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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 방카슈랑스 식은 열기

큰 기대 방카슈랑스 식은 열기

오는 8월 방카슈랑스가 시행된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금융권에서 합종연횡이 계속되고 있지만 열기는 그리 뜨겁지 않다. 정부의 단계적인 도입방안이 걸림돌이란 지적이다.
"국내 보험시장의 총매출 규모는 2001회계연도 기준으로 연간 약 65조원 규모로, 보험 신규판매에 따른 연간 모집수수료는 수조원에 이른다. 은행의 방카슈랑스 진출은 직접금융시장의 발달과 경쟁 심화로 인한 예대마진 축소의 대안으로서 새로운 수수료 수입 확보를 통한 수익성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평가한다.” 지난해 7월 방카슈랑스 허용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이 입법예고된 뒤 한 시중은행에서 만든 내부자료의 일부다. 이 보고서는 “금융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자율화와 겸업화 확대는 방카슈랑스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은행들은 방카슈랑스에 잔뜩 기대를 걸었다. 입법예고 이전부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짝짓기에 부산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1월 알리안츠에게서 프랑스생명 지분 50%를 인수하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하나생명은 올해 2월에 출범했다. 신한은행은 BNP파리바그룹의 자회사인 카디프생명과 손잡고 생명보험을 설립하기로 했다. 신한과 카디프의 공동출자 생보사인 SH&C생명보험은 5월 예비인가를 거쳐 12월부터 허가를 받았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보험회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이들 보험사는 대형 은행이 외국 보험사와 제휴할 경우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당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교보생명이 대대적으로 TV광고를 내보내고 삼성생명이 13년 만에 TV광고를 재개한 것은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금융회사와 보험사 사이의 합종연횡은 계속되고 있다. LG투자증권은 4월 7일 증권사로서는 처음으로 손보사와 생보사 파트너 선정을 마무리했다. LG투자증권은 “특화된 보험상품을 개발해 종합적인 재무컨설팅을 제공함으로써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기대 컸던 은행권 관망세로

방카슈랑스는 은행과 보험의 합성어로, 다른 금융회사가 보험상품 판매 등 보험업을 영위하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보험이 은행업을 영위하는 것은 ‘어슈어뱅킹’이라고 한다. 방카슈랑스는 1980년대 유럽에서 은행이 보험상품을 판매하면서 부각됐다. 프랑스에서는 생명보험 상품 중 67%가 은행을 통해 팔린다. 다른 금융회사에서 보험상품을 팔기 위해 취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판매제휴다. 방카슈랑스는 판매제휴 외에 은행이 생명보험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생보사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다. 또는 은행과 보험사가 함께 출자해 판매회사를 세우는 방법이 있다.

국내 방카슈랑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공동자회사 설립을 가장 효율적인 전략으로 꼽았었다. 금융권 데이터베이스(DB) 마케팅 자문회사인 TSK컨설팅의 최종욱 대표는 저서 <방카슈랑스> 에서 “기존 은행과 보험의 조직이나 인력으로는 방카슈랑스에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동자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고객의 반응 위주로 움직여 온 기존 은행 조직은 보험상품 판매에 적합하지 않고, 현재 보험사 인력으로는 대출 등 지식을 갖춰야 하는 방카슈랑스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제 방카슈랑스 시행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방카슈랑스 열기는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신한과 하나 외에 보험사와 공동출자 자회사를 만들기로 한 곳은 우리금융밖에 없다. 나머지 은행들은 3~4개 보험사와 판매제휴를 맺는 데 그쳤다. 방카슈랑스에 성공하려면 공동자회사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던 데 비추어보면 제휴가 느슨한 편이다. 하나은행에서 방카슈랑스를 담당하고 있는 이인수 부행장은 “다른 은행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고 있다”며 “방카슈랑스가 시작돼도 적극적으로 나설 데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보험사 가운데 메트라이프생명과 뉴욕생명은 아예 제휴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관심이 예전같지 않게 된 것은 정부 방침 때문이다.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1월 중순 보험업법 시행령과 금감위 규정에 반영할 ‘방카슈랑스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관련 업계가 제휴와 보험모집인 교육, 전산시스템 구축 등 사전준비를 차질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항을 확정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우선 보험상품 판매를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또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금융회사에게는 특정 보험사 상품의 판매비중을 50% 미만으로 제한해 은행이 3개 이상의 보험사와 판매제휴를 체결하게 했다. 중소 보험사에도 기회가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들 규정은 보험업계 구조조정과 인력감축 충격을 완화하면서 방카슈랑스를 시행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보험설계사는 지난해 3월 말 현재 생명보험 17만명, 손해보험 5만7,000명 등 모두 22만7,000명에 이른다.

