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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라크 전쟁?

제2의 이라크 전쟁?

미국이 잘못된 정보로 이라크를 침공한 지 16년, 트럼프 정부가 이란에서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핵 협정에서 탈퇴를 발표한 뒤 5월 9일 이란인들이 반미 시위 중 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성조기를 태우고 있다. / 사진:EPA-STR-YONH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격분했다. 평소 아침 습관대로 백악관 관저에서 TV를 시청하던 중 자신의 역점 정책 중 하나인 이란 캠페인을 휘하의 정보기관장들이 저격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고위 국가안보 담당자 2명과 함께 이슬람 공화국 이란이 여전히 핵무기를 확보하려 애쓰며 이웃과 서방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한다고 2년 전부터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금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해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미국을 비롯한 6개국과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기로 약속했던 합의문 내용대로 움직인다고 코츠 국장은 말했다. 그뿐 아니라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미국이 합의에서 한 약속을 어기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다시 발동한 제재를 풀지 않는다면 이란이 프로그램을 재가동하기로 결정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코츠와 해스펠 국장의 말이 ‘틀렸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어쩌면 정보계가 학교를 더 다녀야 할 듯!’ 그리고 계속해 이란에 비난을 퍼부었다. 그 뒤 며칠 사이 그는 CBS방송·뉴욕타임스와 이례적인 인터뷰를 갖고 이란을 “세계 제1의 테러 국가”로 부르면서 자신이 중동에서 물려받은 “모든 문제”를 이란 탓으로 돌렸다. 놀라운(그리고 전혀 지지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는 자신의 정보기관장들을 가리켜 “이란의 위험 문제에선 극히 수동적이고 순진하다”고 평했다. 그는 그 뒤 이란에 대한 비밀공작의 확대 나아가 군사대결까지 암시했다. “바로 한 주 전까지 우리가 이란에 어떤 일을 하려 했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기억력 좋은 많은 관측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서 17년 전의 결정적인 순간을 떠올리며 섬뜩함을 느꼈다. 당시 역시 공화당 소속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악의 축’ 국가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미국 상공을 이라크의 ‘버섯구름’으로 덮을 무기를 개발하기 직전이라고 비난했다. 다음 해인 2003년 부시 대통령은 20만 명에 육박하는 미군 병력을 이라크에 파견해 핵·화학·생물학 무기를 찾아내도록 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테러 조직 알카에다와 연관됐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그 후 10년에 걸쳐 파멸적인 점령이 이어져 미국과 중동 전체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린다.

베테랑 중동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으로 미국이 또 다른 지역적인 재앙으로 끌려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번에는 이란이 그 상대다. CIA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전 고위 공작원은 이란에 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확한 인식을 두고 베트남 전쟁을 정당화하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반복적으로 보고된 거짓 정보에 비유했다. CIA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며 익명을 요구한 그는 “베트남에 대한 비유로 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엔 이란에 관해 우리 자신과 미국민에게 거짓을 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내일 우리를 공격하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그들의 말은 전투적이지만 미국과 정면 대결할 생각은 없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차스 프리먼 전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국 대사는 “그들은 압박 받을수록 더 저항한다”며 “대놓고 압박하며 실수를 범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모두 우리 탓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부와 테헤란의 강경파들 간에 “일종의 위험한 파트너십”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실수와 이란의 과잉반응이 아무도 원치 않는 무력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그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왼쪽부터) 지난 1월 29일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지나 해스펠 중앙정보국 국장(왼쪽)과 댄 코츠 국가정보국 국장. 지난해 5월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협정 탈퇴결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란 테헤란의 한 빌딩에 반미 구호와 그림이 새겨져 있다. / 사진:JOSE LUIS MAGANA-AP-YONHAP, JONATHAN ERNST-REUTERS-YONHAP, STRINGER-EPA-YONHAP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전 고위 국가안보 당국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이란에 대한 극적인 조치가 검토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암시가 의심스럽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러나 정통한 관측통들은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핵 협정을 파기한 이후 정책의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위협과 더러운 술수를 주고받은 40년간의 전쟁에서 위험한 챕터를 새로 열지 못해 안달난 듯했다. 그리고 미국 특히 친이스라엘 강경파들이 이를 후원한다. 프리먼 전 대사는 이를 “제스처 외교정책”으로 부른다.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고 상대방에게 어려움을 안겨주지만 대단한 목적의식은 없다”고 그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무기로는 제재, 반이란 망명자 단체 지원, 이스라엘의 시리아 내 이란 기지 공격 재량권 부여 등이 있다. 나머지 공세로는 2016년 미국 대선 캠페인 중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구사했던 소셜미디어 조작을 포함한 비밀 공작 같은 그림자 전쟁이 있다.

