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을 지나 꽁꽁 언 강을 걸어 은밀한 정원 속으로 들어가다
강원 철원 용암협곡, 한탄강 따라 걷다
12만년전 용암 흘렀던 자리에 ‘한탄강’
2020년 협곡 절벽 사이로 ‘주상절리길’
주상절리 협곡, 머리에 이고 걷는 ‘물윗길’
강원도 철원은 남과 북의 접경지대로, 지금도 휴전의 긴장감은 계속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태곳적 자연유산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특히 신들이 숨겨놓은 은밀한 정원으로 불리는 용암 협곡인 한탄강에는 수직절벽이나 주상절리, 곡류 등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지형을 품고 있다. 까마득한 높이의 수직단애는 자연이 만들어낸 순수한 예술작품으로 불린다.
용암이 여러 차례 흐르다 굳은 뒤 물살에 깎인 시간의 더깨이기 때문. 몇해전부터 이 자연의 예술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철원군이 한탄강의 일부 구간을 트레킹 코스로 조성해서다. 이름하여 ‘한탄강 주상절리길’(12㎞)이다. 하늘길과 물윗길로 나뉜 이 길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길이다.
한탄강을 색다르게 바라보는 방법
생겨난 이력만큼이나 지형 또한 독특하다. 학술용어로는 추가령 구조곡이라 불린다. 구조곡은 길게 파인 침식지형으로, 쉽게 말하면 마른 논이 갈라지듯 ‘쩍’하고 벌어진 독특한 구조다. 그래서 평지에선 강이 보이지 않는다. 강을 눈앞에서 보려면 협곡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협곡은 위에서 보는 것과 천양지차다. 수직으로 뻗은 적벽이 양옆으로 길게 뻗어 있다.
예전에는 한탄강의 깊고 험한 골짜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배를 타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탄강을 감상하는 법이 달라졌다. 철원군은 지난 2020년 11월, 한탄강 협곡의 험한 절벽 사이로 길을 내고 일반에 개방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로 불리는 잔도다. 잔도란 나무 사다리 잔(棧)자를 써서 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매단 길을 말한다. 쉽게 말해 한탄강을 발아래로 두고, 벼랑사이로 걷는 길이다. 잔도의 총 길이는 3.6km, 폭은 1.5m. 궁예가 도망치며 들렀던 곳이라 ‘드르니’로 불리게 됐다는 드르니마을에서 출발해 태봉대교까지 이어진다.
하늘길의 출입구는 드르니마을 매표소와 갈말읍 순담계곡에 위치한 순담매표소 두곳이다. 순담매표소에서는 물윗길이 이어지는데, 하늘길과 물윗길을 다 걷고 싶다면 드르니마을 매표소를 들머리로 잡는 것이 좋다.
한탄강 발아래 두고, 벼랑사이를 걷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넓적한 맷돌 모양의 바위가 있었던 맷돌랑 전망쉼터다. 여기서부터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진다. 강 아래 너른바위 끝부분이 경사진 여울 일대를 지나 절벽을 따라 현무암을 비집고 흘러가는 강물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드르니 스카이 전망대다. 잠시 전망대에 올라 한탄강과 주상절리를 감상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본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급경사를 이루는 ‘쌍자라바위교’, 주상절리 틈에서 자라는 돌단풍을 만날 수 있는 ‘돌단풍교’, 화강암과 현무암이 공존하는 ‘현화교’를 지나면 철원한탄강 스카이전망대다. 잔도 중간 바닥이 투명 유리잔도로 돼 있어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탄강 협곡 아래가 아찔하게 보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다시 길을 나선다. 구리소 전망쉼터를 지나니 강 쪽 하천 바닥에 원통 모양의 깊은 돌개구멍이 보인다. 자갈이 회전하면서 바위를 갈아내 만들어진 모습이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순담스카이 전망대다. 반원형의 전망대다. 벼랑에서 툭 튀어나와 있어 마치 하늘을 걸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바닥에는 작은 격자 구멍으로 가득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벼랑 사이로 길은 계속 이어진다. 화강암 바위로 이뤄진 순담계곡의 멋진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순담계곡 전망쉼터가 나타난다. 그 가운데 물윗길 부교가 고석정으로 S자로 길게 이어져 있다.
