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증시, 짝짓기‘눈치 작전’
유럽 증시, 짝짓기‘눈치 작전’
유럽이 단일 증권시장을 원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각국 거래소들 사이에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알력이 빚어지고 있다.
유로화 출범 이래 유럽에서는 증권거래소들 사이에 짝짓기와 외교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무엇과 무엇이 합칠 것인가이다. 런던 증권거래소(LSE)가 도이체 뵈르제(Deutsche Borse)와 짝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나스닥과 연결지어질 것인가.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이탈리아 증권거래소는 과연 어느 쪽과 결합할 것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짝짓기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사실 범유럽 단일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유럽의 대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해 뉴욕 금융시장에 맞서고 거래비용도 줄이자는 것이다. 각국 증권거래소는 대개 회원 소유의 조직에서 영리 기업으로 탈바꿈해 왔다. 그 결과 합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거래소들은 저마다 독자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들 거래소가 추구하는 전략이 서로 달라 조기 통합은 어려울 듯싶고 여기에는 국가적 자존심도 작용하고 있다. 도이체 뵈르제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LSE도 런던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의 증권거래소들이 국가적 이해관계를 떠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유로넥스트(Euronext)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3년 전 장 프랑수아 테오도르(Jean Francois Theodore)는 암스테르담 ·브뤼셀의 증권거래소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파리 증권거래소와 합병시켰다. 이어 리스본이 합류했다. 이에 놀란 LSE가 세계 제2의 파생상품 거래소인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를 합병하려 했지만 테오도르는 LIFFE마저 낚아챘다. 테오도르는 지금까지 국가 간 거래소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일한 인물이다.
테오도르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는 “앞으로 유럽에 2~3개 거래 네트워크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로넥스트다. 거래소 통합이 6개월 안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4월 테오도르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합병이 제안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그는 추파만 던지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냥 술이나 한잔 했을 뿐 제안 같은 것은 없었다”며 “보르사 이탈리아나(Borsa Italiana)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제휴 전 상장부터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LSE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상대방도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테오도르만큼 유럽 증시 통합에 공을 세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네덜란드의 중개인들은 합병 이래 시스템이 자주 다운되고 거래비용도 증가하자 몹시 불만스러운 나머지 암스테르담에 새로운 시장을 설립하기 위해 LSE와 접촉해 왔다.
111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증권거래업체 반 데르 몰렌(Van der Moolen)의 프레드 뵈처(Fred Bottcher) 회장은 “합병 이후 거래비용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고 불평했다(현재 반 데르 몰렌의 주무대는 뉴욕이다). 합병 이후 규모가 큰 주문에는 20차례의 거래가 뒤따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 그 결과로 거래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합병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LSE가 유로넥스트의 물량을 잠식할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론상 LSE는 적은 한계원가로 네덜란드 주식을 거래하고 유로넥스트의 가격 책정 권한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새 거래소가 설립되어도 유동성 보강말고 다른 이점이 없는데다 그나마 네덜란드 중개인들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카르텔화할 가능성마저 있다.
테오도르는 네덜란드측의 위협에 대해 재협상 시 수수료 인하를 노린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유로넥스트가 제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테오도르는 앞으로 겨냥해야 할 유일한 표적이 각 나라의 거래소가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테오도르가 LIFFE를 매입한 것은 런던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세계 대다수 거래소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온 일반 주식보다 파생상품의 거래량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게다가 LIFFE는 국경을 초월한 시장으로 LIFFE의 거래 중 63%가 영국 밖과 연결돼 있다. 파생상품의 세계 시장인 LIFFE는 1990년 이래 연평균 성장률 21%를 기록했다. 주가지수 옵션 같은 주식 파생상품은 연간 30%, 채권선물 같은 금리상품은 12%씩 성장해 왔다.96년 도이체 뵈르제가 스위스 증권거래소와 합쳐 유렉스(Eurex)를 설립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해 유렉스에서 거래된 파생상품은 도이체 뵈르제 매출의 30%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23% 증가한 것으로 같은 기간 주식 거래 매출이 13% 떨어졌을 때이다.
