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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돈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섹스, 돈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존 데몰만큼 TV 시청자의 기호를 정확히 간파해 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1997년 어느 날 저녁, 존 데몰(John de Mol·47)이 여느 때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면 문명세계의 모습은 지금과 조금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날 저녁 데몰은 TV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지루하고 아무 소득 없이 회의가 끝난 자정 무렵 그는 그 회의에서 누군가 <바이오스피어 2> (Biosphere 2)에 대해 했던 말이 기억났다.

<바이오스피어 2> 는 네 남자와 네 여자가 2년 동안 사막의 거대한 유리 돔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방영한 미국 TV 방송 프로그램이었다. 다음 날 새벽 5시, 데몰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려한 외모의 데몰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TV 프로덕션 엔데몰(Endemol)을 운영하고 있다(1994년 경쟁사 요프 반 덴 엔데(Joop van den Ende)와 합병한 이후 의약품을 연상케 하는 엔데몰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데몰은 “일단의 남녀로 하여금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해놓고 하루 24시간 내내 그들의 생활을 TV로 생중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MTV에서 <리얼 월드> (Real World)라는 프로그램이 이미 방영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런 생각이 데몰의 독창적 아이디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그런 장르의 프로그램에 붐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데몰은 1년간의 은밀한 작업 끝에 <빅 브라더> (Big Brother)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빅 브라더> 는 미남·미녀들로 하여금 한 집에서 100일 동안 함께 생활하게 만든 뒤 TV 카메라 24대로 그들의 모든 생활을 찍은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리얼 TV’라는 새로운 장르의 TV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될 즈음인 1999년 9월, <빅 브라더> 가 네덜란드에서 첫선을 보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너무 좋다는 평이 있는 반면 혐오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TV 방송사 운영에 근본적 변화를 몰고 왔다. 그 덕에 데몰은 돈방석 위에 앉게 됐다.

리얼 TV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신선함은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새 지평을 여는 것과 거리가 멀다. 탐욕 · 욕망 ·음모 ·굴욕 같은 소재는 1950년대 <하루를 여왕처럼> (Queen for a Day), 1960년대 <신혼 게임> (Newlywed Game) 이후 TV에서 꾸준히 다뤄 왔다. 1970년대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 살고 있는 라우드 가족의 못 말리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보여줬던 프로그램 역시 리얼 TV 장르의 초기 형태다. 리얼 TV의 등장을 가위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경제적 측면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나타난 경제적 효과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엔데몰의 <피어 팩터> (Fear Factor), 엔데몰의 작품은 아니지만 <백만장자 조> (Joe Millionaire)와 <미국의 우상> (American Idol) 같은 프로그램이 황금시간대에 방영되는 다른 프로그램들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자 프로그램 편성 시간대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TV 방송사들의 프로그램 제작비 지불방식도 변하고 있다. TV 방송사들은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경우 재방송(아예 재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렵 제작사에 제작비를 지불하는 데 반해 리얼 프로그램의 경우 거의 예외 없이 첫 방영 때부터 즉각 지불한다.

리얼 TV 프로그램 제작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수익을 매우 중시하는 데몰은 “리얼 TV가 등장하면서 TV의 총체적 수익모델이 달라지고 있다”며 흡족해했다. 첫 시즌 동안 <빅 브라더> 한 시간 방영분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28만 6,000달러였다. 그에 비해 30분짜리 시트콤의 평균 제작비는 130만 달러다( <친구들> (Friends)처럼 인기 배우를 출연시킬 경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게다가 리얼 TV에는 프리미엄 요금이 부과되는 시청자 전화 참여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익원을 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실제 인물들이 출연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유분방한 네덜란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네덜란드 TV 방송사 가운데 리얼 TV라는 장르를 받아들인 곳은 베로니카뿐이었다. 그나마 엔데몰이 제작비 600만 달러의 반을 부담하되 광고 매출의 50%를 가져가는 조건으로 <빅 브라더> 방영에 동의했다.
그렇게 해서 리얼 TV 열풍이 세계 전역으로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1999년 9월 16일 <빅 브라더> 가 처음 방영되자 네덜란드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베아트릭스 여왕 등 많은 시청자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는 저질 프로그램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관음증’을 막을 수는 없었다. 12월 30일 시즌 마지막 편이 방송될 당시 네덜란드 국민 가운데 3분의 2가 <빅 브라더> 를 시청하고 있었다.

