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판에 0.05mm 극소 구멍 뚫는다"
“내조가 별 건가요. 남편이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영을 해결해 준 것도 일종의 내조 아닌가요.” 지어미가 ‘노래’를 부르고 지아비가 ‘장단’을 맞추는 ‘부수부창(夫隨婦唱)’의 벤처기업이 있다. 아내가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회사경영을, 남편은 안에서 연구를 맡는 식으로 과감하게 역할을 분담했다. 대덕밸리 초정밀 가공 벤처기업 하인메카트로닉스(www.hainsys.com)의 안영애 사장과 이성구 연구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회사는 최근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 마이크로 드릴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동을 준공하고 KT(국산신기술)마크까지 수상하는 등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인메카트로닉스의 출발은 지난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인 이소장은 정밀금형 자동화 기계를 생산하는 ‘중앙코아산업’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한때 대전지역에서 ‘잘 나가는’ 기업가로 통했다. 50여명의 직원에 1백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소장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IMF가 시작된 98년 초 거래업체들의 연쇄부도로 40여억원에 달하는 매출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중앙코아산업도 유동성 위기를 맞은 것. 당시 수입 주방용품 회사의 매니저로 활동을 하던 지금의 안사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밥까지 지어 나르며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중앙코아산업은 끝내 하늘이 돕지 않았다. 부도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파트는 물론 승용차와 세간까지 빨간 딱지가 덕지덕지 붙었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여기서 굽히지 않았다. 부도의 ‘악몽’은 부수부창의 저력을 보여줄 절호의 찬스로 받아들여졌다. 6∼7개월 만에 뒷수습을 끝낸 이들 부부는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한 자본금 1억원으로 바로 창업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역할을 바꿨다. 아내가 사장을, 남편은 연구소를 분담한 것. 하인메카트로닉스는 이렇게 출발했다. 그리고는 불과 3년 만에 국내 최초로 초경 등 메탈에 0.05㎜∼0.5㎜의 미세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마이크로 드릴을 개발했다. 논산공장이 문을 열면 본격적으로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PCB용 기판에 0.1㎜∼0.3㎜ 크기를 뚫는 드릴도 개발, 양산단계에 진입했다. 일본·미국·스위스 등 외산이 장악한 마이크로 드릴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하인메카트로닉스의 경쟁력은 지난해 9월 특허를 등록한 ‘마이크로 드릴 제조 방법’. 이 제조방법은 마이크로 드릴 생산공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6개 핵심공정(날연삭, 트위스트 홈연삭, 릴리프 연삭)을 1개의 공정으로 단축시키는 획기적인 기법으로 불량률 절감은 물론 경비도 5분의 1 수준으로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드릴에 미세한 홀을 가공할 수 있는 기술도 지난해 9월 특허를 취득해 반도체회사 등과 접촉을 하고 있다. 이런 성공까지는 안사장과 이소장의 철저한 역할 분담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외국계 수입 주방용품 회사를 다니면서 서구적인 경영이 몸에 배어 있는 아내와 드릴에 관한한 경쟁력을 갖춘 부부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다. 이런 경쟁력 때문인지 하인메카트로닉스는 남들은 어렵다는 올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무한기술투자·알파인벤처투자·다산벤처투자 등으로부터 25억원의 투자자금도 유치했다. 기술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는 정밀가공분야에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던 일본·미국 등의 경쟁업체들도 앞 다퉈 기술·제품 등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올해는 20억원 정도 매출이 목표이지만 본격적으로 양산에 돌입하는 내년에는 2백40억원, 내후년에는 4백10억원의 매출은 넘을 겁니다. 예상매출액을 어떻게 믿느냐고 하지만 주문이 이미 밀려 있는 실정이어서 자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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