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르펜이 프랑스판 트럼프 될 수 있을까

르펜이 프랑스판 트럼프 될 수 있을까

프랑스 극우정당 대표로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세계화 반대와 ‘프랑스 우선주의’ 내세우며 고립주의 추구할 듯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대표는 지난 2월 5일 리옹에서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걸고 화려한 대선 출정식을 치렀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가 오는 4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조사기관 오피니언 랩은 르펜 대표가 대선 1차 투표에서 27%를 득표해 20%의 지지율을 얻은 프랑수아 피용 공화당 후보(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무소속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르펜 대표는 노골적인 반(反)이민 노선으로 포퓰리즘의 파도를 타고 상승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1위로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선거 후 그녀가 엘리제궁으로 편안히 걸어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 대선은 오는 4~5월 열린다. 1차 투표는 오는 4월 23일 진행된다. 과반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득표 후보 2명을 두고 5월 7일 2차 투표를 실시해 최종 승자를 가린다. 따라서 그런 대선 시스템이 르펜 대표의 엘리제궁 입성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녀의 비주류적인 관점을 감안하면 프랑스 유권자 다수는 2차 투표에서 그녀의 승리를 막기 위해 다른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다른 변수도 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는 후보들의 비리 의혹으로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통령 선거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형국이다. 배우자 위장취업 의혹이 제기된 피용 전 총리에 이어 이번엔 르펜 대표가 그와 비슷한 ‘허위 고용’ 의혹에 휩싸이면서 최근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다.

현지 언론은 프랑스 경찰이 르펜 대표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FN 당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고 전하며 르펜 대표가 자신의 측근들을 유럽의회 보좌관으로 허위 고용해 공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녀는 최근 레바논의 이슬람교 지도자를 만나려다가 히잡 착용을 거부해 실랑이 끝에 면담을 취소했다. 해당 종교단체는 “무례한 행위”라며 르펜 대표를 비난했다. 이처럼 그녀에게 악재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뜻밖의 승리를 거두는 것을 지켜본 정치 분석가들은 르펜 대표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만약 르펜 대표가 승리한다면 프랑스는 과연 어떤 나라가 될까?

