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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뜬다

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뜬다

최근 와인대회에서 프랑스 샴페인 누르고 선두에 올라…균형 잡힌 산도와 산뜻한 맛이 특색
최근 한 와인대회에서 영국 스파클링 와인 ‘햄블던’과 ‘나이팀버’(사진)가 프랑스 유명 샴페인을 제치고 1·2위를 차지했다.
영국은 프랑스를 제외하곤 세계 최대의 샴페인(프랑스 샹파뉴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 시장이다. 영국인이 샴페인을 이렇게 사랑하다 보니 그것을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으로 대체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최근 영국 남부 지방의 몇몇 와인업체가 이 일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몇 년 후면 레스토랑의 소믈리에들이 ‘모에 에 샹동’이나 ‘크루그’ 같은 유명 샴페인보다 ‘햄프셔’나 ‘서섹스’ 같은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을 추천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영국 와인업체들은 오랫동안 독일 포도 품종에 주력해 왔지만 품질이 떨어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년 사이 사정이 바뀌었다. 요즘 영국 와인업체 중에는 고품질의 영국 스파클링 와인만 생산하는 곳이 많다.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후와 토양이다. 영국 남부 지방은 남동쪽으로 불과 수백㎞거리에 있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과 지질학적 환경이 유사하다. 전반적인 기온은 샹파뉴보다 약간 낮지만 지구온난화로 경쟁력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기에 충분할 만큼 따뜻해졌다.

지난 몇 달 사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개의 전문 와인대회에서 영국산 스파클링 와인의 가능성이 증명됐다. 그중 한 대회에서는 국제 와인 평론가와 레스토랑업자 12인으로 구성된 패널(‘와인 마스터’ 자격증이 있는 잰시스 로빈슨과 와인 전문지 ‘와인 애드버킷’의 수석 평론가 닐 마틴이 포함됐다)이 샴페인 8종과 영국 스파클링 와인 4종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참여했다. 그 결과 영국 스파클링 와인 ‘햄블던’과 ‘나이팀버’가 각각 1·2위, ‘폴 로저’와 ‘테탕제’ 샴페인은 각각 3·4위를 차지했다.

요행수로 얻어진 결과는 아니다. 지난 4월 영국 와인증류주협회(WSTA)는 파리에서 영국 스파클링 와인과 샴페인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처음 실시했다. 여기서도 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3범주 중 2개에서 1위를 차지했고, 3번째 범주에선 동반 1위에 올랐다.

영국 스파클링 와인업체 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나이팀버의 소유주는 네덜란드 출신 금융업자 에릭 헤레마다. 그는 샴페인이 스파클링 와인업계에서 품질의 기준이 되는 건 맞지만 영국은 그 수준에 도달하거나 뛰어넘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이곳의 기후가 샹파뉴 지방보다 약간 서늘해 포도의 성장과 수확 시기가 조금 늦고 수확량이 훨씬 적다”고 설명했다. “수확량이 샹파뉴 지방의 절반밖에 안 된다.”

영국 와인업자들은 프랑스산 샴페인을 모방하려는 게 아니라 영국적인 특성이 살아 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우리는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고 헤레마는 말했다. “나이팀버는 샴페인보다 더 신선한 맛이 나며 산도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추구하는 건 품격이다. 뒷맛이 오래 남고 품격이 느껴지는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이팀버는 와인업계에서 인기가 높다.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 최대의 고급 와인 거래상 ‘파 빈트너스’도 나이팀버의 단골이다. 파 빈트너스의 스파클링 와인 전문가 톰허드슨은 “나이팀버는 지금까지 우리가 맛본 스파클링 와인 중 최고”라고 말했다. “거래를 시작한 지 꽤 됐는데 갈수록 품질이 좋아진다. 특히 싱글 빈야드(단일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만든) ‘틸링턴’은 유명 샴페인과 겨뤄도 손색없다.”나이팀버의 경쟁업체인 햄블던 역시 금융업자 출신인 이언 켈레트가 운영한다. 햄블던은 1950년대 초에 최초로 영국 와인을 생산한 업체로 2004년 스파클링 와인으로 전향했다. “영국 스파클링 와인 생산이 언젠가는 샴페인 매출을 앞지를 거라고 믿지만 앞으로 30년 이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켈레트는 말했다. “포도나무를 심은 후 와인 생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따라서 3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과장된 게 아니다.”

영국 와인업체들은 프랑스 샴페인을 모방하지 않고 영국적인 특성을 살린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사진은 햄프셔 지방에 있는 햄블던 포도원의 포도 수확 장면.
영국의 스파클링 와인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다. 영국의 포도원 중 전통적인 샴페인 포도 품종 3가지(피노 누아르·샤르도네·피노 뫼니에)가 재배되는 면적은 약 2000만 ㎡다. 여기서 생산되는 스파클링 와인은 연간 약 400만 병으로 영국에 수입되는 샴페인 양의 약 15%에 해당된다. 따라서 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앞으로 10년 안에 샴페인 소비를 앞지를 거라는 예측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서섹스 지방의 스파클링 와인업체 ‘데이븐포트’는 모든 포도원에서 ‘100% 유기농’ 인증서를 받았다. 창업자 겸 소유주인 윌 데이븐포트는 5개의 포도원에서 와인을 만드는데 포도 압착부터 상표 부착까지 전 과정이 100% 자체 생산이다. 런던 클래리지스 호텔 내 레스토랑 ‘페라’의 수석 소믈리에 라파엘 로드리게스는 샴페인과 데이븐포트의 스파클링 와인을 나란히 추천한다.

“데이븐포트는 현지의 특성과 테루아르(와인이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에 맞는 와인을 만든다”고 로드리게스는 말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찾던 상품이다. 프랑스 샴페인을 흉내 내려 하지 않고 현지의 특성을 살린 와인 말이다. 우리 호텔은 고객이 샴페인을 선호하는 메이페어지역에 있어 데이븐포트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미미하다. 하지만 데이븐포트는 샴페인과 산도가 다르고 더 신선한 맛이 나며 톡 쏘는 맛도 더 강하다. 마치 아삭거리는 사과처럼 기분 좋은 맛이다.”

유명 샴페인 업체들도 영국 스파클링 와인의 부상을 의식한다. 테탕제는 지난해 영국의 와인 유통업체 ‘해치 맨스필드’와의 합작투자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해치 맨스필드의 패트릭 맥그래스 상무는 두 회사가 켄트 지방의 칠햄 근처에 있는 과수원 70만㎡를 사들였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포도나무를 심기 시작해 와인 생산은 2022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스파클링 와인은 15~20년 동안 신제품으로 취급 받으면서 이미지가 약간 손상되기도 했다”고 맥그래스 상무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업계에서 고객이 뭘 원하는지 확실히 파악했다. 그동안 내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은 포도원 부지 선정의 중요성이다. 해발 100m 이하의 바람막이가 있는 남향 땅이 좋다.”

맥그래스 상무는 미래에 관해 과감한 전망을 내놓는 걸 조심스러워한다. “솔직히 말해 영국에 세계 수준의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좋은 땅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고급 샴페인이 생산되는 포도원과 비슷한 백악질 토양이 몇 군데서 발견됐다. 그 땅은 영국 스파클링 와인이 프랑스 샴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영국 스파클링 와인의 품질은 좋아질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스파클링 와인 애호가들에겐 기쁜 소식이다.

- 브루스 팰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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