당국자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말마따나 “이란이 안정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과 관련된 일반론적 대화에는 기꺼이 응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런 조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대통령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등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조언자 3명을 포함한 오랜 이란 강경파들의 지지를 받아 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모두 쿠슈너 고문과 막역하며 미국이 이란에 대해 더 공세적인 정책을 펼치도록 오래 전부터 로비를 벌여 왔다. 예컨대 이란의 핵·군사·정보 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공격 등이다.

트럼프 정부를 포함한 이전 미국 정부가 제재의 고삐를 조일 때마다 이란 정권도 나름대로 위협과 폭력으로 대응해 왔다는 점이 문제라고 여러 전문가는 말한다. 그리고 갈수록 빨라지는 공격과 반격이 어디로 향하는지 양쪽의 어느 누구도 모르는 듯하다.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초 이라크에 병력을 남겨 이란을 모니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해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키면서 지역 우방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CBS 방송에 “계속 지켜볼 것”이라며 “문제가 생긴다면, 누군가 핵무기나 다른 뭔가를 만들려 한다면 행동에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게 된다”고 말했다.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이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뉴스매체를 통해 “자기들 문제를 이라크에 떠넘기지 말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 미국은 또한 새로운 제재의 일환으로 전력난에 시달리는 이라크에 이란으로부터의 에너지 구입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해 이라크 정부와 관계를 한층 악화시키고 있다.

이란-이라크 전쟁 기념식 퍼레이드 중 이란혁명수비대원들이 행진하고 있다(왼쪽 사진). 2017년 7월 3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테헤란에서 연설하고 있다. / 사진:STRINGER-REUTERS-YONHAP, VAHID SALEMI-AP-YONHAP
이 모든 상황이 트럼프 정부가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지에 관해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후폭풍을 몰고 올 소지가 있다. 이란 분석가인 알리 알포네흐는 “미국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며 “트럼프 정부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온통 엇갈려 이란이 워싱턴 정부의 의중을 읽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알포네흐 분석가는 이란의 앙숙 사우디의 후원을 받는 워싱턴 DC 소재 아랍걸프국가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

