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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허구 그 경계를 가다

사실과 허구 그 경계를 가다

1843년 실화 바탕으로 한 동명 소설 원작의 미니 시리즈 ‘알리아스 그레이스’, 집주인 살해한 하녀의 이야기 파헤쳐
집주인과 여집사를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당한 제임스 맥더모트(커 로건). / 사진:SABRINA LANTOS/NETFLIX
캐나다 CBC와 넷플릭스의 신작 미니 시리즈 ‘알리아스 그레이스(Alias Grace)’는 마거릿 애트우드가 1996년 발표한 동명의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대다수가 그렇듯이 이 소설과 드라마 역시 이야기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가 허구다.

애트우드는 아일랜드계 캐나다인 하녀 그레이스 마크스의 이야기에 매혹됐다. 마크스는 16세되던 1843년 고용주 토머스 키니어와 그의 여집사 낸시 몽고메리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3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다가 사면으로 풀려났다.

애트우드는 이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빈 곳을 메워 소설을 썼다. 드라마 ‘알리아스 그레이스’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추측과 상상으로 꾸며낸 이야기인지 살펴봤다.
 제임스 맥더모트
커 로건이 연기한 제임스 맥더모트는 키니어 집안의 하인으로 마크스의 공범이었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그에 대한 묘사는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 더 사실에 가까운 듯하다. 실제 맥더모트는 1843년 ‘토머스 키니어 씨와 여집사 낸시 몽고메리 살인 사건에 대한 제임스 맥더모트와 그레이스 마크스의 재판. 1843년 11월 3~4일, 어퍼 캐나다’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했다(어퍼 캐나다는 현재의 온타리오 주를 말한다). 이 문서는 드라마 ‘알리아스 그레이스’ 첫 회에 등장하며 이 이야기의 주된 역사적 자료로 쓰였다. 맥더모트는 여기에 재판 과정에 대한 설명과 초상, 그리고 마크스의 자백 내용을 집어넣었다.

키니어의 마구간에서 일하던 맥더모트는 그를 살해한 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맥더모트는 또 여집사인 몽고메리를 살해한 혐의도 받았지만 키니어의 살인 죄로 이미 사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에 이 혐의에 대한 공식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맥더모트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던 제임스 월시는 맥더모트가 살인이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날 저녁 “희끄무레한 뭔가를 손에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걸 봤다”고 증언했다. 월시는 맥더모트가 피해자의 옷을 입고 손에 총을 들고 있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 증언은 애트우드의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실제 마크스는 자백(이 내용 중 일부가 드라마에 인용됐다) 과정에서 맥더모트와 몽고메리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마크스는 맥더모트가 몽고메리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자신에 털어놨으며 자신은 그를 돕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맥더모트가 몽고메리와 키니어를 죽인 방식은 소설과 드라마에서 동일하게 묘사됐다. 시체를 지하실로 통하는 작은 문으로 버린 뒤 두 사람이 함께 도망쳤다가 미국 메인 주 루이스턴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그레이스 마크스
집주인과 여집사 살인 사건의 공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레이스 마크스(사라 가던). / 사진:JAN THIJS/NETFLIX
마크스의 재판과 자백에 관한 내용은 모두 사실과 일치한다. 수잔나 무디의 1853년 저서(‘Life in the Clearings Versus the Bush’)는 재판 이전 마크스의 삶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며 애트우드가 1996년 ‘알리아스 그레이스’를 집필하는 데 영감을 줬다. 마크스의 가족은 그녀가 열두 살 때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이민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처럼 알코올 중독자에 폭력을 휘둘렀다.

마크스(사라 가던)는 살인죄로 기소된 뒤 잠시 정신병원에 수용됐다가 킹스턴 교도소로 이감됐다. 그녀는 그곳에서 3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 사면 받아 미국 뉴욕 주 북부로 이주했다. 이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드라마에서는 결혼해 평온을 찾는 것으로 나온다)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심리학자 사이먼 조던
마크스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심리학자 사이먼 조던. / 사진:SABRINA LANTOS/NETFLIX
마크스가 그렇게 오랜 세월 감옥살이를 한 뒤 사면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에 애트우드의 상상력이 끼어든다. 애트우드는 사이먼 조던(드라마에서는 에드워드 홀크로프트가 이 역을 맡았다)이라는 가상의 심리학자를 등장시킨다. 조던은 상담을 통해 마크스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려 한다. 애트우드는 조던을 통해 마크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캐나다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논란을 탐구했다. ‘마크스는 공범이었을까 아니면 무고한 들러리였을까?’라는 문제다.
 토머스 키니어와 낸시 몽고메리
낸시 몽고메리 역의 애나 파킨(왼쪽)과 토머스 키니어 역의 폴 그로스. / 사진:SABRINA LANTOS/NETFLIX
애트우드는 키니어와 몽고메리 살해 사건과 관련 인물에 대해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녀는 소설 ‘알리아스 그레이스’ 후기에 이렇게 썼다. ‘키니어의 여집사 낸시 몽고메리는 사생아를 출산한 적이 있으며 토머스 키니어의 연인이었다. 시신 부검 결과 피살 당시 그녀는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크스는 몽고메리가 맥더모트에게 종종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다. 그 밖에 키니어(폴 그로스)와 몽고메리(애나 파킨)의 성격 묘사는 배우들이 만들어낸 허구다.
 메리 휘트니
‘메리 휘트니’는 마크스가 살인 사건 이후 잠적하면서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메리 휘트니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
 제임스 월시
제임스 월시는 실존 인물이었으며 맥더모트와 마크스의 재판에서 두 사람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하지만 그가 마크스를 사랑했다거나 드라마에서처럼 나중에 그녀와 결혼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는 없다.
 약장수 제레미아
드라마에서 재커리 리바이가 연기한 이 마술사 캐릭터는 애트우드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역사적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언급된 적이 없다.

- 애나 멘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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