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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의 新 경쟁력, PPT와 PT

샐러리맨의 新 경쟁력, PPT와 PT

파워포인트 작성과 프리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월요일 보고부터는 모든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만들어 주십시오.” 지난 3월1일 토요일.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부임하자마자 각 국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기 시작한 진대제 장관은 정보화기획실의 보고가 끝나자 ‘당황스러운’ 지시를 내렸다. 과거 군대식 브리핑 자료처럼 문자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을 시각 위주의 파워포인트(PPT)로 만들라는 것. 주말의 시작이었지만 다음 업무보고를 준비해야 했던 정책국은 당장 밤새우기에 돌입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문서를 보기는 했지만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던 까닭이다. 고통스러운 주말이 끝난 3월3일 월요일, 정책국의 ‘파워포인트’ 보고가 끝난 뒤 진장관은 한 가지 제안을 더 내놨다. “이제부터 웬만한 페이퍼(paper)는 다 이걸로 하시죠. 간략하게 합시다”. 한 참석자는 “이 말이 들리자 회의장은 더 조용해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보고 문화가 180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차례대로 읽으면서 보고를 했지만 이제는 빔 프로젝터까지 동원돼 실감나게 프리젠테이션(PT)을 해야 합니다. 혼자 보고 읊던 내용을 모두가 다 보게 된 겁니다. 당연히 토론식으로 진행될 수밖에요. 예전에는 2시간이면 충분했던 회의가 토론식으로 진행되면서 3∼4시간씩 걸리기도 합니다. 밀도가 훨씬 강해졌어요.”

청와대 업무보고도 파워포인트로 정보통신부 김동혁 공보팀장은 “이제는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리를 전개할 것인가가 보고의 핵심이 됐다”고 달라진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정보통신부 직원들은 요즘 파워포인트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고통스러운 업무보고’ 이후 배움의 필요성을 느낀 정통부가 외부 강사를 초빙, 1인당 15시간의 ‘학습’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진장관은 지난 3월28일에 이뤄진 정통부의 청와대 업무보고에서도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자료를 이용했다.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파워포인트를 사용한 것은 진장관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대 정부 프로젝트를 몇 년 동안 진행해오고 있는 기업체의 한 이사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세상의 변화에 뒤떨어져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예”라며 “공무원이라는 명패를 뗄 경우 이들이 인력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는 아픈 지적을 했다. 실제로 일반 기업에서 파워포인트의 사용은 이제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워포인트란 몇 년 전 IT 붐이 일면서 투자를 받으려는 열기와 함께 급속하게 확산됐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문서편집 도구 중 하나로 내용을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특징. 요즘에는 거의 모든 기획서와 제안서, 그리고 업무보고서가 파워포인트 형식으로 제작되면서 파워포인트 작성 능력과 이를 프리젠테이션하는 능력이 개인과 회사의 경쟁력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의사결정자가 신속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평균 1백여건의 제안서를 외부 업체로부터 받는다는 SK텔레콤 콘텐츠사업팀의 이병묵 과장(38)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제안서를 보면 그 회사의 실력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거의 대부분의 제안서가 나열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작성하는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게 기본”임에도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과장은 “독창적이지 않은 제안서에는 거의 눈길이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의 속성상 파워포인트 작성과 PT의 중요성을 일찍 알아차린 외국계 컨설팅사들은 그래서인지 파워포인트 작성을 전문적으로 맡는 ‘비주얼 에이드’(Visual Aid)들을 따로 두고 있다. 이처럼 파워포인트 작성이 중요해지자 최근에는 제안서 등을 파워포인트로 만들어주는 직업도 등장하고 있다. 일명 ‘파워포인트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이들은 외국계 컨설팅 회사나 홍보대행사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이 받는 보수는 하루 8시간 근무에 평균 50만원선. 중요도에 따라 컨설팅이 포함될 경우 수천 만원을 호가하기도 해 알짜 직업으로 통하고 있다.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7년 동안 비주얼 에이드로 근무하다 2년 전 프리랜서로 독립한 하수정씨(30)는 “개념을 도출하는 기획력이 있다면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씨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고객의 성향에 따라 만들기보다는 윗사람의 성향에 맞춘 자료 작성을 원한다”며 “특히 대기업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하다”고 지적한다. 기획서나 제안서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책도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을유문화사가 지난해 11월 출간한 「The 1 Page Proposal」이라는 제목의 책은 3월 말 현재 7만부 가까이 판매됐다. 이 책을 출간한 을유문화사의 권오상 편집장은 “사실 이렇게까지 잘 팔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기업체의 대량 주문도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고 군대에서도 주문이 온다”고 말한다.

”간단함은 단순함이 아니다“ 그렇다면 프리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The 1 Page Proposal」의 저자인 패트릭 라일리는 강력하면서도 간결한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1페이지를 넘는 순간 읽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의 이병묵 과장은 “간단하다는 것을 단순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간단이란 축약의 다른 말인데 현실성도 없고 논리도 없는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선수’로 알려져 있는 주한유럽상공회의소의 김태욱 이사(39)는 “말솜씨보다 성실하게 자료를 준비하고 연습을 많이 하라”고 말한다. 김이사는 특히 파워포인트로 작성하는 자료는 가능한 한 함축적으로, PT의 설명은 합리적으로 하라고 충고한다. 김이사는 또 듣는 사람 중에서 누가 의사결정자인지 알아내 그 사람에게 시선을 자주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의사결정자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음 항목으로 넘어가도 되지만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면 좀더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연습을 했음에도 PT가 두렵다면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채수일(42) 사장의 경험담을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미국 BCG에서의 초기 컨설턴트 시절, 경험이 일천한 내가 나이 많은 고위 임원들을 앞에 두고 경영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죠. 아무리 연습을 해도 어느 순간 로봇처럼 굳어 있는 겁니다. 그때 누군가 ‘앞에 앉아 있는 임원들이 모두 팬티만 입고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았는데 효과가 정말 좋았습니다. 두려움이 싹 없어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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