1979년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망명 생활에서 돌아와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이슬람 혁명을 이끈 뒤로 이란은 두려움과 매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반세기 전 CIA의 후원으로 영-미 석유 그룹의 이해를 대변하는 쿠데타가 일어나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의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슬람 혁명은 그 쿠데타를 사실상 뒤엎었다. 이란 대학생들이 미국 대사관에 침입해 50여 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잡으면서 워싱턴과 테헤란의 관계가 더욱 경색됐다. 444일 동안 그 사태 관련 뉴스 보도가 TV 화면을 도배했다. 그 뒤로 이란은 불량국가로 낙인 찍혔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란 정권을 ‘테러 후원국’으로 지정하고 1981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을 지원했다. 그 전쟁은 10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이란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989년 호메이니 사후 그의 후계자 아야톨라 알리하메네이는 먼저 1982년 이스라엘의 침공에 대한 시아파 레바논의 저항을 후원함으로써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로 인해 막강한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창설돼 미국 목표물을 겨냥한 테러 공격을 벌였다.그 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해 이란 프락치들이 바그다드에서 정권을 잡았다. 2011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민중봉기에 직면했을 때 이란과 헤즈볼라가 결정적인 지원을 했다. 지난 2월 11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혁명 40주년을 맞아 이란의 군사력을 찬양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우린 우리의 방위력 향상에 대해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9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이란 대통령이 나탄즈 핵시설을 시찰하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해 6월 30일 파리에서 열린 ‘자유 이란’ 집회에서 연설하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 사진:IRAN’S PRESIDENCY OFFICE-EPA-YONHAP, JAKUB KAMINSKI-EPA-YONHAP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지역·글로벌 안정에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보다 더 큰 위협으로 간주하며 그들을 억제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는 1978년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알포네흐 분석가가 지난해 가을 ‘롱 워 저널(Long War Journal)’에 썼듯이 이란도 망명한 재야 인사들의 암살단을 해외 파견하는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의 불안정한 시절로 시계를 되돌리려 애쓰는” 듯하다. ‘롱 워 저널’은 친이스라엘 성향의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다.

이란의 첩보기구들은 1980년 공작에 돌입한 뒤 지체 없이 국내외에서 이란의 적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이란혁명수비대(IRGC)의 초창기 해외 공작 중에는 미국 워싱턴 DC 외곽에서 벌어진 망명 재야 지도자의 암살도 있었다. 미국인으로 혁명수비대에 자원해 다우드 살라후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암살범은 1975년작 첩보 스릴러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의 유명한 장면을 흉내 내 우편배달부로 위장해 표적의 거주지 초인종을 울린 뒤 그가 문을 열자 총격을 가했다.

테헤란 정부는 초기 몇 년간 해외로 망명한 적들을 계속 뒤쫓아 정권 전복 음모를 꾸미는 망명 관료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그러나 몇 년간 비교적 잠잠하던 이란 정보부가 다시 해외 공작을 강화하고 있다. 2015년과 2017년 네덜란드에서 반체제 인사들을 제거한 혐의를 받았다.

지난해 암살 공격의 템포가 빨라지면서 범위가 확장됐다. 유럽 각지의 정보기구들이 해외의 반이란 단체들을 겨냥한 암살 음모를 여러 건 적발했다. 특히 무자헤디네할크(MEK)의 정치 조직인 이란저항국민회의(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가 대표적인 표적이다. 한때 미국에 테러단체로 낙인 찍혔던 이 준(準) 마르크스주의 이란 망명자 단체는 오래 전부터 미국 강경파들의 후원을 받아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를 맡은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2017년 공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기세를 올렸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지난해 6월 MEK가 프랑스 파리에서 주최한 집회에 참가해 연설했다.유럽 당국에 따르면 이란은 참석자들 사이에 고성능 폭탄을 설치하려 음모를 꾸몄다. 공인 외교관 신분의 이란인 아사돌라 아사디를 독일 당국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체포하면서 음모가 발각됐다. 당국은 아사디가 강력한 폭발물인 TATP 500g을 앤트워프의 이란 태생 벨기에인 2명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 밖에도 음모와 관련된 이란 태생 용의자 3명이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유엔의 이란 대변인은 그 음모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MEK나 이스라엘이 이란을 중상하려고 꾸민 이른바 위장술책(false flag operation)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유럽 첩보 당국은 그 음모와 관련해 아사디와 테헤란 정부 간의 문자 메시지 또는 대화 기록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2017년 이란 국방부 사이트에 실린 이란의 위성 발사 로켓. / 사진:IRANIAN DEFENSE MINISTRY-AP-YONHAP
미국에도 이란의 손길이 뻗치고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사법부는 뉴욕과 워싱턴 DC 행사에서 MEK에 대한 정탐·침투 음모 혐의로 캘리포니아주의 남성 2명을 기소했다. 한 명은 미국 영주권을 가진 이란 국적자, 또 한 명은 이중 국적자였다. 연방수사국(FBI)은 또한 그들이 시카고대학 학생회관인 로르 차바드 하우스를 포함해 유대인 표적들을 정탐했다고 전했다. 학내 유대인 단체들은 이스라엘 강경파 정부의 후원단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란의 주적은 여전히 MEK다. 테헤란 정부가 미국·유럽 그리고 페르시아만 국가들에 잠복세포 조직을 구축해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런 표적들을 공격하려 한다고 일부 전문가는 말한다.