유렉스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 맞서 미국 주식 관련 옵션 대체시장도 만들 계획이다. CBOT는 지난 1월 유렉스와 관계를 끊었다. 대신 유로넥스트·LIFFE와 전자 거래 플랫폼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CBOT와 유로넥스트의 계약은 상품 개발 ·판매로 확대될 수도 있다. 유로넥스트는 외교 게임에서 유렉스를 제치고 유리한 고지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 셈이다.
거래소들은 해외 기업의 상장을 유도함으로써 지리적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 LSE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국 기업 주식보다 다른 나라 기업 주식을 더 많이 거래해 왔고, 현재 홍콩과 ‘자동 교차 상장’을 협상 중이다. LSE가 이런 협상을 인도 등 과거 대영제국 식민 국가들로 확대할 경우 어떻게 될까. 사실 그들 나라 대부분은 영국과 유사한 사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각 국가의 거래소는 그대로 놓아둔 채 유럽을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정산 ·결산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유럽 증권거래소의 상장기업 ·투자자 ·거래인 ·고객들은 주문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거래가 어느 지붕 아래서 진행되든 별 관심도 없다. 독일에 있는 투자자가 프랑스나 스페인 거래소의 주식을 사고자 할 경우 독일에서 거래할 때보다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서 국경 너머로 거래가 이뤄질 경우 거래소마다 각기 다른 정산 ·결제 시스템을 거치게 된다. 게다가 단계를 거칠 때마다 수수료가 빠져나간다. 이는 주식거래 결제가 국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못박는 규정 등 과거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뉴욕 소재 민간 두뇌집단인 외교위원회(CFR)의 수석 연구원 벤 스테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래소 자체의 통합이 아니라 정산 ·결제 시스템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에서 거래소의 대규모 합병이 몇 건 완료됐지만 국가 간 거래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지적했다.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거래소는 결제기관을 통합했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다른 거래소들과 규제 당국이 발끈한 것은 도이체 뵈르제가 지역 결제 시스템인 클리어스트림(Clearstream)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테오도르는 도이체 뵈르제가 부가가치를 안고 있는 모두를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통신시장 독점처럼 모든 시스템이 한 업체에 집중될 경우 경쟁업체를 아예 가로막거나 가격경쟁으로 퇴출시킬 수 있다. 도이체 뵈르제의 클리어스트림 매입 이후 다른 고객들은 과다한 수수료와 시장 접근 거부에 대해 불만을 토해 왔다.LSE의 돈 크뤼크섕크(Don Cruikshank) 회장은 도이체 뵈르제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정산 ·결제 시스템이 각국 거래소로부터 독립된 단일 체제로 묶일 경우 규모의 경제를 낳게 될 것”이라며 “그럴 경우 기업의 자본비용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위원회(EC)가 후원한 한 연구에 따르면 직접 거래 비용만 연간 16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3년 전 도이체 뵈르제의 베르너 자이페르트(Werner Seifert) 회장은 LSE에 합병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지역 한계 내에서 소매영업에 매달려 있던 LSE 회원들은 도이체 뵈르제와 합병해 봐야 아무 득도 없을 거란 생각에서 이를 거절했다. LSE가 상장된 지금 소매 중개인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 자이페르트가 3년 전과 똑같은 제안을 다시 내놓을 생각이라면 도이체 뵈르제의 수직적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아니면 유럽 증권거래소들로 하여금 정산 ·결제 사업에서 손 떼도록 만들려는 LSE의 노력을 단념시켜야 한다. 관건은 어느 거래소가 외교 게임에서 승리하느냐 하는 점이 아니다. 유럽을 단일 자본시장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끌 수 있는 정산 시스템에 어느 거래소부터 참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로화 출범 이래 유럽에서는 증권거래소들 사이에 짝짓기와 외교 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무엇과 무엇이 합칠 것인가이다. 런던 증권거래소(LSE)가 도이체 뵈르제(Deutsche Borse)와 짝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나스닥과 연결지어질 것인가.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이탈리아 증권거래소는 과연 어느 쪽과 결합할 것인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짝짓기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사실 범유럽 단일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유럽의 대기업과 투자자들에게 유동성을 제공해 뉴욕 금융시장에 맞서고 거래비용도 줄이자는 것이다. 