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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커지는 ‘안티 드론’ 기술] 한국은 제자리걸음… 선진국처럼 자체 R&D 시급

[관심 커지는 ‘안티 드론’ 기술] 한국은 제자리걸음… 선진국처럼 자체 R&D 시급

드론의 주요 기반시설 위협 사례 급증… 정부, 부처 간 협업해 R&D 지원 검토 중



드론 공격을 막아내는 ‘안티 드론(Anti-drones)’ 기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가 커졌다. 지난 9월 발생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피격 사건이 계기였다. 그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안티 드론 기술 연구·개발(R&D)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안티 드론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한국 안티 드론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선진국처럼 R&D 활성화에 집중해 자체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할 때라는 분석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1.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에서는 14대의 무인항공기(드론)로 구성된 경찰 부대 ‘드론캅’이 창설돼 화제를 모았다.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드론캅 창설이었다. 복수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뉴욕 경찰국(NYPD)은 이후 드론캅을 현장 일선에 배치해 납치된 인질 구조나 실종자 수색 등에 활용하는 한편, 드론 기술의 고도화(업그레이드)도 계속 시도 중이다. 보안을 위해 드론을 활용하는 미국 공공기관 비중은 지난해 전체의 약 82%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와 덴마크 등의 선진국 경찰도 치안력 강화 차원에서 드론을 속속 도입해 활용 중이다. 캐나다 연방경찰은 적외선 카메라가 탑재된 드론을 산림지역에 투입해 야간 실종자 구조에 나서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지방경찰청은 마약사범 거래 현장 단속과 검거 용도로 드론을 투입하고 있다.

#2. 올해로 신(新)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은 10월 1일(현지시간)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병식을 거행했다. 장병 1만5000명, 전투기 160대 등을 투입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한 이번 열병식에서 중국군은 예상대로 첨단무기를 대거 선보였다. 특히 최신형 드론 부대 공개에 유독 공을 들여 외신의 관심이 집중됐다. 공격형 스텔스 드론 ‘GJ(攻擊)-11’, 미군 항공모함 타격 평가용 초음속 드론 ‘DR(無偵)-8’ 외에도 정찰 드론과 수중 드론이 선을 보였다.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최근 석유시설이 드론의 공격을 받은 가운데 중국이 이를 의식, 열병식 드론 공개로 힘을 과시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공격용 드론 양산에 힘쓰면서 중동 등지로 활발히 수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적 집중 관리·육성 대상으로 부상
수년 전만 해도 민간에서 일부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를 위한 장난감 정도로 치부됐던 드론이 국가적 집중 관리·육성 대상으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특히 수년간 공항이나 발전소 같은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타깃으로 한 드론 위협 사례가 급증하면서 이를 막아내는 ‘안티 드론’ 기술 확보가 전 세계적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비행기가 추락할 수 있는 공항, 방사선이 유출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원전) 등이야말로 100%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시설이어서다. 한국에서는 지난 9월 사우디 석유시설의 드론 피격 직후 급하게 관심이 고조된 감이 있지만, 사실 국가 주요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한 드론 공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단지 덜 알려졌을 뿐이다. 예컨대 예멘의 시아파 반군은 올해 5월 드론으로 사우디 나지란공항을 공습하기도 했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2016년부터 자폭과 수류탄 투하, 국가 주요 기반시설 침투에 드론을 활용했다.