조지타운대학 에드먼드 A. 월시 외교대학원의 대표적인 테러리즘 전문가인 브루스 호프먼은 이란은 “현실과 동떨어진” MEK에 “광적으로 집착한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MEK는 체제의 존립을 위협하지만 다른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이란 전문가인 무함마드 사히미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다양한 반정부 인사와 단체를 지원해 왔다. 이란 내 쿠르드족, 극우 학생 단체들, 군주제 지지자 등이 대표적이다(사망한 팔레비 국왕의 아들로 워싱턴 DC 교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레자 팔레비가 군주제 지지자의 전형이다). 그러나 이란의 주요 표적은 MEK인 듯하다.

CIA에서 28년간 근무하며 중동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고 은퇴한 루이스 루에다는 다소 기이한 상황으로 보는 듯하다. MEK는 “이란 내 지지 기반이 없다. 모두가 그들을 미치광이로 본다.” 치열한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 편을 들어 이란 내에선 혐오 대상인 MEK를 트럼프 정부가 후원하자 이란 정권이 분명 움찔했을 것이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가 MEK에 돈을 쏟아부으며 그들을 내세워 자국의 정정을 뒤흔들려 하지 않나 걱정한다”고 루에다 전 요원은 뉴스위크에 말했다.워싱턴 DC 심장부에서 일어날 뻔했던 대형 폭탄 테러 미수 사건에도 IRGC가 연루됐다. 2011년 미국 당국은 고급 레스토랑 ‘카페 밀라노’에서 아델 알주베이르 당시 사우디 대사를 암살하려던 음모를 적발했다. 미국과 외국의 고위 관료, 로비스트, 언론인이 즐겨 찾는 부자 동네 조지타운의 식당이다. 이란과 미국의 이중 국적자인 만수르 아르밥시아르가 체포돼 훗날 IRGC의 정예부대인 쿠드스군(Quds Force) 소속인 사촌의 요청으로 음모를 꾸몄다고 유죄를 인정했다. 그 음모는 아르밥시아르가 고용한 멕시코인 암살범이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비밀 정보원으로 드러나면서 조기에 발각됐다.

밀라노 레스토랑 음모에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이란 핵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폭탄 테러로 알주베이르 대사뿐 아니라 워싱턴 DC의 주요 인사 수십 명이 숨졌다면 협상이 깨졌을 것이다. 협상 좌초를 원할 만한 세력으로 IRGC의 강경파들이 있다. 루에다 전 요원은 “그들은 서방과 이란 간에 불신을 조장하고 긴장을 확산시키는 데만 관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이 이란 지도자들을 음모의 배후로 지목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반사적으로 군사 공격을 했을 것”이라고 오바마 정부의 전 고위 국가안보 당국자가 익명을 조건으로 말했다.

전 세계 위협에 관한 미국국가정보국의 최신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다른 주요 적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란도 은밀히 사이버공작을 펼친다. 미국 사법부가 지난해 3월 기소한 바에 따르면 6년 전 IRGC와 연결된 해커들이 미국의 144개 대학과 21개국 176개 대학에서 다량의 학술 자료와 지적재산을 훔쳐냈다. 사법부는 기소 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후원 해킹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기구들과 밀접한 독립적 연구조직 랜드 연구소에 따르면 이란 해커들은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미국 해군-해병대 인트라넷(Navy-Marine Corps Internet)뿐 아니라 미국 은행 사이트들, 석유 대기업 사우디 아람코의 컴퓨터, 공화당의 고액 기부자이자 친 이스라엘 강경파 셸던 아델슨 소유의 카지노 회사 라스베이거스 샌즈에도 침투했다.

