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吏들이여, 기업으로부터 들으라”
“官吏들이여, 기업으로부터 들으라”
-한국 정부가 대외협상에 약한 이유가 뭐라고 봅니까? “정부에 있는 사람들이 경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선에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로부터 열심히 들어야 하는 까닭이죠. 무역협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은 공식 채널을 통해 해당 산업의 대표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고 협상 테이블에서 직접 이 정보를 활용해야 합니다. 대표의 선발 등 이 과정이 투명해야 하구요. 일본과의 꽁치 분쟁 때문에 말이 많은데 이 역시 꽁치 어장의 상실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어민들 얘기를 거르지 않고 액면 그대로 들었어야 합니다. 관리들이 흔히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데 왜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는지, 누구를 대변하려고 나왔는지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협상의 성패에 대한 평가는 스스로 내리는 게 아니라 업계 종사자, 기업 하는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규제 완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제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들어야 돼요. 부와 고용 창출의 주체는 기업입니다. 기업들을 편하게 해 주는 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겁니다. 한국의 공무원들이 과거보다 힘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미국 공무원들보다 힘이 셉니다. 고자세구요. 한 마디로 국민과 기업에 봉사한다는 공복(公僕, public servant)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대외협상은 또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무엇을 고수하고 무엇을 양보할 건지가 명확해야죠. 정부 안에서의 부처간 조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협상에 능하지 못한 건 민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사람들은 돈 주고도 사가기 힘든 기밀을 쉽게 털어놓고 기술 이전을 너무 쉽게 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통상 교섭 기능이 외교부에 귀속돼 있는데,어떻게 보나요? 미국의 USTR(미 무역대표부)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고친다면 부처 이기주의, 부처간 갈등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통상교섭본부가 출범한 지 2년 정도 됐으니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가 됐습니다. 그 이전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고, 드러난 문제점들이 가령 대통령 직속으로 할 경우 해결될는지 등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USTR 같은 기구가 통상 문제를 총괄한다면 휴대전화 단말기 업체로 불똥이 튄 마늘 분쟁 같은 문제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겠죠. 부처 이기주의는 어느 나라나 다 있습니다.” 30대 후반에 미 연방정부에 들어가 7년간 일한 그는 공직 경험이 전무한 자신을 기용한 것은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낙하산 인사가 제도화돼 있어 그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요.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자리는 책자에 나와 있어 공무원들도 다 알고 있고, 으레 외부 인사가 들어오려니 합니다. 본인이 무리하게 처신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요. 정부에 몸담는 게 재정적으로는 손해이기 때문에 외부 인사가 2년 이상 있는 경우도 드물구요. 문제는 행정의 투명성입니다. 여기서처럼 장관이 자기 사람을 객관적인 기준 없이 쓰면야 반발하겠죠.” -미국 투자자들은 한국을 어떻게 보나요? “예상치 못한 규제 때문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인허가제 등의 장벽, 긴 처리 기간, 아직 남아 있는 뇌물관행 등으로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비즈니스 하기 힘든 나라로 통합니다. 와보니 한국 기업인들도 같은 얘기를 하더군요.” -외국계 컨설팅 회사들이 많이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을 맡겨 보면 비용은 막대한데 실익은 크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요? “상무부에 있을 때 35개국에 출장을 다녔습니다. 중국의 관리들은 한국의 관리들보다 영어는 떨어지지만 미국의 관리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주 당당합니다. 반면 한국의 관리들은 영어를 잘 못하면 기가 죽어요. 영어와 실력은 사실 무관한데. 외국인 컨설턴트를 쓸 때도 당당히 부려야 합니다. 돈 주고 쓰는 사람인데 정확히 요구하고, 그의 조언이 한국의 실정이라든가 국내에서 축적한 노하우와 부합하는지 따져봐야죠. 외국인 컨설턴트라고 적대시하는 것도, 괜히 주눅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미국은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정책이 없다고 봐야 하나요? “미국은 산업정책이 없는 나라라는 말은 맞기도 하고 그르기도 합니다. 정부가 직접 예산을 동원해 특정 기업을 지원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말은 맞습니다. 방위산업체 등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반면 생명공학 연구에 미국은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미 국립보건원의 1년 예산은 2백억 달러가 넘는데 절반 이상을 전국 대학의 독립 연구기관에 연구기금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원은 첨단 생명공학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의미의 산업정책이라고 할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정부가 방향만 정해야지 자금 배분의 최종적인 결정권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IT업계에 지원된 이른바 ‘눈먼 돈’은 그런 점에서 잘못된 정책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죠.” -부시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클린턴 정부 때와 어떻게 다른가요? “클린턴 행정부 때 폐기된 신속 무역협상권 부여(패스트트랙) 법안의 입법을 다시 추진하는 등 이렇다 할 구체적인 변화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이 수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요? “중국이 맹렬히 추격하고 있지만 우위를 포기하지 않고 고가품, 디자인에서 앞선 제품 등 부가가치가 높은 물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특히 일본처럼 중소기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하우와 브랜드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갈수록 비중이 커지고 있는 서비스 산업 즉 소프트웨어의 국제경쟁력도 키워나가야 하구요. 소프트웨어는 벤처 기업의 몫이죠.”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상 ‘아메리칸 스탠더드’라는 인식도 있는데요. “필립스·이케아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다 미국 기업은 아니죠.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 즉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됩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며 이들의 경영 노하우·글로벌 마인드도 함께 들어오기 때문이죠. 외국인들은 자기들이 투자한 돈을 지키기 위해 선진 경영기법을 적용하고 그 과정에서 한국인 직원들이 배우게 되죠. 이들이 스카우트돼 한국 기업으로 옮기기도 하구요. 여성의 진출이 늘어나는 등 외국 자본의 진출은 활용되지 않던 노동력이랄까 잠재력을 가동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정변호사는 중앙고 2학년 때 미국 이민을 떠나 미 정부에서 상원의 인준을 받지 않는 자리로서는 최고위직인 부차관보를 지냈다. 이른바 이민 1.5세. 이민은 부모의 결정이었다. 그에게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을 리 없었다. 부모들은 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는 “부모들이 하라니까 싫었고,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UCLA 법과대학원을 나온 그는 상무부에서 일하기 전 캘리포니아주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하원의원에 출마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한 그는 이민엔 긍정적이었지만 의료 이민이라든가 이산가족이 되는 교육 이민엔 반대했다. “가정을 이뤘으면 부부가 함께 살아야 합니다. 자식들을 위해 하는 희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죠.” *이 인터뷰는 중앙일보 법과경영연구소 홈페이지(www.biznlaw.co.kr-BiznLaw 초대석)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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