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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6)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존경을 받을 건가 버림을 받을 건가

[이필재의 ‘브라보! 세컨드 라이프’(6)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존경을 받을 건가 버림을 받을 건가

백수(白壽)의 노교수가 권하는 노년의 삶...어려선 되레 약골
사진:김현동 기자
“어쩌면 우리 국민들이 노인을 원로로 만들어주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뿌리깊은 저항의 잠재의식이 알게 모르게 기성세대에 항거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의식을 심어줬기 때문이죠.” 김형석(99) 연세대 명예교수는 “종교계를 포함해 분야를 막론하고 원로 없는 사회가 돼 버린 거 같다”는 말에 수긍하며 그 원인에 대해 “역사적으로 투쟁이 정의라는 생각이 굳어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중산층이 만들어지고 1세기쯤 지나면 상위의 중산층이 지도층을 형성합니다. 보통 이 지도층의 연장자들이 원로로 불리죠. 한국 사회는 중산층이 생겨난 지 얼마 안 된 탓에 원로다운 원로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함석헌 선생, 장준하 선생 같은 분도 체제에 항거해 존경을 받았는데 함 선생만 해도 이것저것 틀렸다고 지적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대안 부재였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도 비로소 원로 그룹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 세대에 이르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발언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이제 원로가 좀 나올 거로 전망하고, 기대도 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1920년 생이다. 우리 나이로 아흔아홉, 그러니까 백수(白壽)다. 백수라고 할 때 흰백 자를 쓰는데 일백 백(百)에서 가로 획 한 일(一)을 빼면 99이고, 그럼 흰 백(白) 자가 되어 이렇게 부른다. 2년 전 그가 펴낸 책 [백년을 살아보니]는 출판 불황에 15만권 팔렸다. 지난해 그는 연간 165회의 강연을 소화했다. 한때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다 23(하루이틀)일 앓고 4일(나흘)째 가는 게 좋다는 이야기가 회자됐었다. 그야말로 99세까지 88하게 살고 있다. 지난 8월 15일엔 [행복예습]이라는 제목으로 행복론 책을 냈다. 그는 이 책에 이렇게 썼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행복이 머문다. 사랑이 있는 고생은 더 큰 행복을 안겨준다.’ 그는 “내가 나를 위해 하는 일은 해봤자 행복하지도 않고 남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행복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위해 주는 것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죠.”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60은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입니다. 나를 믿어야 행복합니다. 또 자녀가 독립하고, 사회적으로는 정년을 맞아 직업인으로서의 삶이 끝나고 사회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나이에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바르게 살았다면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죠. 성장하는 동안엔 열매가 익어갑니다. 직업인 삶이 끝나 화려한 꽃은 떨어졌지만 이렇게 익은 열매가 사회를 위해 떨어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하철 경로석에서 노인들이 서로 ‘민증’을 깔 뻔한 사태를 목격한 일이 있습니다. 노추에 빠지지 않고 곱게 나이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본에서 대학에 다닐 때 식당에서 웨이터를 했습니다. 알바죠. 인격을 갖춘 손님은 학생복을 입은 알바생을 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야 이거 가져와 저거 가져와’했죠. 그때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야 존경받는다는 것을. 늙어서 젊은이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면 버림을 받습니다.”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기사에게 “고맙습니다” “덕분에 잘 왔습니다” “더운데 수고하시네요” 등의 인사말을 건넨다. 아들딸과 저녁 외식을 하다 시간이 길어지면 식당 직원에게 다가가 “늦도록 우리 때문에 수고한다”고 인사를 한다. “손주들에게 모범을 보이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는 건 ‘당신의 수고로 내가 행복하다’는 마음을 전해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어요. 자기 일에 자부심을 못 느끼면 평생 불행해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들면 생활 자체가 운동을 동반하는 습관이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아흔이 넘으면 운동이 생활이 되고 생활이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집에서 앉아 있지만 않고 조금씩 몸을 움직이는 식이죠. 나는 2층의 내 방을 하루에도 몇 십 번 오르내립니다.”



우리 사회에 갈등이 심각합니다. 촛불 민심이 탄생시킨 정권인 데도 국민 화합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듯싶습니다.


“팔로우어십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저항이 옳다는 생각이 강하면 잘 따르려 들지 않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마음에 거짓이 없고 인기를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 같아요. 애국적 권위의식이 있는 사람은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갈 땐 국민의 90%가 동의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에 대해서는 국가를 위한 판단을 넘어선 거 같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촛불집회로 분출한 민심은 과거 정권에 노 한 거지, 이 정권을 지지하는 건 아닙니다.”
 존경 받는 기업인 나와야


