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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토 아츠시 KKR재팬 회장

사이토 아츠시 KKR재팬 회장

77세. 남들은 은퇴할 나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는 이가 있다. 사이토 아츠시 KKR재팬 회장은 활기를 잃은 일본 사모펀드 시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금융인을 꿈꾸는 젊은 인재들에게 PE(Private Equity·사모펀드) 업계는 ‘꿈의 무대’로 불린다. PE(바이아웃형)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체를 사들여 가치를 끌어올린 뒤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큰 수익을 얻는 투자회사를 말한다.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운용하면서, 성공 여부에 따라 상상하기 어려운 거액의 보상도 받는다.

남들은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에 꿈의 무대에 첫 발을 디딘 이가 있다. 사이토 아츠시(齋藤惇·77)는 지난해 8월 미국 투자 펀드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의 일본지사인 ‘KKR재팬’의 비상임 이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기업 성격이 강한 일본거래소그룹(JPX)의 최고경영자직을 내려놓은 직후다. 한 소식통은 사이토 회장이 11조 달러의 자금을 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적연금(GPIF) 수장을 맡아달라는 일본 정부 제의를 거절하고 KKR재팬을 택했다고 전했다. 76세의 나이에 사모펀드 업계에 뛰어들게 된 까닭이 궁금해졌다. 6월 1일 ‘2016 한국자본시장컨퍼런스’에 패널로 참석한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로 직접 찾아간 이유다.

“저는 주로 고문의 역할을 합니다. 직접 투자하기 보다는 조언을 해주는 측에 더 가깝습니다. KKR재팬 말고도 많은 기업·기관의 고문을 맡고 있지요. 제가 사모펀드를 택한 까닭은 ‘가능성’ 때문입니다. 40년 가까이 금융업계에서 일하면서 일본 사모펀드시장의 큰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저평가됐거나 기업체질이 허약한 일본 기업을 사서 고쳐서 팔거나, 더 크게 키우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

사이토 회장은 35년간 노무라증권(현 노무라금융투자)에 몸담은 ‘노무라맨’이다. 게이오대에서 상학을 전공한 후 1963년 노무라에 입사해 뉴욕지사 부사장과 기획· 재무담당 이사 등을 거쳐 본사 부사장까지 지냈다. 2002년 스미토모 생명투자의 회장으로 일하던 중 2003년 산업재생기구의 최고책임자로 지명됐다. 산업재생기구는 10년 넘게 지연돼온 기업구조조정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이즈미 정부가 5년을 기한으로 신속한 기업구조조정과 디플레이션 탈피라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조직이었다.
 42개 사 기업구조 개선과 재생 성공
사이토 회장은 성장가능성이 보이지만 허약체질인 기업을 빠르게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의 역할은 전국은행의 대출금 자기사정 기준(정상·요주의·요관리·파탄우려·파탄)에 따라 ‘요관리’로 분류된 채권 중에서 회생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채권을 중심으로 10조 엔 한도 내에서 매입하는 것이었다. 일단 해당 금융기관과 기업이 채권매입을 신청하면 산업재생기구 내의 산업재생위원회가 회생 가능성 기준에 따라 회생 여부를 결정함과 동시에 매입할 채권의 적정가격을 결정한다. 사이토 회장은 42개 사의 기업구조를 개선하고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5년의 임시적 시한 조직은 4년 반 만에 해산했다. 아츠시 회장은 “국민의 돈으로 운영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에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면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경영자의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산업재생기구는 정부(예금보험기구)와 민간금융기관의 출자로 만들어졌었다. 당시에는 정부가 투자해 기업을 살리는 ‘관민펀드’가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는 “기술혁신의 스케일이 크고 비용이 증가할수록 한 기업이 모든 것을 부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산업재생기구가 해산한 뒤 2007년 6월 그는 도교증권거래소 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직의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거래소는 영리를 추구해야하는 동시에 공익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하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 11월에는 시가총액 규모 세계 4위인 일본의 도쿄거래소(TSE)와 33위인 오사카거래소(OSE)를 통합해 세계 3위 규모의 증시로 덩치를 불렸다. 사이토 회장은 그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일본의 파생상품 시장 규모는 현물 시장이나 다른 나라의 시장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이토 회장이 오사카거래소에 단독 상장됐던 1100개 종목을 모두 도쿄증권거래소로 편입하면서 총 상장기업 수는 3423개로 확대됐다. 쿠보 켄이치 토키오마린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상장기업이 늘면서 도쿄증권거래소는 더 많은 기업과 높은 유동성을 갖춘 거대 글로벌 시장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고 부연 설명했다. 사이토 회장은 두 거래소를 합병하면서 지배구조 강령을 발표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이사회 중 2명 이상을 사외 이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그는 “이사회가 감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끔 해야 했다”며 “그런 이유로 거래소와 전혀 관계없는 학계, 법조계 인물들이 이사로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기업구조의 경영 독립성을 강조해온 그는 고민 끝에 은퇴보다는 자신이 겪어왔던 금융의 지혜를 나누기로 결정했다. 사모펀드는 아시아 금융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스테판 슈스케 BC파트너스 회장은 “BC파트너스의 투자지역은 유럽과 미국으로 한정돼 있었는데, 조만간 아시아 지역으로의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라며 “BC파트너스의 투자자 중 25%가 아시아 지역인 만큼 아시아 지역 투자를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며 말했다.

 일본 PE시장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다
하지만 PE업계에서 유독 일본기업은 맥을 못추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베인앤컴퍼니는 “중국을 주축으로 2014년~2015년 새 1년 동안 아시아의 PE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은 각각 56%, 38%의 성장률을 보인데 비해 일본은 PE시장 규모 거래량이 54%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사이토 회장은 여유가 넘쳤다. 그는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체력을 키우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과거엔 기업의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을 위한 M&A시장이 형성됐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시장은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회사가 더 잘되기 위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구조조정, 그리고 더 강해지기 위한 구조조정으로 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거래가 이뤄지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이토 회장은 기자에게 “새로운 시장의 출현과 업계의 통합과정 등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고, 그 변화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일본 기업에 도움이 되는 전략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토 회장은 “요즘 일본은 무엇보다 경제인구 부족이 큰 화두입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요. 그래서 국가적 과제로 65세 이후 노인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까지 세우고 있지요. 사실 65세는 은퇴하긴 이른 나이예요. 저를 보세요. 일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찬 모임부터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빡빡한 하루 일정을 소화해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에서 기자는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 글 임채연 기자·사진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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