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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날 낳으시고, 보정 앱 날 꾸미시니 [한세희 테크&라이프]

노르웨이 인플루언서 콘텐트 업로드 때 사진 보정 여부 밝히는 법 통과
보정 넘어 둔갑…과도한 사진 앱 사용 우려 목소리 나와

 
 
사진 보정 앱 스노우. [사진 앱스토어 스노우 화면 캡처]
 
최근 노르웨이에서 재미있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가 기업 후원을 받아 콘텐트를 올릴 때 사진 보정 여부를 밝히도록 한 법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보정해 피부를 더 하얗게 했는지, 얼굴은 갸름하게, 다리는 길게 하지는 않았는지 표시하라는 얘기다. 사람들이 갖는 ‘완벽한 몸에 대한 강박’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소셜미디어에서 보이는 이상적 혹은 비현실적 육체의 모습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전시되는 사람들의 몸을 스스로와 비교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청소년들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과거에는 공공연히 멋진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 정도밖에 없었다. 이제는 소셜미디어 덕분에 나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사람 중에도 멋진 몸을 가진 사람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은연 중에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기준이 된다.
 
물론 우리가 항상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처럼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니듯, 그들 역시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완벽한 몸을 갖진 않았다. 우리 페이스북 게시물에 과장이 섞여 있듯, 그들의 사진도 보정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린다.
 

외모 불안 부추기는 사진 보정 앱

사진 보정 앱과 뷰티 필터의 인기는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한번 열어 보라. 몇 개의 사진 앱이 있는가? 유라이크, 스노우, B612, 싸이메라, 소다, 이런 앱 1~2개는 있지 않은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 앱에도 사진을 편집하고 보정하는 기능이 있다. 틱톡은 말할 것도 없다. 줌에도 영상에서 피부가 더 고와 보이게 만드는 옵션이 있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증강현실(AR) 효과 중 하나라도 써 본 사람이 6억명에 이른다. 스냅챗은 매일 2억명이 자사 AR 및 외모 필터를 사용하며, 미국과 프랑스, 영국에선 청년층의 90% 이상이 이 기능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계열사에서 나온 스노우도 사용자가 2억7000만명에 이른다.
 
사진 보정 앱 유라이크. [사진 앱스토어 유라이크 화면 캡처]
 
스냅챗이 입에서 무지개가 쏟아지거나 머리에 강아지 귀를 다는 AR 기능으로 인기를 끌 때만 해도 사진 필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서로 깔깔대는 재미있는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곧 외모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 아름답게 해 주는 뷰티 필터 기능이 대세가 되었다. 오늘날 사진 앱은 최고의 성형외과 의사다. 얼굴 선을 다듬고, 눈을 키우고, 잡티를 없애며, 코를 높인다. 덕분에 요즘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뽀얀 피부와 갸름한 턱, 시원하게 큰 눈을 가진 선남선녀들이다.
 
셀카를 찍을 때마다 보정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다 보니, 이제는 그것이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자기도 모르게 생각한다는 사람 이야기도 들었다. 하루에 수백장의 셀카를 찍고, 보정 앱으로 다듬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하트를 얼마나 받는지 신경 쓰는 우리들이 이로 인해 외모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터다. 요즘 성형외과에는 앱으로 보정된 자신의 모습처럼 수술해 달라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연예인 사진을 보여주며 비슷하게 수술해 달라고 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앱으로 보정한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성형수술을 한 젊은 남성의 이야기가 뉴스를 탔다. 그는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늘 앱으로 보정한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했다. 그러다 아예 사진 앱 속 자기 모습을 모델로 성형 수술을 해 버렸다. 무려 13만 파운드(약 2억원)가 들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과연 괜찮은 것일까?
 
과도한 보정 문화를 경고하는 연구들은 여럿 나와 있다. 이를테면, 셀카 보정에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애리조나대학교 연구팀이 14-17세 사이 여성 청소년 2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자기 외모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사진 보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외모에 대한 불안이 높고, 자기대상화를 하는 경향도 컸다. 자기대상화는 스스로를 사물처럼 바라보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어떻게 보일지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 보정 앱을 많이 쓰는 사람은 성형 수술을 고려할 확률이 더 높고, 마른 몸매를 더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나 결함이 있다고 믿는 이형증을 부추길 수도 있다. 스크린 속 완벽한 자신과 실제 자신의 괴리를 늘 실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 보정은 오래 동안 이어진 문화의 일부다. 화장은 사회에서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입사 서류나 신분증에 붙일 사진도 어느 정도 손을 본다. 셀카 사진을 뽀얗게 보정하는 건 싸이월드 미니홈피 시절 이래의 전통이다. 포토샵으로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뽀샵’이란 말이 일상어가 되었을 정도다. 소개팅 상대가 내 카톡 프사나 미니홈피를 알고 찾아올 수도 있으니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자신을 알아 나가는 청소년 시기에 외모에 관심을 가지거나 필터나 보정 앱으로 스스로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얼마나 자주, 어떤 마음 가짐으로 셀카를 찍고 보정을 하느냐는 점이다. 소셜미디어를 뒤덮은 보정 사진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는 원인이 되고, 그런 불만 때문에 보정에 집착한다면 주변의 적절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도리어 획일화된 미의 기준

이와 함께 이미 일상화된 얼굴 인식 기술이 우리에게 특정한 미의 기준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얼굴의 매력을 평가하고 적절한 화장품과 화장법, 성형 수술을 추천하는 서비스가 뷰티 업계에 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얼굴의 대칭, 눈 크기, 코 모양, 피부 상태 등을 평가해 예뻐지는 법을 맞춤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중국 얼굴 인식 기술 기업 메그비는 외모 매력도를 평가하는 ‘페이스++’ 플랫폼을 개발해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뷰티, 화장품, 데이트 앱 등은 이를 자체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나 데이트 앱이 얼굴을 인식, 아름다운 사람들의 노출을 더 늘인다는 주장도 있다. 틱톡에서는 턱 선을 보다 갸름하고 여성적으로 보이게 하는 필터가 일부 사용자에 동의 없이 자동 적용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인터넷 플랫폼이 미의 기준을 대규모로 확산시키는 셈이다.
 
사진 및 영상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SNS 앱 스냅챗. [중앙포토]
 
무엇이 아름다운 외모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공통의 사회적 인식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으로서 고유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잊기 쉬운 이 진실은 소셜미디어와 인공지능 보정 기술 덕분에 더욱 실감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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