각국 증권거래소는 대개 회원 소유의 조직에서 영리 기업으로 탈바꿈해 왔다. 그 결과 합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거래소들은 저마다 독자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들 거래소가 추구하는 전략이 서로 달라 조기 통합은 어려울 듯싶고 여기에는 국가적 자존심도 작용하고 있다. 도이체 뵈르제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LSE도 런던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의 증권거래소들이 국가적 이해관계를 떠나 프랑스 파리와 함께 유로넥스트(Euronext)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3년 전 장 프랑수아 테오도르(Jean Francois Theodore)는 암스테르담 ·브뤼셀의 증권거래소들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여 파리 증권거래소와 합병시켰다. 이어 리스본이 합류했다. 이에 놀란 LSE가 세계 제2의 파생상품 거래소인 런던 국제금융선물거래소(LIFFE)를 합병하려 했지만 테오도르는 LIFFE마저 낚아챘다. 테오도르는 지금까지 국가 간 거래소 합병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일한 인물이다.
테오도르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는 “앞으로 유럽에 2~3개 거래 네트워크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유로넥스트다. 거래소 통합이 6개월 안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 4월 테오도르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당시 합병이 제안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그러나 그는 추파만 던지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그냥 술이나 한잔 했을 뿐 제안 같은 것은 없었다”며 “보르사 이탈리아나(Borsa Italiana)는 큰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제휴 전 상장부터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LSE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상대방도 관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테오도르만큼 유럽 증시 통합에 공을 세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네덜란드의 중개인들은 합병 이래 시스템이 자주 다운되고 거래비용도 증가하자 몹시 불만스러운 나머지 암스테르담에 새로운 시장을 설립하기 위해 LSE와 접촉해 왔다.
111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증권거래업체 반 데르 몰렌(Van der Moolen)의 프레드 뵈처(Fred Bottcher) 회장은 “합병 이후 거래비용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고 불평했다(현재 반 데르 몰렌의 주무대는 뉴욕이다). 합병 이후 규모가 큰 주문에는 20차례의 거래가 뒤따르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한다. 그 결과로 거래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합병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LSE가 유로넥스트의 물량을 잠식할 수 있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이론상 LSE는 적은 한계원가로 네덜란드 주식을 거래하고 유로넥스트의 가격 책정 권한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새 거래소가 설립되어도 유동성 보강말고 다른 이점이 없는데다 그나마 네덜란드 중개인들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카르텔화할 가능성마저 있다.
테오도르는 네덜란드측의 위협에 대해 재협상 시 수수료 인하를 노린 속셈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축했다. 유로넥스트가 제대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테오도르는 앞으로 겨냥해야 할 유일한 표적이 각 나라의 거래소가 아님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테오도르가 LIFFE를 매입한 것은 런던에 대한 욕심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세계 대다수 거래소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온 일반 주식보다 파생상품의 거래량이 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게다가 LIFFE는 국경을 초월한 시장으로 LIFFE의 거래 중 63%가 영국 밖과 연결돼 있다. 파생상품의 세계 시장인 LIFFE는 1990년 이래 연평균 성장률 21%를 기록했다. 주가지수 옵션 같은 주식 파생상품은 연간 30%, 채권선물 같은 금리상품은 12%씩 성장해 왔다.96년 도이체 뵈르제가 스위스 증권거래소와 합쳐 유렉스(Eurex)를 설립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해 유렉스에서 거래된 파생상품은 도이체 뵈르제 매출의 30%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23% 증가한 것으로 같은 기간 주식 거래 매출이 13% 떨어졌을 때이다.
