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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노태우 북방외교, 외환위기 극복에 큰 기여”

盧 정부 당시 한-러·한-중 수교로 한국 경제 규모 늘어나
중국과의 교역 규모 20년 만에 약 36배 증가…제1 수출국
“과오 있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된 측면 있어”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결과론이지만 중국과 수교가 없었으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됐을까. 중국과 매년 240억~250억 달러의 흑자가 나는데 이것이 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기여했다.” (2008년 7월, 김종인 전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그는 ‘12·12 쿠데타’ 주도 세력이자 역사적인 ‘6·29 선언’ 등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의 정치 역정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북방 정책에 대해서는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은 북방 정책의 일환으로 1990년 9월 30일 당시 소련과 수교를 맺었다. 이후 1991년 소련 연방이 소멸하고 러시아 연방이 이를 계승함에 따라 한-소 외교관계가 한-러 외교관계로 자동 승계됐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수교 이후 양국의 교역 규모는 교역 첫해인 1992년 1억93만 달러에서 2007년에는 100억 달러, 2011년에는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19년에는 224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이에 러시아는 1999년 한국의 23대 교역국에서 2019년에는 9대 교역국으로까지 부상했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자동차, 전자제품 및 식품 제조업과 유통업, 호텔서비스업 등에서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며 높은 시장점유율과 인지도를 구축했다. 상호 관광객은 2019년 77만명에 이르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의료관광, 문화콘텐트 공유 등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북방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졌다. 1992년 8월 24일 수교를 맺은 양국의 교역 규모는 지난 20년간 약 36배 증가했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한-중 수교 20주년 경제적 성과 및 시사점’에 따르면 1992년 양국 수교 당시 대(對)중국 교역 규모는 우리나라 수출대상국 중 6위를 기록했으나, 2004년부터 1위로 올라섰다.
 
2011년 우리의 전체 수출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 24.1%, 수입 16.5%로, 20년 전의 3.5%, 4.6%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도 같은 기간 약 20.7배 증가해 중국은 우리나라의 제2 투자 대상국이 됐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북방 정책에 대해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김 전 대표는 2008년 ‘7·7 선언(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 20주년을 맞아 이홍구 당시 국토통일원 장관 등과 함께 중앙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  
 
“노태우 대통령은 운이 좋았던 분 같다. 우리 경제가 서방 한쪽으로만 가서는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과론이지만 중국과 수교가 없었으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됐을까. 중국과 매년 240억~250억 달러의 흑자가 나는데 이것이 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에 큰 기여를 했다. 북방정책 추진 20년 만에 유엔 사무총장을 한국에서 배출한 것도 북방정책의 성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12월 14일 옛 소련 크레믈린궁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2017년 10월,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은 ‘유라시아21’ 정책포럼에서 “30년 전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발표해 동북아의 냉전 구조를 허물고 남북관계의 해빙에 기여했다”며 “한중, 한소 수교는 우리 경제에 도약의 기회를 제공했다. 수교 당시와 비교해서 한중간 무역액은 33배, 한·러 간 무역액은 15배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이코노미스트]와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리호 발사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은 사실상 불곰사업에서 파생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며 “1987년 개헌을 비롯해 취임 이후 북방 정책 등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돼 있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불곰사업은 대한민국이 구소련에 빌려준 차관을 상환받기 위한 목적으로 구소련을 승계한 러시아 정부와 협상을 통해 차관을 러시아산 군사장비 및 기술과 방산물자 등으로 대신 상환받는 무기도입 사업이었다. 우리 군이 자랑하는 천궁, K2 전차, 현무미사일 등은 사실상 불곰사업의 결과물이다. 현재 국방 분야에서 ‘불곰사업’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강원택 서울대(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비슷한 평가를 했다. 강 교수는 지난 7월,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세미나에서 “당시 한국이 1992년 중국과의 수교가 조금만 늦어졌어도 결국 우리에게 큰 경제적 피해로 돌아왔을 것”이라며 “북방정책의 타이밍은 굉장히 주효했다”고 평가한 것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 것도 사실이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과소평가된 정부고 (변화하는) 시대에 순응했다는 점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면서도 “부패 문제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부패의 정도가 상당히 심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으로 조성한 비자금도 많았고, 일부를 동생 노재우씨와 그 아들들에게 비밀리에 줬다가 볼썽사나운 소송까지 진행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정지원 기자 jung.je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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