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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회장 자리는 결국 毒

전경련 회장 자리는 결국 毒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겁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술회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27일자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회한의 한자락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마치 경제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우쭐했었다”고도 했다. 대우 문제를 충실하게 대처하고 풀어나가는 현실적 안목이 부족했다고, 정말 ‘설마’했을 뿐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김 전 회장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기본적으론 그의 귀국 문제 때문이다. 지난해 10월1일 국회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장. 현대상선의 당좌대월 논란 속에 시작된 공정위 국감에서 뜬금없이 그의 귀국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성헌 한나라당 의원은 “제보에 따르면 김우중씨가 지난해 귀국 뜻을 밝혔지만 공정위가 대우의 위장 계열사를 대거 적발해 검찰에 고발하는 바람에 불발로 끝났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른바 ‘정치 공작’ 탓에 김씨가 돌아오고 싶어도 못 온다는 주장이었다. 김 전 회장도 스스로 “DJ정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이제 DJ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애드벌룬 띄우듯 여론을 떠보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1월24일에도 그랬다. 김 전 회장 얘기로 떠들썩 했다. 진원지는 미국의 경제 주간지인 「포천」. 김 전 회장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대우그룹 몰락 뒤에 얽힌 정치적 음모와 자신의 경영 실수 등을 털어 놨다. 그는 자신이 1999년 한국을 떠나게 된 배경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워크아웃 전에 잠시 떠나 있으라고 했다”고 밝혔다. 물론 청와대 측은 발끈했다. 한마디로 터무니 없는 소리라는 반응이었다. 청와대 측은 “전화 얘기는 사실무근이며 김 전 회장이 구명(救命)을 위해 대통령을 물귀신처럼 물고 늘어졌다”고 반박했다. 더욱이 당시는 재벌개혁을 강조할 때라 김 전 회장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일축했다. 김 전 회장을 떠올릴만한 장면은 이것만이 아니다. 28대 전경련 회장 선출건이 있다. 2월 초면 김각중 전경련 회장의 임기가 끝난다. 김 전 회장은 DJ정권이 무시무시한 개혁의 칼을 빼내던 98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공교롭게도 당시와 지금 정부쪽 상황은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의 재벌개혁 드라이브가 DJ정권 못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당시를 보자. 고 최종현 회장은 차기회장 후보로 세 명을 골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김 전 회장이었다. 이 가운데 김 전 회장이 낙점을 받았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재계에서는 김 전 회장이 청와대의 내정 상태에서 재계의 추대 절차를 밟았을 걸로 보고 있다. 특히 당시 김 전 회장은 몰락하는 ‘거함’을 건져내기 위해 전경련 회장직을 움켜쥐려 애를 썼다. 지금 전경련 차기회장 선출을 놓고 진통에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서슬퍼런 재벌정책에 맞서 재계의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전경련 40년 역사를 돌아볼 때도 선뜻 회장직을 맡았던 사람은 드물었다. 김 전 회장이 ‘회장직을 고사하는 전통’을 여지 없이 깬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김 전 회장이 단번에 대우를 살릴 길은 대통령을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는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대우를 괴롭히던 관료의 벽을 넘어 청와대로 가는 지름길을 택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결국 25대 회장 임기를 미처 채우지 못하고 유랑자 신세가 됐다. 포천지는 “그가 지난 1년여 동안 부인과도 통화하지 않을 정도로 고국과 연을 끊고 있다”고 전했다. 또 호구지책으로 프랑스의 어느 엔지니어링 회사에 고문 타이틀을 걸어놓고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고 있다는 것. 전경련 회장직에 승부수를 띄웠던 그가 회장직 선출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재계 옛 동료들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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