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참모들이 운동권 학생 시절의 경제관에서 못 벗어나면 우리 경제가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정치가 기업을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기업을 옥죄면 경제가 어려워져요. 기업인들이 욕을 먹지만 그래도 정치인보다는 나아요. 우리도 하루빨리 존경받는 기업인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철학계 1세대 교육자다.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를 나왔고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 간 후학을 양성했다. 철학의 사회적 가치는 무엇일까? 그는 “철학을 인문학으로 확장할 수 있는데 다른 학문과 달리 인문학은 일절 구속을 받지 않아 자유롭고 그렇기에 창조력의 원천이다”라고 말했다. “인문적 소양을 갖춰야 큰 인물이 됩니다. 미국이 강대국이 된 것도 인문적 사고를 하는 지도자들이 미국을 이끌면서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을 창조해 왔기 때문이죠. 철학을 공부하면 오십쯤 됐을 때 나의 철학 곧 나 자신의 인생관·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80분 간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여러 사람을 거명했다. 고령에도 이들의 이름을 줄소환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그는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살다 보면 기억력을 유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나의 문제의식이 다른 문제의식으로 이어지는 거죠. 관련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서 고유명사를 가장 먼저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게 동사입니다. 그래서 집 전화번호는 잊어버려도 배가 아프다는 말은 할 수 있죠.” 그는 이 나이까지 살게 될 줄 알았다면 재혼을 했을 거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부인 김옥수씨는 20년 넘게 병석에 있다 1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병중에 있을 때 어머니가 유언처럼 ‘다 떠나고 나면 결국 혼자 남을 텐데 빈 집에서 혼자서 어떡하느냐’고 하셨는데 그게 재혼하라는 이야기였어요. 아흔쯤 되면 친구도 거의 없습니다.” 그는 여든넷에 상처한 후 아흔까지만 살면 될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100세 시대라지만 80대 중반이면 대개 혼자가 됩니다. 그런 후배·제자들에게 될 수 있으면 재혼을 하든, 연애를 하든 이성을 만나 사랑을 하면서 살라고 권합니다. 더 살아봤자 얼마나 살겠다고 하는 생각에 나는 실패했지만.”
 상처하면 재혼을
1970~80년대 그와 함께 철학계 삼총사로 불린 안병욱 숭실대 교수, 김태길 서울대 교수는 아흔을 전후해 세상을 떠났다. 세 사람은 공교롭게도 갑장이다. “나 혼자 남아 지금도 일을 하고 있죠. 두 사람은 나보다 건강이 좋았어요. 안 선생이 생전에 나더러 ‘김 선생은 정신력이 강해 우리보다 오래 살고 일을 많이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신력이란 신앙인으로서의 자세를 이야기한 거죠.”

그는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 건강이 안 좋아 아버지가 친구 의사에게 자신을 데려갔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약해서 중학교에 못 간다고 말했다. 철없는 나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믿는 하나님에게 매달렸다. ‘중학교에 가게 해 주시면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나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는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오십이 넘어서였다고 말했다. “50대 후반에 수영을 시작해 지금도 지속적으로 합니다. 수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건강을 유지 못했을 거예요. 수영은 관절에 좋고 전신운동이라 몸의 균형을 잡아주죠. 수영 덕에 아직 관절에 문제가 없어 지팡이를 짚지 않는데 내년엔 짚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예수]는 그의 주요 저서로 꼽히는 책이다.



기독교가 교회 세습 등으로 시끄럽습니다.


“기독교인은 예수의 가르침을 자신의 인생관·가치관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교회를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앞으로 교회 없는 사회가 올지 모릅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교회는 차라리 없어져야 돼요. 더욱이 교회 세습은 말도 안 돼요. 교회가 없어도 기독교 정신이 살아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먼저 간 두 친구 안병욱·김태길 교수가 도산이나 인촌 선생보다 못하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강연을 다니다 보면 ‘안병욱 선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나한테 해요. 그렇게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버킷 리스트가 뭡니까?


“지금 하는 집필과 강연을 죽을 때까지 하는 겁니다. 사랑이 있는 수고와 봉사를 하다 오래 앓지 않고 가고 싶어요.”

그가, 아흔을 넘기면 신체적으로는 피곤하다고 말했다. 하루하루를 환자처럼 살아간다고 했다. “절대 편안하지 않습니다. 시력과 청력이 감퇴하고 균형감각도 떨어집니다. 피곤함을 일로 극복하는 거죠.” 그에게 묘비명을 어떻게 새기고 싶은지 물었다. “안병욱 선생이 강원도 양구에 누워 있습니다. 나도 나중에 거기로 갈 거고요. 우리 둘을 위한 묘비를 내가 마련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 겨레와 나라를 항상 걱정한 두 사람이 잠들다. 이름은 잊혀지더라도 이들의 마음은 남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함께 카페를 나섰다. 41년 전 대학 신입생 때 기자는 그의 철학 강의를 들었다. 내리막길을 걸어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녹색 신호등의 숫자가 빨간색으로 바뀌기까지 20초가 채 남지 않았다고 알려줬다. 그를 따라 길을 건너는 데 걸음 속도가 젊은 사람 못지않다. “집에서 2층에 있는 방으로 오르는 계단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오르내린다”고 한 그의 말이 생각났다. 돌아서 가는 노교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으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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