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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세버스는] 르포①- “빚지고 대출 연장하며 버티는 중”

방역 강화로 일감·매출이 평년의 20%로 추락
일감 끊긴지 오래 기사·업체 모두 ‘악전고투’
불법 지입제 탓에 재난지원금 제대로 못 받아

 
 
서울 송파구 탄천공영주차장, 번호판을 뗀(원 안) 전세버스들이 줄지서 서있다. 코로나19로 일감이 급감한 뒤, 20만원 안팎의 차량 보험료라도 환급 받기 위해 운행을 중단한 것이다. 전세버스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이렇게 휴차한 전세버스는 2020년 기준 10대 중 6~7대 꼴이다. [정지원 인턴기자]
 
전세버스업계가 생존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로 일감이 끊기면서 기사와 업체 모두 악전고투 중이다. 하지만 정부의 자금지원은 부족하기만 하다. 수십 년간 해결되지 않은 ‘불법 지입’ 문제 때문에,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탓이기도 하다. 코로나 대유행이 시작된 지 20개월째, 전세버스업계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현장을 찾았다. [편집자주]  
 
 
“코로나 사태 터지고 지금까지 (정부에서) 200만원 받았어. 고정비용만 달마다 1000만원이 넘게 나가는데.”  
서울에서 전세버스업체를 운영하는 채원묵 VVIP관광 사장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전세버스업계가 생사기로에 놓였다. 업체는 줄도산 위기에 처했고, 기사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현장에선 거리가 먼 이야기다. 운전기사들은 정부 지원으로 최저 생계라도 유지하는 수준이지만, 업체는 이렇다할 지원도 받지 못해 빚만 쌓이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지던 4일 점심 무렵, 서울의 전세버스업체들이 차고지로 쓰고 있는 서울 송파구 탄천공영주차장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차고지에 드나드는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도 없었다. 어렵게 처음 마주친 이도 기사가 아닌 주차장 관리책임자였다. 차고지가 조용한 이유를 묻자 그는 대뜸 타박하듯 답했다. “요즘 같은 땐 9시 전에 왔어야지. 회사 통근버스 운행 끝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낮일이 없어졌으니까.”  
 

일감도 매출도 80%가 날아가 한계 봉착 

전세버스는 여행·관광에도 쓰이지만, 회사·학교·학원을 오가거나 결혼식이나 현장학습 등 행사가 있을 때도 운행한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관광 수요는 전멸하다시피 급감했고, 비대면이 일상이 되면서 출퇴근 등 생활 수요까지 쪼그라들었다. 20년 동안 전세버스를 운전했다는 A씨는 “지금은 출근길 운전만 하고 있다”며 “낮시간대 일감이 사라져 입에 겨우 풀칠만 하고 산다”고 말했다. 이런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운전대를 놓은 기사가 허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로부터 확보한 전세버스운행기록증 발급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운행기록증 발급 건수는 25만4789건으로 2019년(121만9743건)의 20.9%에 불과했다. 운행 건수의 80%가 코로나19로 사라진 것이다. 운행기록증은 전세버스 대절시 발부 받아야 하는 인증서로 실질적인 운행 실적을 보여준다.
 
매출도 급락했다. 통계청의 운수업별 매출 현황을 보면 전국 전세버스 매출액은 2018년 2조7700억원, 2019년 2조818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연합회가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은 5263억원에 불과하다. 한 업체당 매출액도 2018년 19억9700만원, 2019년 18억7700만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2020년에는 3억1800만원까지 급감했다. 평년 수준의 약 17%로 추락한 것이다. 
 
 
채 사장은 회사 매출을 묻자 “있어야 계산을 하지. 구청에 적자 1억5000만원으로 신고했어”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빚이 산더미 같아 마음대로 망하지도 못하는 업체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채 사장의 사업장에는 현재 버스 20대가 등록돼 있다. 전세버스연합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전세버스 1658개 사업체 중 69%가 50대 미만의 차량 보유 중으로,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자금력이 부족한 사업자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사실 업체가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버스는 더 줄어든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불법적 관행인 ‘지입 제도’ 때문이다.  
 

지입기사들 버스 유지하기도 벅차 살 길 찾아 흩어져

전세버스 기사는 직영기사와 지입기사, 두 부류로 나뉜다. 직영기사는 회사 소유의 버스를 운전한다. 반면 지입기사는 개인이 차량을 사서 업체에 들어간다. 법적으로 개인이 전세버스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량 명의를 회사로 돌려놓는 편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입기사는 회사에 이름만 올려놓을 뿐, 사실상 영업은 따로 한다. 개인택시와 비슷한 개념이지만, 지입기사는 회사에 소속되는 명목으로 평균 50만원을 웃도는 지입료를 회사에 내야 한다. 회사가 납부하는 4대 보험료도 개인이 부담한다. 앞서 언급한 채 사장이 보유한 버스도 사실상 7대뿐(직영차)이다. 나머지 13대는 차량 명의만 회사 소속일 뿐 지입기사 소유의 버스다.
 
물론 지입제는 불법이다. 하지만 수십대의 차량을 구입하기 어려운 영세사업자와 지입기사의 이해관계가 들어맞아 오랜 기간 관행처럼 굳어 버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세버스연대지부(전세버스노조)는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전국 전세버스 중 지입차 비율이 평균 60~7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재난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전세버스업계는 정부 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면 전세버스업계의 불법 지입제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 논란 끝에 정부는 재난지원금 4차 지급 땐 지원대상에 전세버스업계를 포함시켰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화면서 지원금이 언제 끊길지 모를 불안이 잠재해 있다.  
 
한편 채 사장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직영기사는 없다. 그는 “직영차 기사 6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지난해 봄부터 가을 사이 모두 나갔다”고 털어놨다. 월급이 줄었기 때문이다.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티는 방법도 있지 않았냐고 묻자 “규모가 큰 업체들이 고용유지지원금으로 버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사들이 거의 다 퇴사한 상태”였다며 “죽기 전에 살려줘야지, 망하고 나서 지원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매달 마이너스 1000여만원씩 빚에 빚을 계속 얹으면서 대출 만기 연장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며 “버스라도 팔아 운영자금을 충당하고 싶은데 버스도 안 팔린다. 빚이 너무 많아 망하고 싶어도 망하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탄천공영주차장 내 기사들의 휴게 공간. 컨테이너에는 출근 운행을 마치고, 퇴근 운행을 기다리는 기사들만 있다. 코로나 사태 전 붐볐던 낮 시간대 일감들이 모두 끊겨 특히 지입기사들이 생계 위기에까지 몰리고 있다. 정지원 인턴기자
 
전세버스 기사들 가운데 직영차 기사는 통상 약 160만~240만원의 기본급에 관광버스 주말 운행으로 추가적인 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현재 월급이 크게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관광버스 운행 수입은 0원에 가까워졌다. 전세버스노조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직급여를 받는 쪽을 택해 직장을 떠난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통근버스를 운행 중인 직영차 기사 B씨는 “80만원 정도 월급이 줄었지만 그래도 나 정도면 버틸만한 편”이라며 “출근 버스만 운전하고 집에 가는 동료들에 비하면 퇴근 운행까지 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직영차 기사 C씨는 “직영기사들보다 상황이 어려운 건 지입기사들”이라며 “직영기사는 고정비용이 들지 않지만, 지입기사는 (전세버스를 유지하기 위한) 지입료와 차량할부금 등을 벌기 위해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섰다”고 설명했다. 

정지원 인턴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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