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쌍꺼풀
| 일러스트 김회룡 |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을 보면, 관상에 문외한이더라도 천원권의 퇴계 이황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지폐 속 이황 선생의 얼굴은 볼이 여위다 못해 쏙 들어간 인상이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인 즉슨, 이황이 어린 시절부터 잔병치레가 많았고, 성품이 정갈했다는 고증을 충분히 감안하여 그림에 직접 반영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세종대왕은 눈에 인자함이 깃들어 있고, 이목구비가 얼굴형과 시원하게 잘 조화된 그야말로 전형적인 후상(厚相)으로 군왕의 기품과 덕, 포용력이 절로 느껴진다. 한편 오천원권의 율곡 이이의 초상화는 조각가 김정숙 씨가 제작한 동상을 바탕으로 영국 화폐 디자이너가 나름의 시각으로 옮겨 그린 그림을 다시 이종상 화백이 화폭에 담은 곡절이 있다. 외국인이 개입(?)된 탓인지 다소 이국적인 모습을 띤다. 그런데 조선시대 초상화 화풍은 ‘일호불사편시별인(一毫不似便是別人)’라 하여 ‘한올이라도 같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는 고매한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그만큼 세밀한 묘사가 관건이었던 셈. 이는 한국 최고의 초상화라고 일컫는 윤두서(1668∼1716)의 자화상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전신사조(傳神思潮)’ 역시 만만찮은 기세를 자랑했다. 즉 인물의 외형묘사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인격과 정신까지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그 지론. 예를 들어 군왕에겐 기품과 인자함, 학자에겐 올곧음과 깐깐함, 백성에겐 순박함이 명징하게 드러남으로써 이상적인 초상화가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맥락상 오늘날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영상기호학의 차원에서 앵글의 조작·인화기법·착시 등 다양한 도구로서 실제모습과 영상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전신사조의 이론에 부합하는 세종대왕 초상화의 경우, 외형보다 그의 성품과 업적에 따른 권위 등이 이목구비를 생성하는 주 모티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소 실제와는 괴리가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림에서 추정되는 연령대에서 이례적인 큰 쌍꺼풀이나 쌍꺼풀의 모양이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즉 같은 쌍꺼풀이라도 한국인에게 흔한 타입인 안주름(Infold)이 아니라 바깥주름(Outfold)이 형성되어 있는 것과 몽고주름이 없다는 사실도 이색적이다. 또 내안각폭(눈 사이 거리)이 안검열폭(눈의 가로 길이)보다 길게 마련인 한국인의 전통적 형상과 거리가 존재한다. 이런 기조는 얼마 전 열린 대한성형외과학회에서 황건 인하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인물화에서 찾아본 한국인 성인 여자 쌍꺼풀’이라는 연구논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즉 1982년 작품에서 표현된 인물 중 쌍꺼풀이 있는 예가 전체의 36%에 그쳤던 것에 반해 2001년에 이르러서는 97%로 껑충 뛴 것. 화가가 생각하는 이상형이나 미적 경향이 그림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봤을 때 쌍꺼풀이라는 미묘한 요소가 20년이라는 세월 속에 변화의 양상을 띠는 것도 놀랍고, 15세기 인물을 20세기의 사람이 해석하여 형상화한 초상화 또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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