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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얼굴 마담’ VS ‘스타 참모’

[문화현장]‘얼굴 마담’ VS ‘스타 참모’

[좌]영화배우 문성근 [우]개그맨 심현섭
“이제 노사모 활동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인터뷰 안 합니다. 다시 평범한 영화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난 12월19일 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자 문성근씨와 명계남씨는 돌연 ‘정계은퇴(?)’를 발표했다. ‘문짱’ ‘명짱’으로 불리며 4월 국민경선 때부터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을 거쳐 국민참여운동본부까지, 노후보와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이들은 이로써 9개월 동안의 긴 ‘정치외유’를 마치고 다시 영화계로 돌아갔다.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노후보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문씨와 명씨가 어떠한 논공행상도 거부한 채 영화계로 돌아온다면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에 좋은 ‘전범’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TV 광고와 지면 광고, 또는 TV 찬조연설 등 미디어 선거전에서 민주당에 완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한나라당의 시대착오적인 미디어 전략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연예인 동원 전략이었다. 단순한 선전대 역할에 머물렀던 ‘절대 다수’의 한나라당 지지 연예인은 정치의식으로 무장한 ‘소수 정예’의 민주당 지지 연예인에게 완벽하게 주도권을 내줬다. 지난 11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나라당의 우위는 확실했다. 11월6일 탤런트 석현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연예·예술인 노조는 ‘한나라당 연예인 홍보지원단’으로 푯말을 바꿔달고 발대식을 가졌다. 전형적인 세 과시 행사였던 이날 발대식에는 신인 탤런트에서 원로 배우까지 1천여명의 연예인들이 분냄새를 풍기며 ‘이회창’을 연호했다. 11월10일 있었던 ‘한사랑 자원봉사단’ 발대식에는 탤런트 박철씨와 가수 신성우씨와 개그맨 심현섭씨를 비롯한 ‘개그콘서트’ 출연진이 대거 참가했다. 한나라당은 양적·질적으로 연예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까지 민주당은 절대 열세인 상태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 예술인 모임’이 있었지만 대부분 일선 제작자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명 연예인은 없었다. 다급해진 노후보는 11월9일 월드컵 이후 국민가수로 떠오른 가수 윤도현씨의 콘서트장을 찾아가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전략은 연예인의 ‘얼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판다는 것이었는데, 이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뛰어난 연설가인 문성근씨가 노후보 지지를 눈물로 호소한 개혁적 국민정당 발기인대회 연설은 인터넷에 퍼지면서 제2의 노풍을 만들었다. 문씨는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걸고 넘어지자 ‘이회창 후보는 영호남 지역갈등뿐 아니라 서울과 지방도 나눠서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난하기도 했다.뒤늦게 캠프에 합류한 가수 신해철씨도 TV 찬조연설과 거리 유세전에서 특유의 달변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나라당의 연예인 활용전략은 여전히 ‘삐끼’ 역할을 맡기는 것에 머물렀다. 많은 연예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단순히 유세장 분위기를 띄우는 데에 인력 동원만 됐다. 노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자 한나라당은 연예인을 정치공세에까지 끌어들였다. 심현섭씨는 TV 찬조연설에서 자신이 이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노후보를 지지하는 가수 윤도현이 개그콘서트 팀의 ‘윤도현의 러브레터’ 출연을 막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후보를 지지한 탤런트 박철씨가 라디오 프로그램 사회를 그만 둔 것과 김인문씨를 주인공으로 한 TV프로그램 방영이 선거 이후로 연기된 것도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정치공세를 폈다. 선거가 노후보의 승리로 끝남으로써 연예계는 큰 손실없이 다시 평온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심현섭·박철·김흥국씨 등이 ‘주군’의 패배로 인해 다시 연예계로 컴백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후보의 승리로 덩달아 주가가 높아진 문성근·명계남씨 등 노후보 지지 연예인들도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수 신해철은 노후보의 당선으로 기대하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선에 도움을 준 사람의 한 명으로써가 아니라 전국민의 한 명으로써 혜택을 받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과연 온전히 연예계로 돌아와 자신의 ‘공약’을 지키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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