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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가 반도체마저 삼키나…맥북 프로에 사용된 CPU, 세상 놀래키다 [김국현 IT 사회학]

애플 자사 메인 프로세서 A 시리즈, 지난해부터 스마트폰 밖으로 꺼내
게임, 기계학습에서 가상현실까지 더 빠른 처리 속도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

 
 
지난 10월 18일 애플이 발표한 맥북 프로. [사진 애플]
 
애플은 지난 10월 18일 맥북 프로 신모델을 발표했다. 으레 반복되는 연례 발표회지만 아이폰 발표회와 달리 반향이 컸다. 이 노트북의 두뇌 M1 프로, M1 맥스가 보통이 아니어서다.
 
애플은 그간 아이폰에서 성공적으로 숙성시켜 온 자사의 메인 프로세서 A 시리즈 기술을 작년부터 스마트폰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그 실체인 M 시리즈의 첫 제품 M1은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애플 컴퓨터와 태블릿에서 골고루 보여줬다. 인텔과 AMD에 의존하던 PC 산업 전체를 당혹하게 할 정도였다.
 
M1의 위력을 이미 실감했고, 그 대형 버전의 도래 또한 예견된 일이었어도 역시 실체를 확인하는 일은 달랐다. 기술 자체는 이 M1과 대동소이. 대신 반도체 크기만 두 배 늘린 M1 프로, 다시 두 배 더 늘린 M1 맥스였지만 기대는 부풀어 올랐다.
 
M1 맥스보다 빠른 CPU, M1 맥스보다 빠른 GPU는 시장에도 있다. 하지만 속도란 늘 전력 소비와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함수였다. 주입되는 전기는 열이라는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강력한 칩일수록 육중한 방열판과 부담스러운 선풍기를 달고 있었고, 그조차 여의치 않다며 수냉식 냉각이 동원되기도 했다. 속도를 향한 군비경쟁의 풍경은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처럼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데 칩의 속도를 나타내는 GHz. 지금쯤은 당연히 10, 20GHz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5 정도에서 머무르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열이라는 벽 앞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물리적 한계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매년 여전히 컴퓨터는 더 빨라지고 있다. 비결은 무얼까? 첫 번째 비법은 프로세서의 코어를 늘리는 일, 즉 더 빨라질 수 없다면 동시에 일을 함께 시키는 전략을 취한 데 있었다. 열이라는 벽 앞에서 더는 빨라지지 못한다면, 하나 더 얹어 드리기로 한 것. 지금은 마트에서 파는 저가형 컴퓨터도 멀티 코어가 당연한 시대. 하나에 집중하기보다 동시에 여러 작업을 진행하는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질수록 쾌적한 성능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연산 능력에 대한 요청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게임은 물론, 기계학습에서 가상현실까지 더 빠른 처리 속도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두 번째 비결은 마른 수건을 쥐어짜며 더 한 번의 성능 향상을 꾀하는 길, 바로 극한의 공정 미세화였다. 30나노 프로세스로 칩을 생산하던 2010년만 해도 10년 뒤에는 더 이상의 미세화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인텔이 여전히 14나노에서 방황하는 동안 애플의 칩을 하청받아 생산하는 대만 TSMC는 5나노 공정까지 치고 내려와 양산 중이다(인텔의 공정 계산법은 약간 달라서 수치만큼의 차이는 아니지만). 14나노보다는 5나노에서 전자의 이동 거리가 짧아지니 열이 덜 발생한다. 그만큼 소비전력은 줄고 성능을 더 높일 수 있었다.
 

반도체마저 빅테크의 깃발 아래

그래픽 처리장치(GPU) 제조업체 엔비디아가 처음으로 내놓는 데이터센터 중앙처리장치(CPU) '그레이스'의 모습. 2023년 출시 예정이다. [사진 엔비디아]
 
인텔의 주가가 최근 영 지지부진한 이유는 이처럼 공정의 진보에서 주춤한 점 탓이다. 그러나 이는 걱정거리가 아니다. 설비 강화는 마진에 상처를 줄지언정 투자로 극복이 가능한 일이라서다.
 
문제는 M1과 같은 괴물 칩의 등장은 업계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라는 데 있었다. 지금까지의 IT는 분업화의 신사협정이 유지되고 있었다. CPU는 인텔이 만들고, GPU는 엔비디아가 만들며,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드는 식이었다. CPU와 GPU에서 AMD가 경쟁자 역할을 해주면서 균형을 잡아 주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균형이란 것은 PC와 같은 컴퓨터에서였을 뿐, 스마트폰이나 클라우드처럼 새로운 질서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전임자의 기득권에 불과해진다. 폰이면 폰, 클라우드면 클라우드, 성장 궤도에 오른 빅 테크 기업은 자신의 효율성을 무기로 점점 시장에 대한 제어를 원하게 된다. 말이 분업이지 통제권을 나눠 가졌다가는 타자의 로드맵이 나의 제약 조건이 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으니 천하를 잡은 플랫폼은 어떠한 분할도 꺼린다.
 
규모도 시가총액도 충분히 부풀어 오른 플랫폼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인수합병을 통해 관련 인재를 흡수해버릴 수 있다.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는 물론, 아예 반도체까지 완전한 수직 통합을 해버리자는 생각도 드는데,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무어의 법칙을 극복하는 세 번째 방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으로 칩을 ‘짜는’ 것이었다.
 
마트 계산대에 병목이 생기니 아예 대량의 자율 계산대를 마련하는 것처럼, 전달된 순서에 따라 명령을 처리하지 않기도 하고, 순서를 건너뛰며 도 아니면 모 식으로 투기적으로 실행하는 일은 모던 CPU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M1은 이 부분의 설계에서 유난히 탁월했다.
 
그리고 칩을 소프트웨어 문화 속에서 만들다 보니 모든 것을 칩 안에서 하드웨어적으로 해결하려고 들지 않고 소프트웨어적으로 함께 푸는 일을 고안하기도 한다. 자신의 칩에서 도는 최적의 코드를 만들도록 컴파일러를 최적화하기만 해도 성능은 크게 개선된다. 또 그렇게 ‘짠’ 칩을 실체화해 줄 하청 업체가 동아시아에 주둔 중이었다.
 
구글도 자신들의 주력 스마트폰 픽셀 6에 자사 설계의 ‘텐서’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애플의 발표회 다음 날의 발표 내용이었다. 애플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이 분명한 듯 삼성의 5나노 공정이 하청받아 생산 중이다. 구글도 애플처럼 이 칩을 잘 키워 크롬북 등 본격적인 컴퓨터에도 심을 예정이다.
 
이번에도 확실한 원청 하청 구조다. 텐서 칩을 만들 때 삼성의 칩 엑시노스의 경험이 도움되었을 것 같지만 입을 싹 씻는다. 플랫폼은 이처럼 위계적으로 전체 시장을 통합하려 든다. 기술의 주인이 될수록 통합은 효과적이다.
 
애플의 M1도 구글의 텐서도 SoC(시스템 온 칩)다. 컴퓨터 속 마더보드에 꽂혀 있던 CPU, GPU 등 분업화된 많은 기능이 칩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경험한 통합의 성공 체험은 이렇게 모든 IT로 확산 중이다. 모든 것을 소프트웨어가 다 삼키는 세상이 찾아온 뒤, 실리콘 밸리는 진짜 실리콘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 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국현 IT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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