먼 중동 얘기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드론을 조종한 주체가 군(軍)이 아닌 정체 모를 일반인이더라도 위협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인근에 드론이 나타나 30분간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는가 하면, 2016년 8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원전 건물 외벽에 드론이 충돌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 사례 모두 군의 공격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원전이 이 같은 드론의 위협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취약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해 7월 프랑스 원전 폐연료 저장고에 ‘수퍼맨’ 모양 드론을 일부러 충돌시키기도 했다. 이 충돌로 원전 내부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충돌 전까지 아무 제지가 없었기에 안티 드론 기술 강화를 요구하는 현지 목소리가 커졌다.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츠가 지난해 4억9900만 달러였던 글로벌 안티 드론 시장 규모를 2024년 22억7400만 달러로 4.5배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도합 273곳의 국가 주요 기반시설이 있는 한국도 드론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에 최근 국정감사에서 안티 드론이 집중 거론되기도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분석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3년간 국내 주요 원전 인근에 드론이 출몰해 위협이 된 사례가 13건이나 됐다. 그중 10건이 올 들어 발생했다. 현행법상 원전 주변 3.6㎞ 이내는 비행금지구역, 18㎞ 이내는 비행제한구역이지만 실수로든 고의로든 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법적 처벌 강화 필요성도 제기한다. 현행법상 비행금지구역 내 드론 조종자는 최고 2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지만 실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2016년과 2017년 국내 원전 인근에 드론을 띄웠던 일반인 둘은 처음 적발됐다는 이유로 각각 20만~2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 받는 데 그쳤다. 이에 최근 국토교통부는 비행금지구역 내 드론 조종 적발 때 과태료 수준을 올리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거꾸로, 시대에 뒤떨어진 법적 규제 철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2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현행 전파법과 공항시설법상 드론 공격을 제대로 막을 수 없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현행 전파법상 대통령 등의 경호 목적 외에는 주파수를 이용해 드론을 교란하는 안티 드론을 할 수 없다. 또 공항시설법에 따르면 초경량 비행 장치를 향해 물건을 던지는 등 파손행위를 할 경우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활성화한, 전파 교란이나 물리적 타격을 통한 공격 드론 무력화가 국내에서는 불법이라는 얘기다.
 국내에서 드론 겨냥 전파 교란, 물리적 타격 불법
이처럼 법과 제도 재정비도 필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자체 안티 드론 기술 연구·개발(R&D)에 힘써야 한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국가 주요 기반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 위협이 ‘현실’이라고 공표하면서 민간 군수 업체들과 함께 대대적인 안티 드론 기술력 강화에 나섰다. 평소 군사력 강화에 사활을 거는 이스라엘도 주목할 만한 안티 드론 기술력을 갖췄다. 국내 드론 전문가인 류동주 극동대 교수는 “안티 드론을 위해서는 드론 신호 수집 능력부터 강화해야 하는데 이 분야에서 민관 협력 R&D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기술력을 잘 끌어올린 대표적 나라가 이스라엘”이라며 “한국도 이스라엘과 초기 공동 연구를 진행한 바 있지만 흐지부지됐는데 이를 만약 꾸준히 진행했다면 지금쯤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두 나라는 ‘스카이라이트(SkyLight, 미국)’ ‘RPS-42(이스라엘)’처럼 약 10㎞ 떨어진 거리까지 탐지할 수 있는 안티 드론 기술을 보유 중이다. 한국은 ETRI가 개발한 ‘LADD’처럼 3㎞ 거리까지 탐지 가능한 일부 기술을 보유해 이들 나라와는 아직 격차가 있다. ETRI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은 220억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유치해 오는 2021년까지 안티 드론을 위한 감시 센서를 추가 개발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늦은 감이 있다. 더구나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안티 드론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당사자인 국가 주요 기반시설들이 아직까지 해외 기술에 의존하면서 면피용 도입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여 국내 연구진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한 예로 국내 원전을 관리·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드론 위협에 대응하는 시스템 구축을 검토하면서 국내 기술이 아닌 이스라엘 기술 도입부터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원한 제보자는 본지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한 전문업체가 한국 원전에 자사 안티 드론 기술을 적용하는 대가로 원전 하나당 약 128억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고, 한수원이 이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국내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할 순 있지만, 국가적으로 자체 R&D 역량을 끌어올려야 하는 시점에서 기술 수입부터 검토됐다니 연구자로서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한수원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지만, 해외 기술 도입이 실제로 이뤄질 경우 논란은 또 다른 방향으로 거세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연말까지 진행하는 ‘다부처 공동기획사업 공동기획연구’를 통해 국내 안티 드론 관련 R&D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부처가 칸막이를 없애고 중복 없이 예산을 하나로 투입해 발전 가능성이 큰 국내 연구진의 R&D를 지원하기로 한 가운데, 국내 사이버보안 전문가인 손준영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가 연구 책임자로 나선 ‘국가 주요 기반시설 공격 드론에 대비한 지능형 드론캅 기술 개발 및 라이브 포렌식(Live Forensics) 적용 연구’가 최종 지원 대상 중 하나로 검토되고 있다. 이 연구 내용은 지난 7~8월 각 부처에 이미 1차 제출돼 다른 연구 대비 중복성과 차별성, 필요성 등을 검토 받은 상태다. 손 박사는 10월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시큐리티콘퍼런스(ISEC) 2019’에서 연구 내용을 일부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는 특히 공항과 원전에 대한 드론 공격에 우선 대비하고, 향후 다른 국가 주요 기반시설로 확대 적용하는 안티 드론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국민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공항과 원전은 시설 규모가 큰 만큼 공격 시나리오도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렇기에 안티 드론 기술이 까다롭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연구부터 집중 선행(先行)한 다음 그 결과물을 다른 시설에도 확대 적용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손 박사는 ISEC 행사 후 따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안티 드론에는 그물망을 활용한 포획, 레이저빔을 활용한 요격, 주파수를 이용한 교란 등 여러 기술이 있지만 그중 라이브 포렌식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라이브 포렌식 기반 안티 드론 기술에 주목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원전은 최근 수차례 드론 출몰로 경찰 수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포렌식은 주로 디지털 범죄 수사에 쓰이는 과학적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킨다. 꺼진 PC의 하드디스크에 저장됐던 정보를 복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일반 포렌식 사례다. 이 경우 정보 획득이 제한적인 반면, 라이브 포렌식은 PC가 켜진 상태에서도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라 범죄자의 실시간 행위에 대한 다양한 추적이 가능하다. 안티 드론에 이 라이브 포렌식 기술을 적용할 경우 드론이 공격하는 중에 정보를 실시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면 추적 대상이 지능형 공격용 드론인지, 민간 드론이 비행금지구역 내에 실수로 들어온 것인지 가려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손 박사는 “국내에 현존하는 물리적 타격 기술은 소형 드론 공격에 취약할 뿐더러 이를 무력화했어도 2차 피해 가능성이 남는다”며 “또 일반 탐지 기술로는 사각지대가 많은 대규모 시설 감시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고 공격 드론 안에 화학물질이나 자폭 기능이 탑재돼 있을 경우 사전 대비가 어려워 라이브 포렌식 기반 ‘지능형 무력화’ 기술 적용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선 탐지기의 경우 공격 드론이 조종자와 무선 통신을 하지 않았을 때 탐지할 수 없다. 레이더 탐지기도 사정거리 안에서조차 세부적으로 어떤 비행체인지는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 지금껏 국내에서는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으며, 지금부터라도 보완책이 될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에 나서면서 3~5년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게 손 박사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민관 협력에 앞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등이 주도해 안티드론 기술 관련 R&D 활성화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황광명 신라대 공공안전정책대학원 교수는 “국가 주도적 안티 드론 기술 개발과 함께, 현재 지방항공청이나 원전 등으로 파편화한 관제 시스템을 중앙으로 통합해 관리할 필요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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