한탄강을 스릴있게 즐기는 얼음트레킹
주상절리 협곡의 절벽을 머리에 이고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데, 사계절 중 이때만 가능하다. 한탄강 강물 위로 부교를 놓아 봄까지 걸을 수 있게 했다. 한 겨울에는 꽁꽁 언 강위로 부교 대신 얼음길도 일부 만들어지는데,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철원을 가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순담계곡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태봉대교까지 총 8㎞. 이중 부교길은 2.4㎞, 강변길은 5.6㎞로 나뉜다. 강위로 걸을 수 있는 길도 약 1㎞ 정도 이어진다.
순담계곡에서 고석정까지는 약 1.5㎞.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이 계곡을 따라가면 고석바위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우뚝하다. 무려 20m 높이의 장대한 화강암. 정상부의 소나무 군락에 하얀 눈이 내려앉았다.
승일교에서 송대소까지는 너덜지대다. 넓은 강폭 사이로 부드러운 곡선의 바위들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마당바위를 지나면 은하수교. 길이 180m, 폭 3m의 1주탑 비대칭 현수교다. ‘크고 넓고 맑다’는 의미의 ‘한’에서 떠올린 이름이다. 마치 한마리의 학이 연상되는 모습이다.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한탄강은 또 다른 모습으로 마음에 담긴다.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강줄기와 억만년의 시간이 쌓인 협곡. 그 속에서 감동하는 우리의 모습이 한데 어울려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은하수교 바로 아래는 한탄강 물윗길 최고의 경관인 ‘송대소’다. 송대소는 한탄강의 깊은 소로, 그 위에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현무암 기암절벽이 솟아 있다. 결대로 떨어져 나간 주상절리들이 촘촘한데, 특히 겨울에 보여주는 적벽의 뼈대는 가히 장관이다. 깎아지른 거대한 석벽에 주눅이 들 정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초라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반대편 적벽에는 바위틈으로 흘러내린 물이 샹들리에처럼 얼어붙어 또 다른 정취를 자아낸다.
강원도 철원을 대표하는 ‘막국수’ 열전
좁은 철원 땅에도 금방 만들어 먹는 ‘막국수’ 집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은 동송의 ‘내대막국수’와 신철원의 ‘철원막국수’다. 내대막국수는 묵직한 맛이, 철원막국수는 새콤달콤한 맛이 매력적이다. 찾는 손님들도 내대막국수는 연령대가 좀 있는 손님이다. 양은 꽤 많은 편이다. 장성한 성인 남성도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국물은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면은 메밀 함량이 높아 툭툭 끊어진다.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식감이다. 면의 졸깃한 식감은 돼지 수육이 대신한다. 살과 기름기 배합이 좋아 부드럽고 졸깃하면서도 고소하다.
철원막국수는 좀 더 젊은층이 더 많이 찾는다. 사골육수에 국내산 메밀로 막국수로 만들어낸다. 매콤달콤한 양념장에 비벼먹는 비빔막국수가 인기다. 물막국수는 시원하고 톡 쏘는 상쾌함이 일품. 끝맛으로 매콤함이 밀려온다. 곱빼기가 아니더라도 양은 충분한 편이다. 여기에 막국수와 곁들이는 음식으로 돼지수육과 메밀만두도 인기다.
막국수 외에도 철원에는 알려지지 않은 맛집들이 꽤 있다. 신철원의 농가맛집 ‘대득봉’은 산나물 비빔밥이 맛있다. 직접 재배한 나물로 투박하게 차려 내는 밥상이 정겹다. 신철원의 ‘고향식당’은 상호와는 다르게 중국집이다. 깊고 구수한 맛이 나는 짬뽕이 이 집의 대표 메뉴. 철원 식당으로는 드물게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철원식당’은 내장을 듬뿍 넣고 끓인 순댓국을 낸다. 순댓국 특유의 냄새가 거의 없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민통선한우촌’은 1층 매장에서 고기를 사다가 2층 식당에 차림비를 내고 먹는 이른바 ‘정육 식당’이다.
철원=강경록 이데일리 기자 r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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