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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계 윗자리는 ‘굴러온 돌’ 자리

보험계 윗자리는 ‘굴러온 돌’ 자리

일러스트 김회룡
보험계의 3대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보험협회장과 손해보험협회장·금융감독원 임원 자리를 모두 비보험인이 꿰찼다. 비록 최근 금융업의 발전으로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권역별 경계를 허문 방카슈랑스(bank+assurance)나 금융지주회사가 출현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보험계에서는 윗자리를 모두 보험계 출신이 차지하지 못한 것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보험업계의 현안이나 건의사항을 대변하는 자리인 협회장 자리조차 비보험인이 차지하게 돼 보험계의 무력감이 깊어지고 있다. 보험계의 윗자리를 모두 비보험인이 독식하게 된 것은 지난 14일 생보협회장의 선거로 완성됐다. 생보협회장에 재선임된 배찬병씨를 비롯해 지난달 25일 손보협회장에 새로 선출된 오상현씨, 금융감독원 보험담당 임원 등은 한결같이 보험계 출신 인사들이 아니다. 배찬병 생보협회장은 대전고와 연세대 상대를 나와 지난 1963년 상업은행에 첫발을 들여 종합기획부장·상무·전무·행장까지 거친 ‘뱅커’ 출신으로 보험계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99년 생보협회장이 처음이었다. 또 오상현 신임 손보협회장은 전주공고와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지난 72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상무 등으로 재계에 몸담았다가 81년 1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99년에야 화재보험협회 이사장으로 보험계에 들어섰다. 이밖에 금감원의 보험담당 임원인 강권석 부원장은 동성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와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해 76년부터 97년까지 줄곧 재무부에 몸담은 관료 출신으로 올해 초에 현직으로 옮겼다. 아울러 금감원 이영호 부원장보도 경북사대부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77년 증권감독원에 발을 들여 금감원 통합 이후 증권감독국장을 거친 증권계 인물로, 현재 보험과 증권을 동시에 맡고 있다. 이처럼 보험계의 주요 윗자리를 은행·증권과 정관계 출신이 자리하자 업계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모 보험사 관계자는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 보험자산이 2백조원에 육박하고 수입보험료 기준으로 생보는 세계 6위, 손보는 세계 10위 등 종합적으로 세계 7위라는 위치에 걸맞지 않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다른 관계자도 “협회는 회원사의 이익단체인데 비보험인이 제대로 업계의 입장을 감독당국에 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또한 감독당국도 업계의 특성을 이해하는 정책을 기대하려면 아무래도 보험 출신이 맡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배회장이 유임된 것을 두고 뱅커 출신이지만 업계와 관계가 원만하고 업계를 위해 열심히 뛰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배회장은 생보사가 금감원에 내는 감독분담금을 줄이고 예보료 산출기준을 조정해 연간 7백억원 이상 업계의 금전적 부담을 줄이는 등 여러 공적을 회원사들이 인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배회장이 이근영 금융감독원장과 대전고 동문이라는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일 후보로 추대된 배회장의 재신임을 비공개가 아닌 공개투표로 진행했다는 점에서 감독당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삼성생명 배정충 사장을 비롯한 대형사들이 배회장을 밀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투표에서 ING생명 혼자 반대표를 던졌을 뿐 모두 대형사의 뜻에 따랐다. 생보협회는 50년부터 시작돼 역사가 깊다. 다만 상근회장은 79년 이후 7명이었다. 90년대 이전에는 체신부 장관을 역임한 장승태 회장(재임기간 81∼87년) 등 주로 전임 장관 등이 내려왔다. 지금처럼 업계의 추천을 통해 투표로 선출된 것은 93년 당시 교보생명 부회장이었던 이강환(현 대한생명 회장) 회장부터다. 이회장은 교보생명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유일한 보험 출신 회장이었다. 생보협회 배회장이 예상된 인사였다면 손보협회장 선거는 박종익 전 회장과 오상현 현 회장은 치열한 접전을 벌여 끝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박 전 회장은 업계 사장들을 초청, 골프모임을 가졌다는 소문과 오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간부와 동향이라는 점에 따라 내정설이 나오기도 하는 등 혼탁한 양상을 보였다. 이는 8대 5라는 투표 결과에서도 볼 수 있다. 생보협회장 선거와 달리 손보협회장 인선에서는 대형사가 중소형사의 반란에 패배했다는 분석이다. 무기명 투표라서 공식적으로 확인되진 않았지만 대형사들은 박 전 회장에게, 중소형사들은 오회장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결과에 대해 대형사 사장들은 박 전 회장이 재임시 대대적인 교통사고 캠페인으로 손해율을 줄인 점을 높이 사야 하는데, 중소형사들이 노골적으로 오회장을 밀었다고 불만을 표했다. 반면 중소형사 사장들은 그동안 대형사 위주의 정책에 소외된 한을 표로 보여줬으며, 힘있는 회장이 와서 감독당국과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기대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손보협회장도 과거에는 동자부 장관 출신인 박봉환 회장이 89년부터 93년까지 재임하는 등 장관이나 퇴임 장성을 배려하는 자리였다. 본격적인 민선이라면 93년 이석룡 동부화재 부사장이 회장에 오르면서부터다. 99년 이회장의 뒤를 이은 박 전 회장도 한국자동차보험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줄곧 손보사의 중역을 맡아왔다. 이런 전통은 13년 만에 오회장이 당선되면서 깨지고 말았다. 금감원도 금융권역별 감독원이 통합된 이후 보험감독원 출신들은 임원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업계만큼이나 보험출신의 윗자리를 갈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강부원장은 재정경제원 시절 보험과장을 맡아 자동차보험의 누적손실을 해소해 외환위기 직후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쓰러질 때 손보사는 한 곳도 문을 닫지 않은 공로를 인정받고 있어 보험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번 인사를 두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대가 변했는데도 당국이나 높은 사람들은 여전히 보험을 금융의 변방이라고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는 자조 섞인 한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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