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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렉스’(Flex)소비...사치를 넘어 가치로 [허태윤 브랜드 스토리]

2030세대 새로운 놀이문화에서 가치소비까지
골프 플렉스, 비건 플렉스 등 다양한 형태로 확대

 
 
래퍼 염따가 플렉스 상품을 제작해 판매했다. [사진 화면캡처]
‘플렉스(flex)’라는 말은 유행은 무명의 래퍼 ‘염따’가 유명 동료 래퍼의 벤틀리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자 그 수리비를 마련하기 위해 티셔츠와 후드티를 판매하면서 시작됐다. 래퍼 염따는 자신의 이런 사정을 인스타에 올려 판매를 시작함을 알리고 선주문을 받았다.
 
영문 ‘flex’라고 쓰인 티셔츠와 자신이 들이받아 찌그러진 벤틀리 차체를 사진 찍어 후면에 삽입한 후드티, 그리고 노란색 슬리퍼에 자신의 유행어 ‘빠끄’를 집어넣은 노란색 슬리퍼를 포함 3종을 기획, 인스타를 통해 판매한 것이다. 자신이 차량수리비를 벌기 위해 기획한 SNS의 문구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캐주얼 하다. 이런 식이다.  
 
“판매자 특이 사항:난 수리비만 벌면 되니까 넘 많이 사지마 주문받는 만큼만 받는다.  
                배송 2주 기본임. 그러니 웬만하면 사지망^^”  
“배송            : 개 김. 내가 택배 싸야하기 때문에”
“세탁방법       : 옷은 빨면 헤진다. 알아서 하도록”
“품질보증기준  :난 1년 내내 잘 입었음. 몰라~”
 
이런 불성실해 보이지만 진정성이 담긴 재미있는 문구, 그리고 래퍼가 티셔츠 판매에 나선 스토리는 MZ세대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받으며 3일간 무려 4만2000여개가 팔려 나갔다. 염따는 벤틀리 수리비를 갚고도 돈이 넘치게 남자, 이 돈을 자랑하며 유쾌하게 외제 차와 명품 백을 사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플렉스 해버렸지뭐야’ 라고 말하며 단숨에 유행어로 만들어 버렸다. 
 
래퍼 염따가 플렉스 상품을 제작해 판매했다. [사진 화면캡처]
원래 이 말은 미국에서 근육질의 남성이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팔을 구부려 이두근을 자랑하는 행위를 플렉싱(flexing)이라고 하는 데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미국의 힙합 가수들이 자신들의 랩에 어려운 과거를 극복하고 성공한 자신에게 보상한다는 의미가 깔린 ‘분에 넘치는 과시소비’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힙합 문화화가 되었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선 래퍼 염따에 의해 일종의 유행어처럼 번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사회적 의미의 플렉스는 분에 넘치는 사치적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자신의 가치나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를 의미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명품이나 고가의 차를 사는 것은 물론, 예컨대 환경에 대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트럭의 방수천을 업사이클링해 만든 스위스 브랜드 '프라이탁' 가방을 산다든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하는 가게에 가서 ‘돈쭐’을 내주는 것 등의 가치 소비를 포함하고 있다.
 

MZ세대의 새로운 플렉스, 골프 

골프 플렉스를 즐기는 2030세대가 많다. 사진은 카카오 골프 광고 화면. [사진 화면캡처]
레저산업연구소는 2020년 기준 1년에 한 번이라도 골프장을 찾은 골프 인구 가운데 20대는 26만7000명, 30대는 66만9000명으로 추산했다. 각각 전년 대비 92.1%, 30.7% 증가한 규모다. 1년 새 늘어난 골프 인구 44만8000명 가운데 26.5%인 11만9000명이 20·30세대다. 
 