그녀는 반이민 노선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운동을 한다. CNN 보도에 따르면 르펜 대표는 프랑스가 받아들이는 합법적 이민을 매년 20만 명에서 1만 명으로 대폭 줄이기를 원한다. 또 그녀는 현재 난민과 이주자에게 제공되는 공공 서비스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르펜 대표가 내건 경제 공약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프랑스의 폭넓은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겠다는 정책은 세계화로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블루칼라 근로자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레바논의 시위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르펜을 넣고 ‘네오파시스트’라고 적은 포스터가 등장했다.
르펜 대표는 지난 2월 5일 프랑스 남동부 도시 리옹에서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걸고 지지자 3000여 명 앞에서 화려한 대선 출정식을 치렀다. 그녀는 전날 발표한 144개 공약의 핵심인 ‘반이민, 반세계화, 반이슬람 근본주의’를 외치면서 “프랑스를 누구에게도 빚을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융과 이슬람의 세계화가 프랑스를 마비시켰다”며 당선되면 고립주의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브렉시트를 따라 프렉시트(Frexit·프랑스의 EU 탈퇴)를 향한 의지도 드러냈다. 르펜 대표는 “벨기에 브뤼셀(EU 본부 소재지)의 폭정으로부터 프랑스를 해방하고 싶다”고 말했다. “EU가 전면적인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취임 후 6개월 안에 프렉시트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프랑스가 유로화 이전에 사용하던 화폐인 프랑화로 화폐단위 복귀를 추진하겠다는 발언도 이어갔다. 특히 그녀는 ‘새로운 프랑화’를 도입하면 프랑스의 국경 통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프랑스 국적자가 유럽 외 국가의 국적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이중국적제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그러나 러시아는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르펜 대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통치하는 러시아를 공공연히 찬양한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 개입한 푸틴 대통령의 행동을 전반적으로 지지하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대환영할 만한 공약이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이번 대선에서 르펜 대표에게 유리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에 따라 프랑스는 정부 차원의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르펜 대표는 프랑스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꼭두각시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프랑스가 리비아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개입한 것이 미국의 뜻을 따른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 콜럼 페이턴 아이비타임즈 기자
 [박스기사] 대권 위해 아버지를 버린 딸 - 비판자들의 눈엔 르펜이 노골적인 반이민주의 내세운 부친과 다를 바 없어
프랑스의 극우 정치는 지난 40년 동안 집안 사업이었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은 장-마리 르펜이 창당했고 현 대표인 마린 르펜은 그의 막내딸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딸에 의해 자신이 만든 당에서 쫓겨났다. 르펜 대표는 2015년 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에 관한 아버지의 발언(그는 “나치의 가스실은 역사의 사소한 일”이라고 망언했다)을 문제 삼아 그를 FN에서 출당 조치했다. 그런 발언은 FN의 극단주의적 이미지를 떨쳐내고 대권에 도전하려는 딸이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버지에게 중징계를 내린 뒤 그녀는 극우 정당의 현대화를 이끄는 현실주의적인 지도자라는 평판을 얻었다. 그러나 비판자들의 눈에 그녀는 FN에 몇 가지 겉치레 변화만 도입했을 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유럽의회 의원인 마린 르펜은 새롭게 태어난 FN의 대표이며 오는 4~5월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의 유력한 주자다. 변호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 유세를 따라다니며 정치를 배웠다. 그녀는 1986년 18세에 FN에 입당했고 1998년 노르파드칼레의 지방의회 의원으로 처음 공직에 선출됐다. 탄광 지역의 탈산업화와 난민이 주요 이슈인 지역이다. 2004년 이후 유럽의회 의원(3선)을 지내고 있다. 2003년엔 FN의 부대표가 됐고 2011년부터 아버지에 이어 대표를 맡고 있다. 2012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선 득표율 18%로 3위를 기록했다.

르펜 대표는 아버지를 출당 조치했지만 이민 문제에 관해선 그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다. 그녀는 프랑스가 겪는 경기침체를 세계화로 인해 이민자가 증가한 탓으로 돌렸다. “사람들은 행복한 세계화를 원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종류의 세계주의, 즉 이슬람 근본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우리는 이슬람 원리주의의 멍에 속에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 또 그녀는 이슬람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일시 금지시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두고 “이슬람 과격주의와의 투쟁”이라고 치켜세웠다. 프랑스로 들어오는 이민자를 연간 1만 명 수준으로 80% 감축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에게 특별세를 물리겠다는 방침과 불법 이민자에 대한 기본적인 의료보장 제공을 중단한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또 르펜 대표는 EU를 ‘실패’와 ‘악몽’으로 규정하고 회원국 주권을 보장하는 타협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EU 탈퇴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공언했다. 그녀는 영국의 EU 탈퇴 결정을 두고 “구식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진정한 첫 타격”이라며 환영했다.

- 콜럼 페이턴 아이비타임즈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2민희진 vs 하이브 '노예 계약' 공방...진실은 어디로

3‘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4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

5이부진 표 K-미소…인천공항 온 외국 관광객에게 ‘활짝’

6목동14단지, 60층 초고층으로...5007가구 공급

7시프트업, ‘니케’ 역주행 이어 ‘스텔라 블레이드' 출시

8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모험의 탑’, 6월 26일 출시 확정

9‘보안칩 팹리스’ ICTK, 코스닥 상장 도전…“전 세계 통신기기 안전 이끌 것”

실시간 뉴스

1한국축구 40년만에 올림픽 좌절…홍준표, 한국축협회에 또 ‘쓴 소리’

2민희진 vs 하이브 '노예 계약' 공방...진실은 어디로

3‘빅5’ 병원 ‘주 1회 셧다운’ 예고…정부 “조속히 환자 곁으로”

4尹대통령-이재명 29일 첫 회담…“국정 현안 푸는 계기되길”

5이부진 표 K-미소…인천공항 온 외국 관광객에게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