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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감 드는 “현명하게 판단하라”…금융권 관치의 시대 열리나

이복현 , 손태승 회장 거취 두고 “현명 판단” 발언 후폭풍
2013년 당국자 같은 발언 나와…금융사에 ‘외압 행사’ 논란 커져
금융노조도 관치금융 비판 “사모펀드 근본 원인은 당국”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과 간담회를 마친 뒤 결과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의 금융사 간섭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들어 금리산정과 운영에 개입해 시장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비판을 받은 것에 이어 최근엔 금융사의 최고경영자(CEO) 인선까지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 관치 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금융권, 당국의 민간금융사 CEO 인선 ‘외압’ 논란 일어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금융권에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 CEO 거취와 관련해 내놓은 발언으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 원장은 지난 10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금융사 글로벌 사업 담당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과거 소송(DLF 제재 관련 취소 소송) 시절과 달리 지금 같은 급격한 시장 변동에 대해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아마도 당사자(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9일 금융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열고 우리은행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과 관련해 손 회장 문책경고 등의 조치를 의결했다. 문책경고를 받은 금융사 임원은 향후 3∼5년간 금융사 취업이 제한된다.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종료되며 연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번 당국의 의결이 나오면서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다만 과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중징계 때와 마찬가지로 징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행정소송을 손 회장이 제기할 경우 법적으로 연임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시장에서는 손 회장이 DLF 관련 행정소송에서 1, 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만큼 법원을 통해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확인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 이 원장의 발언이 이를 겨냥한 것으로 비춰지는 상황이다. 다만 이 원장은 이후 “소위 말하는 외압이라든지 특정 인물을 염두에 두고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CEO의 행정소송이 금융사에 부담이 된다고 한다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반대 의견들이 올라올 것”이라며 “당국 수장이 소송과 관련해 개인적 의견을 내놓은 상황이 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노조에서도 관치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당국이 우리금융의 회장 인선과 관련해 개입하겠다는 의문이 든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성명서를 내놓고 “금감원이 우리은행 펀드사태에 대한 제재를 ‘법원의 판결이 나온 후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며 심사를 1년 넘게 미루다 갑자기 진행한 것”이라며 “이 금감원장의 행보와 말은 그것이 ‘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날리고 외압을 통해 낙하산 인사를 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곳은 정부와 감독기관이다.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금융산업을 통해 투기를 부추겼다”며 “판매사인 은행은 사모펀드 내용과 운용에 관해 제도적으로 접근하거나 관여하기 힘든 구조임에도 불완전판매를 일삼은 집단으로 몰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도 나온 당국 수장의 “현명하게 판단하라”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 신 전 위원장은 2013년 4월 이팔성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거취와 관련한 질문에 “합리적으로 잘 판단하실 것”이라고 말했고, 이후 이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금융권에서 현재 이 금감원장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2013년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거취와 관련해 내놓은 발언으로 퇴진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시 신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관련한 거취 질문에 “합리적으로 잘 판단하실 것”이라며 “정부의 민영화 방침과 철학을 같이할 수 있는 분이 맡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전 우리금융 회장이 정부의 우리금융 민영화 계획에 다른 목소리를 내놓자 이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전 우리금융 회장은 퇴진 압력을 못 버티고 신 전 위원장의 발언이 나온 10여일 뒤 사의를 밝혔다.  
 
업계에서는 최근 이 금융원장이 내놓은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란 발언에 대해 지난해 말 민영화에도 성공한 우리금융이 여전히 당국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으로 비쳐지면서 논란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원장은 지난 14일에도 8개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들을 만나 지배구조 개선과 내부통제 강화를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이 원장은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경영진을 선임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외이사가 최고경영자로부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필요성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 역할이 CEO 인선 감독?”

국내 금융지주는 연말과 내년 초 다수의 CEO 임기가 종료된다. KB금융그룹·신한금융그룹·우리금융그룹·하나금융그룹·농협금융그룹 등 5대 금융 중 3개 금융의 CEO 임기가 만료된다.  
 
손병환 농협금융 회장 임기는 오는 12월까지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이 외에도 진옥동 신한은행장과 권준학 농협은행장 임기가 12월 말,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내년 3월 임기가 종료되며 연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기 만료 시점에 당국에서 경영자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언급하고 나서면서 논란을 더 키운 모습”이라며 “감독당국이 CEO 인선까지 감독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용우 기자 yw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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