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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히어로의 아버지’ 잠들다

‘마블 히어로의 아버지’ 잠들다

스탠 리(1922-2018), 스파이더맨·엑스맨처럼 결함 있는 인물이었지만 ‘우리 시대의 영웅’이라는 지울 수 없는 족적 남겨
사진:COURTESY OF MARVEL, AP-NEWSIS
세계적인 만화 출판사 마블 코믹스의 공동설립자였던 스탠 리가 지난 11월 12일 95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잭 커비, 스티브 디트코를 비롯해 수많은 아티스트와 함께 현대 대중문화에서 오래 남을 아이콘들을 창조한 그는 스파이더맨·엑스맨 등 슈퍼히어로지만 인간적이고 결함 있는 캐릭터처럼 복잡한 유산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22년 12월 28일 스탠리 마틴 리버(본명)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했고 1941년 숙부 마틴 굿먼이 운영하던 타임리 코믹스에 취직했다. 처음엔 작가들의 잉크병에 잉크를 채워주고 점심 심부름을 하고 교열 등 보조 역할을 했지만 재능을 인정 받아 곧 작가로 승진했다. 그의 첫 작품은 1941년 2쪽짜리 스토리였다. ‘캡틴 아메리카’ 코믹스 #3에 수록된 이 작품의 제목은 ‘캡틴 아메리카, 배신자의 복수를 저지하다(Captain America Foils the Traitor’s Revenge)’였다. 그때 그는 스탠 리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했다.

그해 ‘캡틴 아메리카’ 원작자였던 커비와 조 사이먼이 회사를 떠나자 리는 19세의 나이로 타임리 코믹스의 편집자, 그 다음 편집장 직책을 맡았다.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입대한 그는 ‘극작가’로 분류돼 군 교육용 교범과 영상의 대본을 썼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타임리 코믹스로 돌아갔다. 회사는 곧 이름을 ‘애틀라스 코믹스’로 바꾸고 선정적인 로맨스와 공포물을 제작했다. 그때 라이벌 만화책 회사 DC 코믹스는 슈퍼맨·배트맨·플래시 등 슈퍼히어로 장르의 부활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상황이었다. 애틀라스 코믹스에서 독자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은 굿먼은 커비를 다시 불러들어 리와 짝을 이루게 했다.

그때 리의 아내 조앤이 공상적 사회개혁가라는 히어로 캐릭터에 비애와 현실적인 갈등을 혼합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그들은 69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그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애틀라스 코믹스는 1961년 마블 코믹스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리와 커비는 최초의 현대 슈퍼히어로 팀인 ‘판타스틱 포’, 그 다음 ‘헐크’를 제작했다. 뒤를 이어 최초의 흑인 슈퍼히어로 ‘블랙 팬서’, 범생이 고교생 피터 파커(‘스파이더맨’)가 마블 코믹스에서 탄생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만화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

리가 강조한 것 중 하나는 작품 개발을 간소화하는 작업이었다. 이전엔 완성된 대본을 바탕으로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려 만화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리의 ‘마블 방식’은 그와 달랐다. 간략한 줄거리를 기초로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리면 작가가 대본을 채워넣었다. 훨씬 효율적인 이 같은 방식으로 아티스트는 한 달에 여러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엔 대가가 따랐다.

‘스파이더맨’ 아티스트 디트코가 일에 너무 지쳐 그런 작업에 환멸을 느끼고 회사를 떠났다. 리는 직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카리스마 강한 상사였다. 1970년대 ‘마블’ 브랜드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그는 그 대부분을 자신의 업적으로 만들었다(마블이 발간한 만화책 대부분에 그의 이름이 저자로 들어갔다). 커비, 빌 에버렛, 존 로미타 시니어 같은 아티스트가 그림을 그리고 플롯을 만들어 ‘마블의 세계’를 설계했지만 그들은 저작권료를 거의 받지 못했고 리의 명성만 더 높아갔다. 급기야 아티스트들은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그러나 리는 만화책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미디어 제국 건설을 꿈꾼 리는 1981년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하지만 초기 작품인 ‘스파이더맨’ ‘프레드와 바니’ 같은 TV 드라마 시리즈는 실패했다. 그러다가 1992년 제작사 토이 비즈를 인수한 뒤 폭스의 ‘엑스맨’ 만화영화가 첫 성공을 거뒀다. 토이 비즈엔 재능이 뛰어난 CEO 아비 아라드가 있었다. 그는 나중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최고창작책임자와 마블 스튜디오의 CEO가 됐다.

미디어 제국 건설을 꿈꾼 리는 1981년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 사진:AP-NEWSIS
리는 마블 유니버스(흥행수입을 모두 합해 40억 달러나 올린 영화들을 제작했다) 건설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1998년 마블 코믹스를 떠나 처음엔 스탠 리 미디어, 그 다음 파우(Pow!)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그러나 마블의 명예회장으로서 회사와 팬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었다. 말년에 그는 마블 코믹스의 각종 행사에 등장했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 예상치 못한 배역으로 출연해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했듯이 그도 여러 편의 마블 코믹스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아이언맨’에서 플레이보이 회장 휴 헤프너로, ‘판타스틱 포’에선 우편물을 전달하는 ‘집배원’으로,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선 버스 운전기사로 깜짝 등장했다.

리는 많은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자신의 이름을 빛내면서 비난을 샀지만 막강한 영향력으로 엔터테인먼트계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마블 코믹스(2009년 디즈니가 40억 달러에 인수했다)의 공동설립자로서 슈퍼히어로들을 세계적인 인기 캐릭터로 만든 공로가 클 뿐 아니라 특히 고뇌하는 인간적인 슈퍼히어로를 창조함으로써 후세에 친절함과 온정, 용기를 가르친 점은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엑셀시오르(Excelsior, 스탠 리가 생전에 글의 마지막 인사로 늘 사용하던 문구로 ‘더욱 더 높이, 더 큰 영광을 향해’라는 뜻이다)!

- 스티븐 아사치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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