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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위기도 금융 위기처럼 다뤄야”

“미투 위기도 금융 위기처럼 다뤄야”

성희롱 관련해서 미국 연방 의회에서 통과된 법 하나도 없어 … 여성의원 크게 늘어난 새 의회에서 근본 원인 다뤄질지 주목
지난 1월 3일 출범한 116대 미국 의회에 여성의원 수는 하원 441명 중 106명, 상원 100명 중 25명으로 크게 늘었다. / 사진:AP-NEWSIS
지난해 11월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는 ‘미투’ 시대의 첫 총선이었다. 예비선거에서 여성 500명 이상이 연방 상·하원 의원에 출마했다. 그 결과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 3일 출범한 116대 미국 의회에 여성의원 수가 급증했다. 하원의원 총 441명 중 여성이 106명(그중 35명이 초선의원)이고 상원의원 100명 중 여성이 25명이다. 하원에서는 의회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원 100명 선을 넘어섰고, 상원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그 결과는 정치에서 여성이 평등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사실 또한 여실히 드러냈다. 여성이 차지한 연방 상·하원 의석은 전체의 4분의 1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다. 비교하자면 이라크보다 못하다. 사담 후세인 시대 이후 제정된 이라크의 새 헌법에 따르면 여성 의원 비율은 최소 4분의 1이 돼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의 여성 의원 비율이 여전히 낮다는 사실은 미투 운동이 긍정적인 성과를 올렸음에도 연방 차원에선 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언론에서 미투 운동과 관련된 헤드라인이 쏟아진 지 1년 이상이 지났지만 연방의회는 성희롱과 성폭력 신고를 처리하는 내부 절차를 간소화한 것 이외에는 관련 법안을 한 건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지난해의 중간선거로 이제 하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의회가 마침내 이 위기의 근본 원인을 다루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여러 면에서 미투 위기는 2008년의 금융붕괴 위기와 비슷한 양상을 띤다. 금융 위기는 기업들이 더 큰 이익을 위해 부도덕한 행위를 못 본 체하는 관행이 수년 동안 쌓여 기반이 서서히 붕괴되면서 발생했다. 미투 위기도 그와 유사하게 문제가 오랜 시간 쌓이면서 터져 나왔다. 기업들은 직장 내부의 성희롱과 성적 공격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승승장구했고, 피해자는 번번이 열외로 취급 받았다.

그러나 금융 위기와 미투 위기 둘 다에서 문제는 나쁜 사람이 나쁜 선택을 하고는 그 잘못을 숨긴 것만이 아니었다. 사업 결정은 보드 게임처럼 반드시 규칙을 따라야 한다. 규칙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규칙을 어기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다면 규칙을 바꾸지 않고선 행동이 고쳐지지 않는다. 부도덕한 사업 관행과 규제의 허점으로 브로커가 소비자에게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을 마구 주선할 수 있었듯이 고용주가 직장 내부의 성희롱과 성적 공격에 무관심했던 것은 시대에 뒤진 성희롱법으로 기업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투 위기는 기업들이 성차별 신고나 그 외 내부고발자를 다루는 문제에서도 우려를 제기한다. 그런 신고와 고발을 처리하는 내부적인 절차가 성희롱에 관한 절차와 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금융 위기와 달리 미투 위기는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대출금 상환 연체로 주택을 차압당한 소비자는 대부분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소수의 금융사 간부가 실형을 받았지만 실제 몸통은 처벌을 면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미투 운동은 성희롱과 성적 공격의 전력을 가진 수많은 남성이 자업자득으로 준열한 심판을 받았다.
2017년 11월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섹션에서 참가자들은 성폭력과 성희롱에 항의하는 행진을 벌였다. / 사진:AP-NEWSIS
다른 한편으로 금융 위기는 문제를 초래한 시스템적 요인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더 철저한 검토를 촉발했다. 의회는 금융위기의 근원적 원인과 관련해 수많은 청문회를 열었고, 의원들은 관련 위원회를 설립했다. 그런 노력으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이 도입됐고, 소비자 금융보호국(CFPB)이 창설됐다.

그와 달리 미투 운동은 의미 있는 연방법도 도입하지 못했고 청문회도 열지 못했다. 물론 브렛 캐버노 연방 대법관 인준 청문회는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학 임상심리학과 교수가 10대 시절 캐버노 지명자로부터 “육체적·성적으로 공격당했다”고 밝혔다). 현재 성희롱이나 성적 공격과 관련해 제안된 법안은 대부분 고용주가 그런 행위를 비밀로 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고용주의 그런 사실 은폐를 규제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성희롱과 성폭력이라는 범죄를 다룰 필요가 있다.

논객들은 민주당의 하원 지배로 행정부에 대한 감독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윤리 위반과 대통령의 행동·금융 거래가 집중 감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원의 여러 위원회들은 전문가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법안을 검토하는 청문회를 열 수도 있다. 정치적 공방이 극심했던 캐버노 대법관 인준 청문회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런 과정이 지나치게 당쟁적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의회는 미국 연방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의 예를 본받을 수 있다. EEOC는 지난해 여름 직장 성희롱 대책위원회를 재소집했다. 그 회의에서 증언했던 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제안된 여러 법안을 평가하기 위해 업계와 노조 대표, 양측의 변호사 등 모든 관계자들이 보인 선의의 노력에 감동했다. 그 대책위원회는 공화당의 빅토리아 리프닉 위원장 대리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민주당 인사 차이 펠드블룸이 공동으로 이끌어 초당적인 협력의 훌륭한 모델이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신임 하원의장은 중간선거 후 각각 가진 기자회견에서 몇몇 이슈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물론 거기에 미투 운동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미투 운동을 이념적인 문화 전쟁에서 분리해 진지한 정책 이슈로 다루려고 노력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는 미투 위기를 금융 위기처럼 다룰 필요가 있다.

- 엘리자베스 C. 티펫



※ [필자는 오리건대학 법학대학원 부교수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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