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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향 재취업 괜찮다/취업예비군도 하향지원

하향 재취업 괜찮다/취업예비군도 하향지원

명문Y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방모씨(26). 현재 소규모 우편 발송업체에서 임시직으로 근무중이다. 월급은 대략 60만원선. 예전 같으면 어디가서 말도 꺼내기 쑥스러운 일이었지만 요즘은 오히려 용기를 칭찬하는 사람이 많다. 워낙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올 들어 방씨는 대기업 4군데에서 거푸 미역국을 먹고 곧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다 임시직, 그것도 자기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자리가 나오자 즉각 입사를 결정했다.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나올지 미지수였고, 더 좋은 곳이 나오면 언제든 옮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최악의 사태라도 실업자 생활은 면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다. 현재는 비록 임시직이지만 6개월 후에는 정식직원으로 신분상승도 가능하다. K대 심리학과 졸업반인 이모씨(26)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중이다. 나름대로 직업시장을 열심히 탐색하고 취업전략을 짠 후 내린 결론이다. 본인은 안정되고 여유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최선책을 찾았다고 본다. 모두가 동경하는 교수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선 것이다. 이씨가 준비중인 전공은 유아교육. 유치원 보모를 키워내는 곳이어서 이때까지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분야다. 그만큼 남성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선배, 교수 등을 만나 보니 석사과정만 마치고도 잘 하면 전문대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 전 같으면 ‘웬 유아교육이냐’며 놀리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잘 선택했다는 눈치”라는 이씨는 “직업시장에서도 니치 마켓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취업전선이 ‘빙하기’에 돌입하면서 대졸자를 포함한 고학력 취업희망자들의 하향취업 경향이 뚜렷해 지고 있다. 대기업 에서 중소기업으로, 또 전공이나 희망 여부를 가리지 않고 일단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득 찬 분위기다. 경기만 좋아진다면 내년을 기약할 수도 있고 취업이 최악인 올해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상황도 알 수 없으니 임시직도 좋다는 구직자도 많다. 몇개월 후 정식직원으로 채용이 가능한 임시직이라면 더 많은 취업 예비군들이 모인다. 기협 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인력정보센터의 구직자 파일을 보면 이같은 현상을 한 눈에 읽을 수 있다. 보통 고졸 사무·경리직을 중소기업에 알선해 주던 이 곳에 올 들어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구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말 현재 4백명과 7백10명에 불과했던 전문대 및 정규 대학출신 구직자는 올 들어 각각 6백20명과 1천1백명으로 증가율이 거의 50%에 육박한다. 조합지원부 상담과 서화준 과장 “학력에 걸맞는 자리를 얻지 못한 고학력자들이 기대를 크게 낮춘 결과”로 분석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 두거나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양지’만 찾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난 3월 D대학 농업과를 졸업한 박모씨(28)는 애써 얻은 직장을 그만두고 크게 후회하는 케이스. 지난 4월 직원 20여명의 작은 건설장비업체에 입사한 그는 4개월만인 8월 회사를 때려치웠다. 적성도 맞지 않는데다 이만한 직장은 언제든지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였다. 그러나 그 후 3개월 동안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10여군데에 입사원서를 내 봤지만 모두 거절당한 것. “올해는 전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는 “먼저 있던 회사에서 받은 연봉이 1천5백만원이었지만 1천2백만원선도 좋다”고 하향지원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악은 여성 구직자다. 활황이라 해도 남성 구직자에게 밀려 취업이 쉽지 않은 입장이다 보니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는 형편이다. 지난 3월 정보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건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윤모씨(27·여)는 결국 월수 50만원의 대학연구소 조교로 취직했다. 보수나 전망, 안정성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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