보험사별 판매비중 제한에 대해 금융연구원의 정재욱 연구위원은 “은행의 방카슈랑스 활용에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연구위원은 “은행이 보험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이 원하는 보험상품을 제공하지 못할 우려가 있고, 이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방카슈랑스가 활성화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외국서도 방카슈랑스 열기 식어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는 가운데, 방카슈랑스에 대한 기대가 지나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TSK컨설팅의 최 대표는 “프랑스의 경우 보험판매망이 취약하고 은행지점이 많아 방카슈랑스가 활성화됐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국내 은행의 지점에서 근무하는 인력은 지난해 6월 말 현재 6만7,000여명으로 보험설계사 수에 크게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폰뱅킹과 인터넷뱅킹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은행에 들르는 빈도도 낮아져 은행이 인맥을 바탕으로 한 보험판매망에서 고객을 뺏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방카슈랑스 열풍도 잠잠해졌다. 지난 5년 동안 세계 금융회사들은 방카슈랑스에 열을 올렸다. 크레디스위스 퍼스트보스턴(CSFB)은 97년 스위스 보험사 윈테르투르를 인수했다. ING는 2000년 미국 보험사 렐리아스타를 합병했다. 하지만 CSFB 등의 방카슈랑스가 저조한 실적을 내면서 방카슈랑스 모델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과 보험을 분리하는 추세가 새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시티그룹은 보험사업부인 트래블러스를 분사했다.

한미은행은 보험사와의 합작사 설립은 보험상품 판매가 완전 자유화되는 2007년 4월 이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카슈랑스는 이 때 비로소 본격적으로 활성화할까? 이전에는 은행이나 보험사나 시장을 공략할 마땅한 방안이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금융회사는 텔레마케팅을 할 수 없지만 공동출자 자회사에게는 이런 규제가 없다. 공동출자 자회사가 고객DB를 바탕으로 텔레마케팅을 활용해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대출과 보험을 연계한 상품을 팔면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조언이다.

대출과 보험을 연계한 상품으로는 신한은행의 ‘세이프론’이 있다. 세이프론은 신한은행이 제휴사인 카디프생명과 제휴해 개발했다. 세이프론을 대출받은 고객이 사망하거나 1급장애 사고를 입으면 카디프생명이 남은 대출금을 갚는다. 대출받은 쪽에서는 사고를 입었을 때 상환부담을 덜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사고를 입으면 보험사가 보상해 주는 상품이 일반화돼 있다. 방카슈랑스가 금융회사와 소비자에게 확산되는 속도는 더딜 전망이다. 하지만 발빠른 금융회사와 소비자는 그동안에도 적잖은 효용을 누릴 수 있다.



“방카슈랑스 ‘황금알 거위’ 아니다”


미셸 개스 LG화재 고문

“기대만큼 결실을 거두긴 어려울 겁니다.” 보험 컨설턴트인 미셸 개스(Michel Gasse · 53) LG화재 고문은 방카슈랑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볼 때 머지않아 한국의 은행과 보험사가 실망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 올스테이트 등 10여개 보험사에서 33년을 지낸 베테랑인 그가 이런 비관론을 제기한 이유는 뭘까?

그는 먼저 한국 정부가 방카슈랑스를 도입한 배경으로 유럽쪽의 통상 압력을 꼽는다. 소비자의 필요와는 동떨어진 정책 결정이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금융환경이 방카슈랑스가 발달한 유럽·북미 등과 다르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국의 경우 보험사 지점수가 은행 지점보다 많다는 것. 게다가 지난 25년간 한국 보험 시장에서는 ‘인간 관계’를 내세운 설계사들의 활약이 절대적이었다고 말한다. 보험 수요자가 굳이 은행 창구까지 가서 낯선 사람에게 보험을 들지 의문이란 주장이다.

미셸 개스 고문은 “시장 지배력이 있는 삼성생명의 경우 굳이 은행 등과 손잡을 이유가 없다”며 “다만 너도나도 떠들어대고 있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 없이 떠밀려가고 있을 뿐”이라고 분석한다. 지점수와 인력이 부족한 외국사와 중소형사나 해볼 만한 사업이란 것. 그는 또 굳이 방카슈랑스 사업에 뛰어든다면 DM 발송 등의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합작 형태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ING생명의 경우 재빠르게 국민은행과 손을 잡았지만 1개사 판매 비중이 50%를 넘지 못하는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방카슈랑스는 또다른 판매 채널일 뿐이다. 너무 많은 비용 들이지 말고 기다리며 관망하라.” 그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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