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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법으로 탈바꿈시킨 대통령”

“이상을 법으로 탈바꿈시킨 대통령”

롭 라이너 감독의 새 영화 ‘LBJ’, 베트남전으로 평가 엇갈리는 린든 B. 존슨을 새롭게 조명한다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직후 부통령이던 LBJ(우디 해럴슨· 가운데)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장면. 오른쪽은 LBJ의 부인 레이디 버드 (제니퍼 제이슨 리). / 사진:YOUTUBE.COM
배우 우디 해럴슨(56)은 미국 하와이 주 마우이섬의 해변가 집에 산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그가 하와이에 머무른 시간은 보통 신혼여행객의 체류기간 정도밖에 안 된다. 지난 10월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영화 ‘LBJ’ 홍보차 뉴욕 시에 머무르고 있는 해럴슨을 만났다. 그는 미국의 제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LBJ)에 관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해럴슨은 올해 ‘LBJ’를 포함해 6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난 게으른 후레자식”이라고 말했다.

해럴슨은 나이보다 적어도 10년은 젊어 보인다. 건장한 체격에 소년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4반세기 전 TV 드라마 ‘치어스’에서 우디 보이드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바보스러운 미소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젊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는 심신이 매우 지쳤다고 말했다. “난 게으름 피우며 빈둥거리는 게 더 좋다”고 해럴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와이의 집으로 돌아가서 수영복만 입고 히피처럼 살고 싶다. 난 일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실제로는 왜 그렇게 일을 많이 할까? “‘더 글래스 캐슬’(지넷 월스가 쓴 동명의 베스트셀러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해럴슨은 붕괴된 가정의 가장으로 나온다)은 처음부터 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LBJ’와 ‘혹성탈출: 종의 전쟁’, 그리고 8개월에 걸쳐 촬영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내년 개봉 예정) 등은 어쩌다 보니 하게 됐다. 원래 올 후반기는 쉬려고 했는데 11월까지는 집에 돌아갈 수 없을 듯 하다.”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럴까? 어쩌면 해럴슨은 ‘덩크 슛’(1992)에서 그가 연기한 빌리 호일(내기 농구에서 겉보기와 달리 막강한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캐릭터) 같은 인물일지도 모른다. 입으로는 연기보다 게으르게 빈둥거리는 걸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매우 성실하며 다양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배우 말이다. 그는 영화 ‘헝거 게임’ 시리즈의 코믹한 캐릭터든 HBO 드라마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에 나오는 어두운 성격의 형사든 몸에 맞춘 듯 편안하게 연기해낸다. 로버트 미첨과 로버트 듀발을 합쳐놓은 듯한 해럴슨이 이번엔 LBJ로 분했다.
롭 라이너 감독은 이 영화에서 무신경하기로 유명했던 LBJ의 세련된 측면과 인간성을 부각시켰다. / 사진:YOUTUBE.COM
롭 라이너 감독의 ‘LBJ’를 보면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LBJ보다 해럴슨의 실제 나이가 더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영화는 LBJ가 52세이던 1960년 대통령 예비선거부터 1964년 연두교서 발표 때까지 그의 정치 행로를 담았다. 전임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되던 1963년 11월 22일은 이 영화의 구심점이다. 해럴슨은 2년 전만 해도 자신과 같은 텍사스 주 출신이며 ‘상원의 마스터’로 불렸던 LBJ 역할을 거절했지만 제작자 롭 모런의 간곡한 요청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모런은 내가 뉴욕에 온 뒤 첫 번째 룸메이트였다”고 해럴슨은 말했다. “그는 ‘자네가 LBJ를 꼭 맡아줘야겠다’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해럴슨은 “그 역할을 절대로 맡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베트남전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라이너 감독은 그동안 영화에서 베트남전 이야기를 애써 피해 왔다(라이너는 베트남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의료적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았다). ‘LBJ’는 LBJ의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그의 정치 역정 중 몇 장을 발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신경하기로 유명했던 그의 세련된 측면과 인간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한 작품이다. “사실 LBJ는 프랭클린 D. 루즈벨트를 제외한 다른 어떤 대통령보다 더 많은 업적을 이뤘다”고 해럴슨은 말했다.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장)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장) 실시, 인권법 제정 등등. 베트남에서는 완전히 수렁에 빠졌지만 그 밖에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대통령이었다.”

