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식 대책에 부동산 시장 멍든다
땜질식 대책에 부동산 시장 멍든다
◇집값 상승세 일단 주춤=이번 정부 조치로 주 타깃이었던 강남구 대치·개포·도곡동 일대 아파트값은 진정되고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34평형은 지난 연말 4억8천만~5억원에도 매물이 없다가 지금은 4억3천만~4억9천만원으로 평균 3천만원 정도 떨어졌다. 강남권의 대표적인 저밀도 재건축 단지인 잠실과 청담·도곡·반포지구에서도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기준시가 상향 조정 방침이 발표된 후 값이 내리고 매물이 쌓이고 있다. 청담·도곡지구 내 해청·AID차관·개나리·영동주공 등은 매매가가 모두 게걸음이다. 특히 도곡 주공아파트가 재건축 우선 순위를 획득한 이후 나머지 아파트들은 한마디로 폭락세다. 역삼동 개나리 3차아파트 28평형은 1월 네째주 5백만원 떨어져 5억2천만~5억3천만원이고, 삼성동 해청아파트는 22~50평형이 1천만~6천만원 폭락했다. 송파구 잠실 주공3단지 15평형도 지난 연말 2억7천만원을 호가했으나 최근 들어 2억6천만원으로 빠졌다. 잠실동 유성공인 이형민 사장은 “1·8조치 이후 추가 하락을 기대한 수요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며 전체적으로 연초보다 5백만~1천만원 떨어졌다”며 “이달 초까지 없던 매물도 계속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정부 대책이 시장에 완전히 반영되기 전인 1월11일(전 주 대비) 상승률이 1.56%였으나 18일 0.25%→25일 0.23%로 상승폭이 점차 둔화됐다. 또한 강남권 못지않게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양천구 역시 지난 11일 한 주새 매매값이 3.16%나 올랐다가 18일 0.8%, 25일 0.7%로 오름폭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분당 신도시도 11일 2.13%→18일 1.3%→25일 0.86%로 낮아졌다. ◇분양 상품은 인기 여전=집값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오피스텔·아파트 등 새 분양 상품에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 30일 분당 미금역에 있는 한 모델하우스에는 1천여명의 청약 인파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용인 수지 동문조합아파트에 신청하려고 몰린 사람들로 아파트는 29일 오후 1천3백84가구가 모두 마감됐다. 지난 16일 안산 건건동 대림아파트도 사전 청약 개시 27분만에 1천8백88가구가 모두 팔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오피스텔은 과잉 공급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목동 굿모팅탑Ⅱ은 모델하우스 문을 열고 5시간만에 1백90실이 다 팔렸고, 용두동 대명랜드마크타워 오피스텔도 비 인기지역의 한계를 딛고 4일만에 계약을 끝냈다. 벽산엔지니어링이 방화동에 분양한 에어트리움(4백80실)과 대우자판이 화정동에 내놓은 마이빌(2백21실)은 견본주택을 정식으로 열기도 전에 주인을 찾았다. 김시환 동문건설 이사는 “시중에 돈은 많은 데 갈 곳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주택 공급부족과 집값 상승으로 불안해진 수요자들이 내집 마련이나 임대용 상품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땜질식 처방이 문제=정부의 이번 조치는 부족한 주택공급을 늘리고 집값을 안정시키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부동산114 김희선 상무는 “지금의 집값은 가팔랐던 상승세만 잠시 꺾였을 뿐 완전히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조치가 언제까지 집값을 묶어둘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매도·매수인 모두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마음에 매물을 거둬들이고 거래가 끊기면서 오는 일시적인 ‘멈춤’인 것이다. 또 1월 중순 이후부터는 겨울방학 이사철이 마무리 돼 가는 시기여서 계절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올 봄이 지나면 집값이 또 한 차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장에서는 오히려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강남 아파트값 폭등을 단순히 학군과 학원 수요로 몰아가는 것이 일례다. 이현 알투코리아 사장은 “외환위기 이후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 새 아파트 수급 불균형 현상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며 “단순히 유명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잠재적 불안 요소가 최근 들어 저금리 기조 등 경제여건과 맞물리면서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에 임대아파트를 짓고 새로운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서울 근교 그린벨트를 풀어 임대주택을 지으면 인구·교통량 증가로 결국 서울지역에 부담이 된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는 것이다. 대치동의 한 중개사무소 사장은 “집값 상승의 근원지는 강남인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수도권의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한다는 게 말이 돼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아산신도시 건설 계획은 이미 8년 전에도 써먹은 ‘다 알려진’ 사업이어서 새로울 게 없다. 당장 내년부터 건설한다면서도 재원조달 방안이나 추진일정 등도 제시하지 않아 현지 주민들조차 회의적인 반응이다. ‘선거용’이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올 법하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정부의 땜질식 부동산 정책이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때 경기부양을 위해 내놓은 분양가 자율화·분양권 전매 허용·청약통장 가입자격 완화 등의 조치가 지금와서는 필요악(必要惡)이 되고 말았다. 새 아파트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고, 전 국민들은 떴다방과 다름없는 투기꾼으로 탈바꿈했으며, 서울지역 아파트 분양가는 40~50%나 오른 것이다. 이제는 반대로 분양권 전매와 청약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정부는 오는 4월께 청약증거금 납입제도를 도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청약통장 가입자격을 완화해 놓고 이들이 정식으로 1순위가 되는 4월부터 청약이 어렵도록 제재를 가하겠다는 말이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주민 朴모(39)씨는 “정부 말만 믿고 청약부금에 가입했는데 이제와서 청약증거금을 내라니 다른 사람들과 형평성에도 어긋나는 발상”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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