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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3) 리더라는 자리의 기원] 원시 부족장 권력의 근원은 구성원 동의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3) 리더라는 자리의 기원] 원시 부족장 권력의 근원은 구성원 동의

무조건적 군림 아닌 보완 관계…헌신의 역할 망각해 권력 남용 사건 잇따라
남미 브라질의 중부지방. 우리는 보통 울창한 열대우림 아마존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거의 2000km에 이르는 황량한 고원지대인 까닭이다. 우기에는 초원이 되지만, 건기에는 반 사막이 되는, 브라질에서 손꼽히는 불모지대 중 하나다. 모래가 많아 가시가 돋치고 휘어진 관목 만이 자라는 곳이라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이 거의 없는, 척박한 생태계다. 그런데도 사람이 산다. 먹을 게 별로 없어 소규모 단위로 흩어져 유랑하는 남비콰라족이다.

오래 전 이 부족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학자가 있었다. 구조주의 창시자로 유명한 프랑스 인류학자이자 철학자인 레비-스트로스다. 그는 1937년부터 약 1년 정도 이 지역에 사는 전통 부족을 관찰하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그 경험을 담은 책이 바로 [슬픈 열대]다. 당시 남비콰라족은 십여 명에서 수십 명 단위로 무리를 이루어 살고 있었다. 말한 것처럼 워낙 황량한 곳이라 많은 수가 모여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을 터인데 레비-스트로스가 갔을 때 그들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였다. 100여년 전까지 2만여 명에 이르렀다는 인구는 서양인이 가져온 질병과 갑작스럽게 밀려온 서구 문명에 휩쓸려 소멸해가고 있는 상태였다. 기록에 따르면 1000여 명 가까이 되는 공동체가 열 몇 명 수준으로 줄어든 곳이 허다했다.
 브라질 남비콰라족에서 보는 공동체의 원형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덕분에 문명권의 인류가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문명 이전 우리 인류가 어떻게 공동체를 유지해왔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레비-스트로스의 표현대로 하자면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환원되어 있는 사회”였던 까닭이다. 무엇보다 족장이라는 지위로 나타나는, 리더라는 존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기원을 추정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책에는 군데군데 이 족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중에는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 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공동체와 족장의 관계가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수 있는 까닭이다.

소규모 무리를 이끄는 족장의 권한은 막대했다. 그는 무리가 언제 어떻게 이동해야 하고, 어느 곳으로 가야 하며 얼마나 그곳에서 지내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로 사냥을 나가야 하며, 이웃 부족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까지 거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거의 전권에 가까운 힘을 갖고 있으니 무리의 지속이 그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족장은 어떻게 이 ‘높은 자리’에 오를까? 문명 국가의 왕처럼 세습을 할까, 아니면 힘 센 자끼리 경쟁으로 결정할까? 그것도 아니면 승진으로? 답은 승진이다. 전임 족장이 후임을 지명하니 일종의 발탁 승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 능력이 있고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면 이 족장이라는 자리, 좋은 자리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자리는 아니다.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했던 것처럼 무리가 언제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고, 생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냥을 진두지휘해야 한다. 그냥 ‘가즈아!’ 하면서 앞장 서면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이동했는데 좋은 곳이 아니라든지, 엉뚱한 곳을 헤매다 빈털터리로 돌아오는 날이 늘어나면 신임은 떨어지고 불만은 커진다. 구성원을 잘 먹여 살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불만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불만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도 ‘쿠데타’ 같은 사태가 일어날까? 레비-스트로스는 그런 사례까지는 관찰하지 못한 듯한데, 대체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나 둘 그 집단을 떠나버린다. 수십 명 규모의 무리에서 구성원이 그렇게 떠나버리면 무리는 금방 형편 없이 축소되고 만다. 이런 일이 지속되면 족장이라는 역할도 사라진다. 사냥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숫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족장의 자리를 버리고 다른 무리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무리 자체가 소멸된다. 리더라는 자리는 구성원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데 구성원이 사라지니 그 자리도, 지위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평소’ 잘 해야 한다. 부족원은 족장이 “이동하자”고 할 때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면 된다. “사냥하러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면 된다. 하지만 족장은 부족원들이 쉬거나 놀 때 끊임없이 정찰을 해야 한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나중에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사냥하기 좋은 곳은 어딘지 보아 두어야 한다. 혹시 적대적인 부족이 근처에 있다면 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호적인 부족이 있으면 정보를 교환해야 한다. 훌륭한 족장이 되려면 이런 걸 상세히 파악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건 그가 해야 하는 일의 일부다. “화살의 독을 준비하는 사람은 족장이다. 족장은 유희에 사용되는 야생의 고무로 만든 공도 만든다. 무리들이 단조로운 일상생활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노래도 잘 하고 춤도 잘 출 줄 아는 쾌활성을 지녀야 한다. 자연히 샤머니즘과 연관을 갖게 되는데, 실제로 몇몇 족장은 치료사와 주술사의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훌륭한 족장은 솔선수범해야 하며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뿐인가? 그는 또 부족원에게 관대해야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그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족장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주 선물을 하곤 했다. 도끼·칼·진주 같은, 그들에게는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런데 족장은 이런 귀한 물건을 하루나 이틀 이상 갖고 있는 일이 없었다. 며칠 지나고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이 그걸 갖고 있었다. 족장이 그들에게 주었거나 아니면 달라고 하니 아낌 없이 준 것이다. 족장은 그렇게 베푸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어야 했다. 족장의 권위는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권위는 그의 능력과 관대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레비-스트로스도 이렇게 말했다. “그가 가진 가장 주요한 수단은 관대함이다.”
 리더의 권위는 능력과 관대함에서 나와
족장은 그런 물건이 탐나지 않았을까?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면 족장이 그런 물건에 욕심을 부리거나, 부족원에게 과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나 둘 빠져 나가 무리가 소멸되어 버린다. 그러니 족장은 관대함으로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

