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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혁신 기술과 한국의 제조업이 만났다…나녹스가 한국 공장 건설하는 이유

[인터뷰] 란 폴리아킨 나녹스 회장
“한국 용인 공장 전략적 생산 허브”
2011년 설립 나녹스, 엑스레이 패러다임 바꿔

 
 
란 폴리아킨 나녹스 회장이 경기도 용인에 건설 중인 '나녹스 용인 FAB'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내년 1분기에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사진 전민규 기자]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서 1만1900㎡(3600평) 규모의 공장 준공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공장 하나 더 들어서는 게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이 공장의 의미는 남다르다. 지난해 8월 미국 나스닥 상장에 성공한 이스라엘 의료영상 기술기업 나녹스가 제품 생산에 필요한 핵심 부품 제조 기지로 이곳을 선택해서다. 나녹스는 전략적 투자자이자 2대 주주인 SK텔레콤 및 한국의 제조 전문 중견기업과의 협업도 모색하고 있다. 이 공장은 이스라엘 혁신 기술과 한국 제조업의 만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녹스 용인 FAB 공개 기념식’에는 이스라엘에서 온 란 폴리아킨(Ran Poliakine) 나녹스 회장을 비롯해 나녹스 주요 투자자인 SK텔레콤 관계자,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대표, 이스라엘 대사관 야니브 골드버그 경제무역 대표,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 백군기 용인시장 등 40여 명의 인사가 참여했다. 란 폴리아킨 나녹스 회장은 이 행사 참석을 위해 12일 입국했다.  
 

내년 1분기 한국 용인 공장 본격 가동 예정

본지는 이스라엘의 혁신 기업이 한국을 글로벌 경영의 중심지로 채택한 이유를 듣기 위해 폴리아킨 회장을 직접 만났다. 폴리아킨 회장은 “용인 생산시설을 직접 점검해 2022년부터 시작되는 상용화 준비를 재확인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손잡을 수 있는 한국 주요 인사들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또 한국은 SK텔레콤 등 초기 전략적 파트너의 본거지이자 전략적 생산 허브”라고 말했다. 용인 공장은 올해 12월 생산 준비를 마치고, 내년 1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다.
 
2011년 설립된 이스라엘의 의료영상 기술기업 나녹스는 기술로 사회가 직면한 난제를 해결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내년 초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나녹스아크(NanoxARC)’가 주력 제품이다. 
 
란 폴리아킨 나녹스 회장이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나녹스용인 FAB 공개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전민규 기자]
 
나녹스아크는 튜브 형태의 의료 진단영상기기다. X레이 장비와 CT 스캔 기기인 셈인데, 작동 방식에 차이점이 있다. 기존 X레이 장비가 필라멘트에 섭씨 2000도 고온을 가열하는 방식을 쓰는 반면, 나녹스아크는 손톱만 한 크기의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반도체를 이용해 X레이를 발생시킨다.
 
복잡한 용어지만 기존 장비가 아날로그 방식을 취했다면, 나녹스아크는 디지털 기술을 응용했다고 이해하면 쉽다. 덕분에 기존 제품보다 저렴하고 가벼운 데다 방사능 노출량도 적다는 게 나녹스 측의 설명이다. 폴리아킨 회장은 이 기술에 대해 “126년 만의 엑스레이 기술에 대한 혁신”이라며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에서 LED 조명으로 전환한 것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용인 공장은 나녹스아크의 핵심 부품인 MEMS 반도체 칩 및 튜브의 생산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나녹스아크가 상용화되면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 X레이나 CT의 경우 많은 비용이 들다 보니 몇몇 선진국에서만 운용된다. 나녹스에 따르면 전 세계 3분의 2에 달하는 인구가 진단영상 기술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값이 저렴하고 가벼운 나녹스아크라면 이 문제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다.
 

2대 주주 SK텔레콤…박정호 사장은 나녹스 이사회 멤버

나녹스는 시장에 팔리는 물건이 없는데도 세계에선 인지도가 상당하다. 지난해 8월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글로벌 미디어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SK텔레콤, 후지필름, 폭스콘, 엔비디아, 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기업이 전략적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특히 SK텔레콤은 나녹스의 2대 주주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나녹스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화제를 모는 기업이지만 결국 세상에 제품을 내놓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 나녹스는 이 난관을 한국 기업과 함께 헤쳐나가기로 한 것이다. 올해 초 이 회사는 경기도 용인시에 공장 부지를 매입했는데,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집적단지) 인근이다.  
 