유렉스는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에 맞서 미국 주식 관련 옵션 대체시장도 만들 계획이다. CBOT는 지난 1월 유렉스와 관계를 끊었다. 대신 유로넥스트·LIFFE와 전자 거래 플랫폼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CBOT와 유로넥스트의 계약은 상품 개발 ·판매로 확대될 수도 있다. 유로넥스트는 외교 게임에서 유렉스를 제치고 유리한 고지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게 된 셈이다.
거래소들은 해외 기업의 상장을 유도함으로써 지리적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 LSE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자국 기업 주식보다 다른 나라 기업 주식을 더 많이 거래해 왔고, 현재 홍콩과 ‘자동 교차 상장’을 협상 중이다. LSE가 이런 협상을 인도 등 과거 대영제국 식민 국가들로 확대할 경우 어떻게 될까. 사실 그들 나라 대부분은 영국과 유사한 사법체계를 갖추고 있다.
각 국가의 거래소는 그대로 놓아둔 채 유럽을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는 더 쉬운 방법이 있다. 정산 ·결산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유럽 증권거래소의 상장기업 ·투자자 ·거래인 ·고객들은 주문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는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거래가 어느 지붕 아래서 진행되든 별 관심도 없다. 독일에 있는 투자자가 프랑스나 스페인 거래소의 주식을 사고자 할 경우 독일에서 거래할 때보다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서 국경 너머로 거래가 이뤄질 경우 거래소마다 각기 다른 정산 ·결제 시스템을 거치게 된다. 게다가 단계를 거칠 때마다 수수료가 빠져나간다. 이는 주식거래 결제가 국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못박는 규정 등 과거 역사의 산물인 것이다.
뉴욕 소재 민간 두뇌집단인 외교위원회(CFR)의 수석 연구원 벤 스테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거래소 자체의 통합이 아니라 정산 ·결제 시스템 통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에서 거래소의 대규모 합병이 몇 건 완료됐지만 국가 간 거래를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는 오히려 퇴보했다고 지적했다.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거래소는 결제기관을 통합했다. 그러나 정작 유럽의 다른 거래소들과 규제 당국이 발끈한 것은 도이체 뵈르제가 지역 결제 시스템인 클리어스트림(Clearstream)을 매입했다는 점이다.
테오도르는 도이체 뵈르제가 부가가치를 안고 있는 모두를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통신시장 독점처럼 모든 시스템이 한 업체에 집중될 경우 경쟁업체를 아예 가로막거나 가격경쟁으로 퇴출시킬 수 있다. 도이체 뵈르제의 클리어스트림 매입 이후 다른 고객들은 과다한 수수료와 시장 접근 거부에 대해 불만을 토해 왔다.LSE의 돈 크뤼크섕크(Don Cruikshank) 회장은 도이체 뵈르제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유럽 정산 ·결제 시스템이 각국 거래소로부터 독립된 단일 체제로 묶일 경우 규모의 경제를 낳게 될 것”이라며 “그럴 경우 기업의 자본비용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위원회(EC)가 후원한 한 연구에 따르면 직접 거래 비용만 연간 16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3년 전 도이체 뵈르제의 베르너 자이페르트(Werner Seifert) 회장은 LSE에 합병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지역 한계 내에서 소매영업에 매달려 있던 LSE 회원들은 도이체 뵈르제와 합병해 봐야 아무 득도 없을 거란 생각에서 이를 거절했다. LSE가 상장된 지금 소매 중개인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 자이페르트가 3년 전과 똑같은 제안을 다시 내놓을 생각이라면 도이체 뵈르제의 수직적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아니면 유럽 증권거래소들로 하여금 정산 ·결제 사업에서 손 떼도록 만들려는 LSE의 노력을 단념시켜야 한다. 관건은 어느 거래소가 외교 게임에서 승리하느냐 하는 점이 아니다. 유럽을 단일 자본시장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이끌 수 있는 정산 시스템에 어느 거래소부터 참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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