그 뒤 11월 말에도 사법부가 이란인 2명을 기소했다. 애틀랜타주와 뉴저지주 뉴어크의 컴퓨터 시스템뿐 아니라 병원과 헬스케어 기관 등 약 200개 표적에 대한 일련의 랜섬웨어(사용자의 파일을 인질로 잡는 악성 프로그램) 공격 혐의였다. 용의자들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이란은 이를 포함한 앞서의 공격에 아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악명 높은 스턱스넷 바이러스에 대한 보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9년 께부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나탄즈 핵시설의 수천 개 원심분리기를 통제 불능으로 만든 합동 작전이다. 그 뒤로 이란의 시스템을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최소 3개 이상 추가로 발견됐다.

이란은 곧잘 ‘미국이 먼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분명 CIA는 혁명 첫날부터 이란 정권에 침투해 정정불안을 초래하려 했다. 1979~1980년 인질위기 중 지금은 고인이 된 CIA 위장의 대가 토니 멘데스가 이란에 몰래 잠입해 미국인 외교관 6명을 구해냈다. 이 작전은 훗날 ‘아르고’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그러나 CIA의 기록 중 알려진 것은 대부분 커다란 실패로 점철됐다.

리서치 단체 다이사트 컨설팅의 마한 아베딘 소장은 베테랑 이란 정권 분석가다. 그의 2007년 설명에 따르면 1989년까지 “이란 내 거의 모든 미국 첩보 조직이 발각돼 와해되고 말았다. 이들 네트워크 붕괴의 최대 요인은 미국의 무능(이란의 유능함)이었다.”

야후 뉴스에 따르면 그 뒤 2009~2013년 CIA와 요원들 간 비밀 통신의 오류로 인해 이란(그리고 중국)에서 CIA 정보원 수십 명이 적발돼 처형됐다. 2011년에도 또 다른 실수가 발생해 이란 발표에 따르면 CIA 스파이 용의자 12명이 체포됐다. 당시 아베딘 소장은 CIA의 ‘요원 모집과 관리 면에서 낮은 품질관리 기준’으로 인해 이런 재앙이 발생했다고 썼다.

그 뒤 클린턴 정부 시절 표면상 핵프로그램을 좌초시키려는 목적으로 위조된 핵무기 부품 설계를 이란에 제공하려다가 실패한 멀린 작전(Operation Merlin)도 있었다. 제임스 라이슨 전 뉴욕타임스 기자의 2006년 저서 ‘중앙정보국과 부시 정부의 비밀 역사(State of War: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nd the Bush Administration)’에 따르면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프로그램에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서로 치고받는 공방전이 한없이 계속된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을 더욱 압박하겠다며 갈수록 강경 발언의 수위를 높여 왔다. 이란의 시리아 내 쿠드스군과 로켓 배치, 예멘 내 같은 시아파 후티족 반군에 대한 은밀한 지원, 그리고 최근의 탄도미사일 테스트를 이유로 거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월 13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방부에 이란 공격 옵션 리스트 작성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한 전 고위 정부 당국자는 그 소식이 “분명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고 WSJ에 말했다. 같은 날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페르시아만의 이란 ‘쾌속정’ 폭파 계획을 국가안보팀에 반복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폭로는 외교정책 관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이란에 불안을 유발하려고 의도적으로 그런 정보를 흘렸을 공산이 크다.CIA에 34년간 근무하며 2008년부터 2017년 은퇴할 때까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첩보작전과 정책을 이끌었던 노먼 룰은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을 계속해야 한다며 서방의 대응이 “상당히 미온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란 제재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뉴스위크에 말하며 이란의 마한항공이 테러 활동에 이용된 혐의로 최근 착륙허가를 취소하기로 한 독일의 결정에 지지를 보낸다. 룰은 “군사행동은 언제나 마지막 옵션이 돼야 하지만 이란 정부가 자신들의 행동에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또 다른 균열을 원치 않는 한 적어도 현재로선 군사공격 방안은 고려되지 않는 듯하다. 우방들이 이란의 음모에 깊은 반감을 나타냈지만 한편으로는 미국 없이 이란 핵협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쓴다. 새로운 미국 제재를 피해 이란과 거래하려 대안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다. 트럼프 정부의 위협 앞에서 핵협정의 앞날은 불확실하다.