골프는 MZ세대의 놀이터인 인스타그램 감성에 가장 최적화된 콘텐트다. 인스타그램에서 검색어를 찾아보면 해시태그 '골프(600만)' '골린이(56만)' '라운딩(76만)' '골프장(33만)'과 같은 골프 관련 검색어가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한 벌에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골프의류가 날개 돋친 듯 팔이고 있고 심지어 고가의 골프 웨어만을 대여하는 곳이 등장해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MZ세대의 플렉스 소비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골프장이라는 공간 가치의 재발견이 그 이유다. 코로나로 지친 일상 속에 야외에서 불특정의 많은 사람과 섞이지 않으면서 부부, 연인, 친구들과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골프웨어로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몸매를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자신의 골프 웨어 브랜드, 방문한 골프코스를 사진 찍어 인스타에 공유함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정체성을 과시할 수 있는 플렉스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백화점 내 매출 중 명품 매출의 비중이 20년 29.3%에서 21년 35.4%로 6%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명품시장매출이 19% 줄어든 것에 비하면 한국의 명품시장은 독보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명품매장 입장을 위해 주말 평균 5시간을 대기하고, 급기야 백화점이 개점하자마자 달려가는 ‘오픈 런’현상도 나타났다. 
 
명품 브랜드 상품을 사기 위해 매장 문이 열기도 전에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연합뉴스]
이러한 오프라인상 명품 매출 급증은 온라인 명품 매출의 급속한 성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현지 구매나 면세점 이용이 어려워지자 명품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카카오 선물하기’가 명품 코너를 확대 운영 중이며 최근 등장한 명품전문 온라인 플랫폼인 ‘발란’ ‘트랜비’ ‘머스트잇’의 급성장이 그 증거다.  
 
머스트잇은 2020년 2500억을 넘어 전년 대비 70% 가까운 매출 증가를 이뤄냈으며, 발란은 김혜수를 모델로 엄청난 광고비 투자에 힘입어 작년 4분기에만 전년 대비 766% 성장한 20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러한 명품시장 성장의 중심에는 MZ세대가 있다. 현재 한국의 명품시장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부채질한 환경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 기꺼이 큰돈을 쓰고 나만의 개성과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이들에게 명품은 사치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일 뿐이다. 
 
이에 더해 명품 플렉스의 또 다른 새로운 현상은 ‘재테크’로서의 명품소비다. 이들의 명품소비는 온라인 재판매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재테크 수단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샤넬의 핸드백 가격은 올해 들어 11% 인상되었다. 그러나 ‘오늘이 제일 싸다’라는 말이 실감이 된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제품은 모자라니 리세일 시장은 활성화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샤테크’(샤넬+재테크)를 하기 위해 오픈런을 하고 심지어 오픈런 ‘알바’가 생겨나기도 한 이유다. 그로 인해 축적 자산이 적은 MZ세대들도 자신의 소득수준을 고려하기보다 제품 자체의 희소성, 리세일 밸류 등으로 명품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식물 단백질 고기, 착한 화장품 찾는 비건 플렉스 

MZ세대가 주목하는 또 다른 소비의 플렉스는 ‘비건’이다. 식물 단백질로 만든 고기를 먹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사용하며, 식물성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다. 물론 이런 비건 제품들의 가격은 기존의 제품보다 훨씬 비싸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비건 제품을 소비할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친환경의 가치와 동물복지에 대한 신념이 어떤 세대보다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에게 있어 플렉스 소비는 자신의 부를 드러냄은 물론,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환경문제에까지 닿아 있는 개념으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MZ세대의 소비는 ‘플렉스하는 자린고비’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양극단을 오간다. 혼자 먹는 끼니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간단히 때우고 매일 쓰는 샴푸, 세제, 휴지는 철저히 최저가를 찾는다. 그러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자신의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에 부합하는 것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 과거보다 소득이 증가 된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 이들이 ‘플렉스’하는 방법이다.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한신대 IT 영상콘텐츠학과 교수다. 광고회사와 공기업, 플랫폼과 스타트업에서 광고와 마케팅을 경험했다. 인도와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글로벌브랜딩에 관심을 가졌고 공기업 경험으로 공기업 브랜딩, AR과 플랫폼 기업에 관여하면서 플랫폼 브랜딩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2023년 서울에서 열리는 ADASIA 사무총장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허태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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