라이너도 이와 비슷한 반전 견해를 들려줬다. “난 베트남전 당시 징집대상이었는데 LBJ 때문에 그곳에 파견돼 죽을 수도 있었다”고 라이너 감독은 말했다. “난 그를 몹시 증오했다. LBJ를 보는 내 시각은 그게 전부였다.”

LBJ에 대한 라이너 감독의 견해가 바뀐 건 2008년 그가 동성혼을 금지하는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8호에 대한 반대투쟁을 하면서였다. 이 발의안은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바로 그날 통과됐다. “그날 밤은 기분이 정말 착잡했다”고 라이너 감독은 말했다. “오바마의 당선을 보면서 ‘미국이 이렇게 진보적인 나라였나’하고 가슴이 설렜던 동시에 주민발의안 8호의 통과로 낙담했다.”

라이너 감독은 캘리포니아 주민발의안 8호 반대운동을 하면서 정책과 정치, 정부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공부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상을 법으로 탈바꿈 시킨 LBJ의 능력을 깊이 존경하게 됐다. 라이너 감독은 “우린 영화에 LBJ의 부인 레이디 버드(제니퍼 제이슨리)가 침실에서 남편에게 ‘케네디는 높은 이상을 지닌 사람이었어요. 이제 우리에겐 그것을 실천할 사람이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넣었다”고 말했다. “LBJ는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LBJ는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영화 ‘LBJ’에서 LBJ 역을 맡은 우디 해럴슨. 촬영 당시 그는 매일 보철 특수분장을 하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 사진:YOUTUBE.COM
이 영화는 인종평등에 관한 LBJ의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그를 실용적인 정치 고수로 묘사한다(한 장면에서 LBJ는 참모들에게 “난 남부인과 케네디 대통령의 목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틴 루터 킹에게는 꿈이 있었지만 LBJ에게는 의무가 있었다. 영화 후반부에 사면초가에 몰린 LBJ가 어두운 밤 차를 타고 링컨 기념관 앞을 지나가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당신이 어질러 놓은 걸 지금 제가 치우고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촬영 당시 해럴슨은 보철 특수분장을 하는 데만 매일 3시간(제거 시간 포함)이 걸렸다. 갈색 콘택트 렌즈까지 착용했다. 하지만 특수분장을 동원한 해럴슨의 이런 물리적 변신은 1964년 제정된 민권법보다 더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하다. 해럴슨이 리처드 젠킨스(인종차별주의자인 남부 상원의원 리처드 러셀 역)와 함께 나오는 장면은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젠킨스의 외모가 LBJ와 더 닮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또 역사적으로도 LBJ를 왜곡시켰다. 거칠고 저속한 면보다는 헌신적인 남편의 모습을 강조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미국의 기념비적인 정치인을 묘사한 작품이다. 힙합이 빠진 ‘해밀턴’(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을 그린 힙합 뮤지컬)이라고 할까?

트럼프의 시대에 실용주의적 대통령이었던 LBJ에 관한 영화를 내놓는 것이 잔인하게 보일 수도 있다. 또 만화책 주인공이 은막을 주름잡는 시대에 LBJ처럼 애증이 엇갈리는 인물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보단 영웅이나 괴물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더 잘 나가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라이너 감독은 말했다. “베트남전이 아니었다면 LBJ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전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다. 그래서 난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게 됐다. LBJ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진정으로 믿었는지는 모르겠다”고 해럴슨은 말했다. “영화에서 우리는 로버트 F. 케네디가 LBJ를 신뢰하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했다. 나 자신도 LBJ를 신뢰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다만 정치적 편의주의를 지향했던 인물이라는 건 안다.”

그렇다면 LBJ에 대한 성격 묘사가 이렇게 어정쩡한 영화가 관객에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LBJ는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었을진 모르지만 누가 봐도 성격이 확실히 드러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영화 주인공으로는 더 적합할 듯하다.

- 존 월터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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