폴리아킨 회장은 “나녹스는 한국에 4000만 달러(약 477억원)를 투자했다”면서 “나녹스아크의 핵심 부품인 MEMS 칩은 전적으로 한국에서 생산하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2024년 말까지 1만5000개의 나녹스아크를 배포하는 것인데, 용인 공장 덕분에 순조롭게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협업 파트너인 SK하이닉스를 통해 안정적으로 칩을 생산할 수 있다. 나녹스 용인공장 인근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엔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관련 부품기업도 함께 입점하니 금상첨화다. 폴리아킨 회장은 국내 수많은 창업가가 뛰어든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고려 중이다. 폴리아킨 회장은 “수많은 기업과 국가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선주문을 받았고, 지금도 나녹스아크를 사겠다는 기관이 줄을 섰다”라며 나녹스아크의 상용화를 자신했다.
 
이번 방한으로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한 시선을 불식할 수도 있다. 나녹스에 SK텔레콤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 개인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 역시 지갑을 열고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서학개미의 나녹스 주식 보유 규모는 2억302만 달러(약 2423억원·10월 12일 기준)에 달한다. 국내 개인투자자가 투자한 미국 주식 상위 50개 종목 중 39위에 랭크됐다.  
 
나녹스 측의 설명대로 순조롭게 제품이 작동하면 좋겠지만, 아직 시장의 검증을 받지 못했다. 나녹스는 지난해 이 문제로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일부 공매도 세력이 “나녹스의 기술은 사기”라며 깎아내렸다. 
 
튜브 형태의 의료 진단영상기기 나녹스아크. [사진 요즈마그룹코리아]
 
폴리아킨 회장은 “우리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 중이다”면서 나녹스아크의 상용화를 자신했다. 기술 기반이 탄탄하고, 여러 기관에서 입증했기 때문이다. 실제 동작하는 프로토타입(시제품) 기기를 인터넷에 공개했고, 올 4월엔 나녹스아크의 일부 품목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시판 전 허가(510k)를 받았다. 올해 6월엔 다각도의 이미지 촬영이 가능한 나녹스아크 멀티소스 버전에 대한 FDA 허가도 신청했다.  
 
나녹스아크의 기술은 일본의 소니가 1조원을 투자했던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폴리아킨 회장은 소니 기술을 인수하는 과정에서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2011년 여러 기업을 창업한 혁신가로서 일본과 비즈니스 교류가 많았던 터에 소니 관계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일본은 도호쿠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거대지진 때문에 휘청거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폴리아킨 회장의 회고다. “TV 스크린에 적용할 냉음극 기술을 인수해달란 제안이었다. 거금을 들여 투자해 개발에 성공했는데, 너무 아깝다는 취지였다. TV 시장이 너무 치열해졌고, 소니는 지진 여파로 개발 여력도 없었다. 이를 다른 산업에 적용할 수 없겠냐는 소니의 질문에 나는 의료 영상기기를 떠올렸고 즉각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인 중 최고의 의료기술 전문가로 꼽히는 모리 블루멘펠드(Morry Blumenfeld)과 함께했다. 행선지는 쓰나미의 진원지인 센다이. 당시엔 방사능 문제로 누구도 센다이행 비행기를 타지 않던 시기였다.”
 
일본에 도착해 소니와 미팅을 끝낸 폴리아킨 회장은 동행한 전문가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었다. 수많은 기업이 열음극 방식으로 방출하는 기존 X레이를 대신해 냉음극 X레이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했지만, 소니는 냉음극의 짧은 수명을 길게 늘리는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소니의 기술을 사들여 응용하면 냉음극 X레이 개발 역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나녹스아크, 구독 경제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 받아  

문제는 당시 폴리아킨 회장에게 이런 신통방통한 기술을 사들일 자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대금을 줄 순 없지만, 제품이 개발되면 수익을 공유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소니가 이를 흔쾌히 ‘OK’했다. TV 스크린을 바탕으로 한 기술을 의료 영상진단기기로 변주하는 사이 9년의 연구개발 시간이 흘렀다. 이제서야 나녹스아크의 상용화를 앞두게 된 셈이다.  
 
나녹스가 제시한 BM도 흥미롭다. 나녹스는 기기 구매부담을 줄이고 사용량에 따라 비용을 청구하는 ‘구독 방식’을 채택했다. 기기를 공짜로 내주거나 저렴한 값에 보급하고 촬영 건당 요금을 부과하게 된다. 수많은 영상 이미지를 클라우드에 올리면 이를 세계 각국의 진단 전문가가 분석하는 식이다. 레이저를 이용한 시중의 CT 장비가 10억원대로 고가인 반면, 대량생산되는 나녹스아크의 생산비용은 1000만원 안팎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폴리아킨 회장은 이를 ‘MSaaS(Medical Screening as a Service)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의 MSaaS 모델은 비용을 절감하고 동시에 스캐닝 기반의 진단에 대한 가용성을 높일 것”이라며 “전 세계적으로 환자에게 영상의료에 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영상의료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란 회장과 나녹스가 추구하는 비전은 “더 나은 건강을 위해 함께(TogetherforBetterHealth)”다. 그가 한국과 한국 기업과의 협업, 그리고 생태계 상생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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