언젠가 한 무리가 이동할 때였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그런지 길을 잃었다. 사냥거리가 있을 줄 알고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아 먹을 것도 없었다. 아침이 되자 구성원들은 노골적으로 족장에게 불만스럽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뭔가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대신 모두 나무 그늘 밑에 드러누워 있었다. 빨리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는, 일종의 태업을 통해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족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족장은 아내 중 한 명을 데리고 사라졌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바구니에는 온종일 그들이 채집한 메뚜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그걸 채집해 온 것이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기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는 양이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기분을 돌린 덕분에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족장은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임 족장이 후임 족장을 지명하면 거부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너무 힘든 걸 아니 사양하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이 어렵고 힘들고 골치 아픈 족장이라는 자리를 왜 할까? 이유가 있다. 리더라는 역할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물질적 특혜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들은 유랑생활을 했기에 아이를 많이 낳을 수가 없었다. 아니 더 나아가 대단히 조심스런 출산 문화를 갖고 있었다. 아이가 많으면 이동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의 일부일처제를 이루고 있었는데, 유일하게 예외를 누리는 사람이 족장이었다. 족장은 무리 내에서 가장 예쁜 여성과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유전자 측면에서 보면 자신의 후손을 훨씬 더 많이 남길 수 있는, 특혜라면 대단한 특혜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특혜는 공동체를 지배하면서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죽도록 고생하는 대가로’ 공동체가 부여해준 특혜였다. “족장이 그의 책무를 완수하도록 집단이 족장에게 부여한 수단”이었다.
 늑대 우두머리도 상당히 민주적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등 상당히 민주적이다.
묘한 건, 이들이 사는 곳과 전혀 다른, 더구나 종(種)까지 다른 집단에서도 이런 역할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북미 대륙과 유라시아대륙 북부에 사는 늑대 무리의 대장이 그 주인공이다. 늑대 무리를 이끄는 대장은 남비콰라족의 족장이 하는 일과 거의 같은 일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다는 것인데, 그렇게 올라도 집단을 잘 먹여 살리지 않으면 금방 내려와야 한다. 대신 대장은 무리 내에서 유일하게 자기 후세를 남길 수 있다. 무리의 구성원들은 새끼를 낳을 수 없지만 대장 부부는 예외다. 아마 살기 어려운 환경에서 각자 새끼를 낳아 기를 경우 생존률이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서로 자기 새끼를 우선하려다 보면 전체 무리의 결속력이 떨어지기에 이런 시스템을 선택했을 것이다. 다른 구성원들은 이들 새끼를 공동으로 기른다.

이들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중부의 열대우림에 사는 음부티 족이나 태평양 멜라네시아에도 비슷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많다. 서로 교류가 없는 이들이 왜 거의 같은 사회구조를 갖고 있을까? 아마 환경 때문일 것이다. 환경이 그들에게 그런 선택을 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에 산다. 척박하거나 불확실성이 가득한, 아니면 이 두 상황이 지배적이어서 살기 어려운 곳이다. 이런 곳에서 혼자 산다는 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집단생활을 선택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능력이 걸출한 존재에게 무리를 리드하게 해서 생존력을 높이는, 각자 역할 분담에 기초한 사회구조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힘으로 누군가를 지배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잘 살기 위한 구조를 만들다 보니 비슷해진 것이다(생물학에서는 수렴진화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장(長)과 구성원이라는 계급이 있긴 하지만 전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 지배관계가 아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 분담에 가깝다. 족장이나 우두머리라고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는 늑대의 우두머리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는 상당히 민주적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일이 많다. 남비콰라 부족의 족장들도 마찬가지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부족의 족장이 가진 권력의 근원은 ‘동의’에서 나온다고 하고 있다. “(족장은) 동의를 받을 때만 존재한다. 동의는 권력의 기원이 되는 동시에 그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기도 하다.”

협력하는 공동체의 기원은 이렇듯 역할 분담에서 생겨난 것이다. 족장(리더)이라는 자리와 지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지배하고 지배받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완한다. 구성원은 족장 없이 살기 힘들고, 족장은 구성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문명권에 사는 인류는 이 관계를 정착생활과 농경을 시작하면서 잃었다. 농경으로 잉여 생산이 시작되고 각종 전쟁 무기가 개발되면서, 약탈을 생업으로 하는 이들이 나타나 근육에서 나오는 힘, 칼과 총구에서 나오는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종속의 관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 후 철저한 신분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했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비슷한 침팬지 사회에도 우두머리라는 존재가 있다.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르지만 그렇다고 힘으로만 군림하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같은 침팬지들이지만 동물원에서는 반대다. 근육에서 나오는 힘이 절대적인 권력을 만든다. 차이는 하나. 야생에서는 먹이를 스스로 얻어야 한다. 협력이 필수이니 구성원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하지만 먹이가 주어지는 동물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힘으로 그걸 빼앗으면 되니 구성원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 힘이 전부다. 그래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게 된다.
 구성원의 진심어린 협력 구해야
요즘 권력을 남용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헌신으로 보지 않고 지위에서 오는 힘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쓴 결과다. 그 자리를 헌신의 수단이 아니라 지배의 수단으로 여겼다. 전 근대적 방식이다.

세상은 이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 되고 있다.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것보다는 구성원 모두의 진심 어린 협력이 필요한 시대다. 지배가 아니라 공존하는 구조에서 이런 협력이 나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앞에서 예로 든 여러 집단이 같은 사회구조를 선택한 건 그런 환경에는 그런 사회구조가 최적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런 환경이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조직구조를 갖고 있을까?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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