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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엔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 엔화는 일본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다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엔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워드] 엔화는 일본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다

‘안전자산’과 ‘미국’이 엔화 움직여 ... 최근에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미국의 묵인도 영향
사진:© gettyimagesbank
지난 추석 연휴가 끝나자 엔화 가치가 급락했다. 9월 말에는 100엔 당 980원을 맡돌았다. 엔화 가치가 변동하면 국내 시장에서는 희비가 엇갈린다. 가까운 선진국으로 휴가를 떠나고 싶은, 또는 미각에 예민한 여행객에게는 희소식이지만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 기업 입장에서는 수출 시장에서 가격적으로 손해이기에 웃을 수 없는 입장이다. 통화가치는 그 국가의 총체적 경제력을 투영하는 법이지만, 엔화는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국제금융시장에서 글로벌 자본이 수익을 추구하는 거래 중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엔화를 매도하는 거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근 엔화는 왜 하락했을까?
 금융시장 좋을 때마다 ‘캐리 트레이드'
엔화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전자산 선호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의 위험회피 심리다. 고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글로벌 자본은 금융시장이 평온한 시기에는 엔화를 빌려 외환시장에서 매도함과 동시에 고금리 통화를 매수한다. 통화 간 금리 차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수익으로 연결된다. 금융시장 안정기에는 이런 거래가 증가하며 외환 시장에서 엔화의 매도는 엔화 약세로 귀결된다. 이런 거래를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고 한다. 통화 간 금리 차가 클수록 기대 수익이 커지기에, 오랜 기간 저금리의 대명사였던 엔화가 매도(조달) 통화로 많이 활용된다.

반대로 금융시장에 악재가 발생하면 이런 거래는 청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장에 악재가 발생하면 고금리 자산 등 위험자산의 약세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공학의 힘을 빌려 프로그래밍된 거래들이 자동적으로 이런 청산 과정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투자한 고금리 통화를 외환 시장에서 매도하는 동시에 그 상대 통화였던 엔화를 다시 집중적으로 매수한다. 이것이 금융시장에 악재가 발생해 주식 등 위험자산이 하락할 때 엔화가 안전자산의 행태를 보이는 메커니즘이다.

실제 안전자산의 순위를 가늠한 최근의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엔화는 최근 10년 간 2011년과 2012년 중 2위를 차지한 때를 제외하고 매년 1위에 올랐다. 달러화·금 등 대표적 안전자산들을 압도한 것이다.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이 한국보다 낮아졌음에도 엔화가 독보적인 안전자산의 행태를 보이는 배경은 금리 차를 노린 글로벌 자본의 (수익을 추구하는 행태의)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엔화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미국이다. 외환시장은 달러화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와 엔화를 맞교환하는 거래의 비중은 압도적으로 많다. 최근 통계(2016년 BIS)에 따르면 그 규모는 달러화와 원화를 맞교환하는 거래의 12배에 달한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 정치에 민감한 달러·엔 환율에서 엔화 가치의 방향성이 그대로 엔·원 환율에서의 엔화 방향성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역사적으로 강했다. 엔·원 환율이 역사적으로 코스피보다 미국 증시와의 상관관계가 더 뚜렷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배경에서 엔화 움직임을 해석해보자. 먼저 올 여름 동안 시장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던 악재들이 9월 들어 소강상태를 보이자 시장의 불안심리가 완화되면서 엔화가 하락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미국이 20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 조치를 발표했지만, 이미 예견된 조치였던 탓에 시장은 이력이 생긴 듯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주식이나 신흥국 통화 등 위험자산들이 반등했다. 터키·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의 전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완화됐다.

엔화는 국제 정치적인 변수에도 민감하다. 최근 글로벌 정치 환경은 시장의 심리가 개선되는 데 일조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9월 20일)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연임에 성공하면서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이은 남북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름다운 예술작품(beautiful work of art)”이라며 극찬한 것 등도 시장의 투자심리 완화에 긍정적이었다.
 추가적인 엔화 약세 정책 추진력 부족할 듯
또 일본이 통화정책에 대해 미국을 설득한 점이 최근 엔화 약세에 기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위안화나 유럽의 유로화 약세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거론했다. 그런데도 유독 엔화는 언급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대하는 태도와는 달리, 일본에 대해서는 무역 이슈와 환율 이슈를 분리해서 접근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주요 무역상대국과 관계를 재설정하며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있고, 일본과의 무역 협의도 완전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목표로 본격화되는 과정에서도 환율은 주요 쟁점이 아니다. 일본 중앙은행인 BOJ의 최근 통화정책은 공공연한 엔화 약세 정책으로 회자되고 있고, 엔화 약세 정책은 아베노믹스의 근간으로 해석되는 데도 말이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를 의식하고 있는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여 BOJ 정책의 당위성을 인정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묵인을 토대로 최근 엔화 약세가 이어졌지만,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의 위상을 고려할 때 엔화는 금융시장의 악재에 쉽게 반응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금융시장의 악재는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2013년 이후 엔화 약세를 견인한 BOJ 통화정책은 추가적인 엔화 약세를 이끌기에는 추진력이 소진됐다는 평가다. BOJ 통화정책이 엔화 약세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하기보다는 안전자산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의 위험자산 선호 또는 회피 여부, 이에 미치는 국제금융시장 환경이 엔화 향방을 전망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라가르드 총재가 주요 2개국(G2)의 무역갈등 고조와 함께 금융시장 여건이 부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언급했듯이, 안전자산인 엔화의 약세가 더욱 깊어지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다.

※ 필자는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시 때 기업의 헤지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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