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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매각 3년 만에 다시 ‘신약개발 선언’, 달라진 CJ의 전략

30년 키운 제약기업 팔고, 미생물 분야 집중
전통적 제약사 사업모델 대신 ‘시너지’ 체크하는 대기업들

CJ제일제당 바이오 연구소 [사진 CJ제일제당]
2018년 CJ헬스케어를 매각한 CJ그룹은 최근 천랩 인수를 통해 '신약개발'에 다시 진출했다. 30년간 육성한 제약·바이오 기업을 매각한 지 3년 만에 이 분야 새로운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CJ헬스케어 매각이 CJ그룹의 오판이었단 해석까지 나온다.
 
재계에선 CJ그룹의 제약 산업 재진출이 철저한 계산 때문에 이뤄졌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장기간 사업 운영의 경험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실을 면밀히 파악해 다른 사업영역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모델을 찾은 결과로 보고 있다.
 

제약 아닌 ‘마이크로바이옴’에 집중… 변화한 CJ그룹의 전략

CJ그룹은 지난 2018년 그룹 내 제약·바이오 산업을 담당하던 CJ헬스케어(현 HK이노엔)를 매각했다. 1984년 CJ제일제당이 유풍제약을 인수하며 시작된 CJ헬스케어는 CJ그룹이 미래성장 동력으로 30년이 넘게 투자해온 회사다.
 
2014년 제일제당에서 독립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기업공개(IPO)와 함께 그룹이 더 본격적인 육성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컸다. 기대와 달리 CJ그룹의 선택은 매각이었다. 이재현 회장 복귀 후 단행된 사업재편에서 제약 산업은 비주력 산업으로 분류됐고, 한국콜마에 팔렸다. 당시 경제계는 CJ그룹이 레드바이오(의약품 관련 바이오) 산업을 포기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CJ그룹은 레드바이오를 포기하지 않았다. 사업모델이 바뀌었을 뿐이다. CJ헬스케어 매각 이듬해부터 변화된 사업모델의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마이크로바이옴이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 군집을 의미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한 개체의 모든 유전 정보를 의미하는 유전체(Genome)의 합성어다. 인체 내 미생물 생태계를 다뤄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신약 개발 기업인 ‘고바이오랩’에 전략투자를 단행했다. 이후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메디톡스에서 CJ제일제당 출신인 홍광희 상무를 레드바이오 BD 담당으로 영입했다. 사실상 레드바이오 분야 재진출을 선언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 유신영 상무(레드바이오 기술센터장)도 영입했다. 유 상무는 서울대 의학 박사 출신으로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 기반 연구개발 벤처 기업인 MD헬스케어에서 근무했다. 
 
최근 인수한 천랩 역시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기업이다. 이 분야 글로벌 권위자인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가 2009년 설립한 회사다. 마이크로바이옴 정밀 분류 기술 및 플랫폼을 확보하고 있으며, 병원 및 연구기관과 다수의 코호트 연구(비교대조군 방식 질병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보유 중인 마이크로바이옴 실물균주는 5600여 개로 국내 최대 규모다. CJ제일제당은 올해 1월부터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협력을 진행해왔다.
지난 1월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공동 연구 양해각서 체결 후 기념 촬영하는 황윤일 CJ제일제당 Bio사업부문장(왼쪽)과 천종식 천랩 대표이사. [사진 천랩]
천랩을 인수하며 CJ제일제당은 ‘신약개발’을 선언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 재진출을 확실히 선언한 셈이다. CJ그룹의 이번 전략은 CJ헬스케어를 육성하던 당시와 완전히 달라졌다. 가장 주목할 점은 목표하는 분야가 확실해졌단 점이다. 기존 CJ헬스케어는 제네릭(복제약)을 포함한 합성의약품, 백신, 단백질 치료제, 바이오시밀러까지 사실상 제약의 모든 분야를 시도했던 회사였다. 이젠 ‘마이크로 바이옴’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시장성을 갖췄다는 게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각이다. 신약 개발의 기초가 되는 점에서 제약 기술보다 원천 기술로 평가된다. 특히 아직까지 건강기능식품 위주로만 이용되고 있는 기술 초기 단계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그린바이오(농수산물 분야 적용 바이오 기술)와 화이트바이오(산업생산공정 적용 바이오 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CJ제일제당 입장에선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는 분야다. CJ제일제당은 미생물 배양 기술과 설비 등을 가지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CJ그룹의 레드바이오 전략이 사업 구조상으로도 유의미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앞서 CJ헬스케어는 전통적인 제약사의 사업모델을 가졌다. 제네릭을 개발‧판매해 얻은 수익을 신약개발(R&D)에 쏟아붓는 방식이었다. 화학약품 위주의 제네릭 사업과 바이오의약품 위주의 신약 개발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한정하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 성과가 식품 및 건강기능식(건기식)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프로바이오틱스’ 등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이 적용되는 건기식 시장은 매년 급속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최근 건강사업을 독립조직(CIC)으로 구성했는데, 레드바이오 기술을 건기식에 적용하려는 움직임으로 평가받는다.
 

제약‧바이오 산업 바라보는 대기업 ‘시너지’에 주목

CJ그룹의 새로운 레드바이오 전략은 국내 대기업들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에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많은 대기업이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을 도모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롯데제약이 2011년 롯데제과에 합병되며 시장에서 철수했고 2013년에는 한화(드림파마)가 제약사업에서 손을 뗐다. 기존 제약회사의 사업구조로 시장에 진입해 신약개발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게 제약·바이오 업계의 시각이다.
 
그러나 최근 대기업의 제약·바이오 산업 진출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CJ의 레드바이오 전략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평가다. 중요한 것은 전문 분야와 ‘본업과의 시너지’다. 최근 보툴리눔 톡신 기업인 ‘휴젤’ 인수전 참여를 검토했던 신세계도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 화장품 사업과의 시너지를 주요 관심사로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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