한편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1월 중 상당 기간 중동 전역을 돌며 시리아에서 “이란군을 마지막 한 명까지” 몰아내는 데 대한 지지를 끌어모았다(시리아에서 이란에 대한 워싱턴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철수 지시와는 또 다른 행보였다). 또한 “이란이 안정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할 목적으로 폴란드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를 홍보했다. 하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강경 메시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반발에 부닥쳐 집회의 목표 수위를 낮춰야 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구두탄만 날리는 건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쿠르드족 자치지역에서 도청 시설을 운영하며 그 지역과 터키에서 이란으로 요원들을 파견해 왔다고 소식통들이 뉴스위크에 전했다. 노련한 관측통들은 또한 지난해 초 2건의 이란 위성 미사일 발사 실패에 미국 첩보부가 개입했다고 의심한다.

클린턴 정부 시절 국제안보문제 담당 국방차관보로도 일했던 프리먼은 미국 당국자들이 북한 미사일 프로그램을 파기했다고 사실상 자랑해왔기 때문에 “이란에도 그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평한다. 그는 또한 트럼프 정부가 망명자 단체들을 이용해 이란 내에서 게릴라 공작을 펼친다고 의심한다. 중국과 쿠바 혁명 이후 초기 몇 년 간 미국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수법이다.그것은 “멍청한” 작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CIA의 일반 요원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 첩보 소식통은 뉴스위크에 귀띔한다. “이란이 나쁜 짓을 하지만 그들과 전쟁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전쟁을 벌일 만한 가치가 없다.”

미국이 공격하면 중동지역의 일부 미국 우방이 멀어지고 유엔안보리의 비난을 촉발하고 이란 반체제 인사들까지 혁명정부 아래로 뭉칠 것이라고 2006년 은퇴한 전 CIA 고위 중동 전문가 에밀 나클레는 말한다. 그는 친 CIA 웹사이트 ‘더 사이퍼 브리프(The Cipher Brief)’에 올린 글에서 ‘지역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란을 침공하는 것은 광기의 극치’라고 썼다.

이란은 미국의 존재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CIA의 고위 공작원 출신인 나클레는 말한다. 적을 제거하기 위한 그들의 무자비한 해외 공작도 미국을 겨냥하기보다 방어적인 성격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이슬람국가는 모집하는 대원들에게 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어떻게든 미국인과 그 우방 국민을 살해하도록 촉구한다.

그는 이스라엘이 핵 문제를 과대 포장한다고 비난한다. “매년 한 두 명의 이스라엘 고위 정보 당국자가 워싱턴을 찾아가 ‘이란이 1년 뒤에는 핵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다보면 마침내 누군가 ‘10년 동안이나 같은 말을 들어왔는데 왜 아직 그들에게 핵무기가 없소?’라고 묻는다.”

그는 중동 전역에 오해로 발생해 해결되지 않은 분쟁이 그렇게 많은 데 넌더리 난 듯 불만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그는 이란과 좋은 결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트럼프 정부를 이란과의 분쟁으로 끌어들이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란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 잠재적인 위협이며 (핵무기로 이란을 지도상에서 지울 수 있는) 이스라엘에는 전통적 안보 위협”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그들도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이란 입장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칫 공개적인 분쟁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는 “양쪽에 오판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다. 누군가 전쟁할 생각 없이 한 일로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 제프 스타인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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