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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방향 이렇게 바뀌어야 ]성장 가능성 따져 맞춤식 지원해야

[정책방향 이렇게 바뀌어야 ]성장 가능성 따져 맞춤식 지원해야

중소기업중앙회 상담실에 중소기업인들이 정책자금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중소기업 정책자금은 종수는 물론 규모면에서 방대하다. 12개 부처에서 97가지 이름으로 5조4천3백68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수년 사이 중소·벤처창업자금(1998년), 경영안정자금(1999년), 개발기술사업화자금(2000년) 등이 경제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신설된 덕이다. 이 자금이 현장으로 흘러들어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게 단비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라는 지적이다. 중소기업 모두에 기회가 동등하게 돌아가는가, 중복수혜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없는가, 지나치게 담보 위주로 지원되는 것은 아닌가, 사후관리가 미흡한 것은 아닌가 등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금융환경도 변하고 있어 과거 관행이 여전히 유효한가도 의문이다. 아직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요즘같은 저금리기조가 지속되고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확장하면 정책자금과 일반금융과의 차별화도 희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정책자금 차제가 갖는 운영상의 문제점에 금융환경의 변화가 가중됨으로써 전통적인 중소기업 정책자금의 지원구조가 재검토돼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정책자금의 운영·구조개편 방안은 대체로 몇 가지로 얘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정책자금은 본래 취지에 충실해야 한다. 정책자금은 ‘전략적으로 육성이 필요한 분야에 우선적으로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담보는 부족해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 취지에 맞는다. 그렇다면 창업·기술 개발·수출 중심의 중소기업이 첫번째 후보가 된다.

담보 중심의 자금집행 여전해 그러나 아직도 자금집행은 담보 중심이다. 대출 형태의 75.3%(부동산 담보 53.1%, 보증서 22.2%)가 담보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금은 ‘자금이 필요한 기업’보다 ‘담보 능력이 있는 기업’에 편중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정책자금 지원 조건을 ‘부채상환 능력’에 맞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정책자금과 금융자금의 차별성은 줄어들고, 금융권에서 소외된 중소기업의 자금난은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사업성이 좋고 기술이 좋은 기업이라 해도 담보가 없어 정책자금을 받지 못하고 또 그로 인해 자금난에 몰려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들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자금은 금융권에서 자금조달이 곤란한 기업 중 사업성이나 기술성이 있는, 그러나 담보가 부족한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지원 대상 기업에 대한 평가 시스템이 보완돼야 함은 물론이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지원대상을 지식기반 서비스업 등 신산업·비제조업 분야로 확대해야 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행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생산활동별 성장기여율은 제조업이 33.7%, 서비스업이 58.7%이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 구조에서 서비스산업이 제조업을 능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책자금은 예나 지금이나 제조업 일변도로 이뤄지고 있다. 중소기업의 대다수인 비제조업 또는 서비스업 부문은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책적 지원 대상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부분이 더 지원받아야 한다는 ‘원론’에 충실해져야 한다.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신산업 부문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것도 현실이다. 중소기업은 일단 성장이 시작되면 급속하게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보통 창업에서 성장·성숙 단계를 거친다. 따라서 자금도 각 단계별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 정책자금 운용은 전혀 단계별 전략이 없는 형편이다. 하루빨리 단계별 지원 체계가 확립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특정 기업이 어느 단계에 속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성장 단계별 평가방식·지원방식·지원조건의 차별화로 정책 효과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책자금 중 창업자금은 창업 초기 기업, 구조고도화자금은 성장기 기업에 집중 지원하고 성숙기 기업 지원은 최소화하며, 민간투자와 정부정책자금을 연계한 투·융자와 주식연계 상품을 개발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정책방향의 궁극적 지향점은 결국 기업의 수요에 부응해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맞춤형 지원체제’이다. ‘맞춤형 체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또 몇 가지의 선결 사안들이 있다. 우선 정책자금이 민간자금보다 효율적이냐를 판단해야 한다. 만일 민간금융시장이 더 효율적이라면 그 분야의 정책자금은 과감히 폐기 또는 축소해야 할 것이다. 또 자금 운용 자체의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현재 제도는 자금의 금리·상환방식 등이 지나치게 공급자 위주로 돼 있다. 금리나 상환조건 등은 개별 기업의 거래 신인도에 기반을 두고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금리·상환조건 외에도 지원 절차나 서류를 기업별로 간소화시키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결국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이 자금지원의 취지에 맞는 실적을 올렸다면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금리를 보자. 정책자금의 금리는 지속적으로 낮아져 왔지만 시중금리의 하향안정 추세에 따라 그 이점이 감소되고 있다. 개발기술사업화자금 등 특수목적자금은 금리차 혜택이 크지 않으면 정책의 목표 실현에 한계가 있을 것이 뻔하다. 금리가 지나치게 획일화돼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의 정책자금은 우량기업이나 비우량기업이나 대부분 적용 금리가 같다. 정책자금의 기준금리는 여유 재원 범위 내에서 인하하되, 정책 목적성이나 채권보전방법 등에 따라 4∼7%대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상환조건이 획일화됐다는 점은 금리와 별 차이가 없다. 대부분 일정한 거치 기간 후 균등분할 상환 조건으로 지원되고 있다. 이처럼 상환조건이 경직돼 있다 보니 개별 기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환 여력이 없는 기업은 물론 상환이 가능한 기업도 상환 기간을 연장하려 한다. 또 어차피 소비자인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자금이라면 정부의 ‘서비스 마인드’를 강화해 중소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이같은 시각에서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정책자금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대목이다.

유사한 자금 통합·재정비해야 자금 규모도 크기는 하지만 현재의 정책자금은 너무 많은 부처에서 너무 많은 종류로 운용되고 있다. 자금의 소비자인 중소기업들은 자금의 특성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자금의 명칭조차 알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유사한 정책자금을 통합·정비하는 개편작업이 필요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아울러 운용기관·보증기관·금융기관의 정책자금 지원절차와 서류도 다원화돼 있어 중소기업의 정책자금 활용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자금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지원조건에 개별기업의 특성을 반영해 시중자금과의 차별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지금으로서는 새롭고 실험적이기는 하지만 중소기업협동조합 등 중소기업 조직체에 대한 지원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은 정부지원을 통해 공동판매나 공공구매 등 중소기업 회원사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개별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효과가 있다. 또 이같은 방식은 몇 가지 추가적인 이익이 있다. 그 동안 문제로 지적됐던 직접지원 방식을 간접지원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시장친화적 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으며, 동시에 협동조합의 공동사업이 활성화됨으로써 중소기업 조직화 전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이 지원됐음에도 일각에서는 정부의 정책자금이 실질적으로 중소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제고했다거나 인프라를 구축하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방식의 지원 체제를 도입할 시점이며, 조직체를 통한 간접지원 방식도 충분히 검토해 볼만한 대상이다. 이웃 나라 일본도 협동조합을 통한 중소기업정책자금 지원이 병행되고 있어 중소기업 조직화가 활성화돼 있으며, 이탈리아 역시 이런 형태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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