웠던 공신들은 중종의 반대에도 신씨를 강제로 폐출시켰다. 이는 명분에 어긋났던 일로, 중종 10년 두 번째 부인인 장경 왕후가 승하하자 박상과 김정은 이 참에 신씨를 복위시켜 어그러진 왕실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얼핏 별 일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신씨를 중전으로 올리려면 아무 잘못이 없는 그녀를 폐위시킨 반정공신들의 죄를 물어야 한다. 반정을 통해 옹립된 중종으로서는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더욱이 여전히 조정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차지하고 있던 반정세력이 이 상소에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중종은 박상과 김정에게 죄를 물어 사태를 무마하고자 했다. 공신들의 영향 아래 있던 대간도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중종10.8.11). 결국 두 사람은 귀양을 가게 되는데, 이로써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 사건을 조광조가 다시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언로가 통하느냐 막히느냐는 국가의 존망과도 직결됩니다. 언로가 통하면 나라는 자연히 잘 다스려지고 평안해질 것이지만, 언로가 막히면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망하게 됩니다. 때문에 예로부터 임금은 언로를 넓히고자 부단히 힘썼으니, 조정의 높은 신하로부터 민간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누구든 주저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도록 하였고, 바른 말을 극진하게 올릴 수 있는 간관(諫官)을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말이 지나치더라도 마음을 열고 너그러이 받아들였습니다. 혹시라도 언로가 막힐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박상, 김정 등은 임금의 ‘구언’ 명령에 따라 진언한 것이니, 그 말이 지나치거나 잘못되었다면 쓰지 않으면 그만일 뿐, 어찌 죄를 줄 수가 있겠습니까.’(중종10.11.22).

조광조는 신씨 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임금과 대간의 태도였다. 어떤 말이라도 해도 좋다는 구언을 지시했으면서 말의 내용을 문제 삼아 당사자를 처벌하고, 또 옆에서 그것을 부추기고. 이는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위에서 마음껏 말하라고 해도 아래서는 ‘정말 그래도 될까?’ ‘혹 처벌받지는 않을까?’ 하고 의구심을 갖는 법이다. 하물며 어렵게 꺼낸 말이 틀렸다며 문책을 당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이내 입을 닫아 버리게 된다. 결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 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도 함께 사장되어 버린다는 것이 조광조의 판단이었다.

조광조가 사직상소를 올리자 중종은 그를 불러 변명했다. “언로가 통하고 막히는 것에 대한 그대의 말은 실로 옳다. 그러나 김정, 박상 등은 아랫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꺼냈으므로 대간이 죄주기를 청한 것이다.” 조광조는 수긍하지 않는다. “저들이 말한 일이 마땅하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설령 상소가 그르다 하더라도 놔두고서 따지지 않아야 경청하는 임금의 덕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지금 이 일은 재상도 시비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대간에서 굳이 죄를 물으라고 청하니 이는 전하를 불의에 빠뜨리는 것으로, 전하께 간언을 거절한 임금이란 누를 끼치게 하였습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제 앞으로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지더라도 과연 구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구언을 하더라도 누가 감히 말을 하겠습니까?”(중종10.11.22).

조광조는 특히 대간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었다. 말의 자유를 수호해 언로가 자유롭고 원활하게 펼쳐지도록 하는 것, 이는 대간의 의무이자 존재의미이다. 그런데 대간이 오히려 언로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더욱이 이 사안은 영의정 유순, 좌의정 정광필 등 재상들도 “예로부터 제왕이 구언을 함에 있어, 올라온 말이 쓸 만하면 채택하고 쓸 만하지 않으면 버리는 것이 도리입니다.”(중종10.8.12). “지금 이 사람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앞으로 그 누가 몸을 아끼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남김없이 다할 수 있겠습니까?”(중종10.8.26)라며 용서하라고 주장했었다. 다른 사람이 처벌하라고 해도 앞장서서 막아줘야 할 판에, 다른 사람들이 용서하라고 하는 데도 처벌을 주장한 것이다. 조광조는 이런 사람들과는 결코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며, 자신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다른 대간들도 모두 파직하라고 요구했다.

조광조의 사직상소는 거센 후폭풍을 일으킨다. 관직에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참 관리가 공개적으로 소속기관 전체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광조의 주장은 원칙과 명분에 의거한 것이었고 이를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조정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5개 월여에 걸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데, 결국 박상과 김정의 죄는 사면된다(중종11.5.8).
 대간 조직 전체가 술렁
이처럼 조광조가 지키고자 했던 ‘언로’의 자유는 오늘날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이 하는 말에는 언제나 좋은 말, 맞는 말, 도움이 되는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틀린 말도 있고, 불필요한 말이나 해를 끼치는 말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옳은 말만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말이라며 억제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 언로에 어떤 제약을 두는 순간 그것은 다른 좋은 말까지도 모두 막아버리게 된다. 물론 말의 옥석을 가리는 것은 필요하다. 그것이 리더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우선은 언로의 자유를 무한히 보장해 다양한 의견과 생각, 주장이 주저 없이 쏟아져 나오게 해야 한다. 우리가 혁신을 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하고, 보다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김준태 -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 성균관대와 동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와 동양철학문화연구소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사상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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