리얼 TV 프로그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은 네덜란드인 만이 아니었다. 같은 해 10월 프랑스 칸에서 열린 국제 방송 프로그램 견본시장인 ‘미프컴’에 참가한 세계 각국 방송 관계자들은 <빅 브라더> 라이선스를 받기 위해 앞다퉈 엔데몰 부스로 몰려들었다. 데몰은 수십 개 게임 버라이어티 쇼와 <사랑이 전부> (All You Need Is Love) 같은 실제 남녀의 데이트 프로그램으로 10년 이상 미국 시장 문을 두드려왔지만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CBS·ABC·폭스·USA 네트워크스가 데몰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2000년 2월 데몰은 CBS의 레슬리 문베스 사장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해 여름 CBS의 또 다른 라이선스 수입 프로그램 <서바이버> 와 함께 <빅 브라더> 가 미국에서 처음 방영됐다. CBS는 <빅 브라더> 의 첫 시즌 방영분에 2,000만 달러를, 그 다음 시즌 방영분들에 대해서는 1,500만 달러씩 지불했다.
주식시장이 엔데몰에 주목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96년 주당 24달러에 기업공개(IPO)를 한 이후 엔데몰의 주가는 찔끔찔끔 올랐다.

그러나 <빅 브라더> 가 인기를 얻고 합병설까지 나돌면서 2000년 초반 엔데몰의 주가는 100달러로 치솟았다. 데몰은 주당 153달러에 엔데몰 주식을 스페인의 대규모 통신업체 텔레포니카로 넘겼다. 그것도 데몰이 제시한 가격이었다. 기자 회견장에서 거래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었던 2000년 3월 17일 새벽 4시, 데몰은 텔레포니카측 관계자들이 와서 모든 서류에 사인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외투를 입고 텔레포니카측이 15분 안에 도착하지 않을 경우 돌아가겠노라고 선언했다. 당시 데몰과 같은 방에 있었던 엔데몰의 한 임원은 “그가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귀띔했다.

텔레포니카측 관계자들이 15분 안에 도착해 53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매입했다. 53억 달러는 당시 엔데몰 매출의 11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 가운데 데몰의 몫은 13억 달러였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위험부담을 거의 모두 피해 갔다(이후 텔레포니카의 주가는 64%나 떨어졌다). 그는 당시 계약에서 5년간 더 회사에 머무는 조건으로 재량권을 얻어내기도 했다.

데몰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경쟁사 어디서도 하지 못한 국제 무대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머지않아 다른 업체들이 엔데몰을 모방하리라 예상했다”며 “모방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엔데몰은 다른 나라 방송사들에 제작비 가운데 4~8%의 수수료로 라이선스만 팔아도 아무 위험 부담 없이 짭짤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데몰은 21개국에서 프로덕션을 인수하거나 아예 설립하는 전략으로 나섰다.

지난해 엔데몰과 자회사는 1만 5,000시간에 해당하는 프로그램, 다시 말해 400여 개 시리즈 프로그램을 제작했다(여기에는 리얼 TV 프로그램이 아닌 것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엔데몰의 라이브러리는 500개 구성체제로 이뤄져 있다. 그 가운데 250개는 언제든 제작이 가능하다. 이들 구성체제는 세계 어디에든 내다팔 수 있는 자산이다. 지난해 엔데몰의 매출 9억 7,000만 달러 중 영업이익(감가상각비·이자·세금공제 전 이익)은 1억 6,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텔레포니카가 엔데몰 주식을 너무 비싼 가격에 매입했지만 어느 정도 성장 잠재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엔데몰은 프로그램의 지평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때로 감각적 한계를 약간 건드리는 새 아이디어도 활용한다. 데몰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낙하산이 9개뿐인 비행기에 10명이 타고 가다 6km 상공에서 비행기 엔진이 꺼지는 상황을 프로그램으로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내일이라도 당장 지원자 수천 명을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내게도 분명한 선이 있기에 그런 프로그램을 연출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계에 맞서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의 한계와 25년 전의 한계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피어 팩터> 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시작된 프로그램이지만 지금은 엔데몰의 구성체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최근 방영된 <피어 팩터> 에서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응고된 피·썩은 치즈·쓴 빵 조각으로 만든 피자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매주 18~49세의 미국인 800만 명이 <피어 팩터> 를 시청한다. 따라서 광고주들로서는 내용이 못마땅하지만 <피어 팩터> 를 통해 광고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피어 팩터> 는 18~49세를 겨냥한 월요일 저녁 8~9시 프로그램들 가운데 시청률이 가장 높다. 여름 내내 리얼 TV 프로그램들이 드라마나 코미디 재방 시청률을 앞서면서 기존 TV 사업 방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엔데몰 USA의 데이비드 골드버그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름은 프로그램 방영의 적기다. 여름 동안 <웨스트 윙> (West Wing) 재방에 편당 200만 달러나 쓰면서 시청률 4위라는 성적표를 받고 싶은가. 차라리 ABC의 쇼 프로그램 <독신자> (Bachelor)가 훨씬 낫다.”

엔데몰은 현재 미국 시장에 출시할 16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이로써 미국 내 매출규모를 지난해보다 50%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엔데몰의 미국 내 매출규모는 5,000만 달러였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운 나머지 기본 업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에 박장대소하고 싶다면 엔데몰이 올해 방영 예정으로 제작 중인 여러 쇼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파김치> (Exhausted)가 제격일 것이다.

엔데몰의 수입이 광고에만 직결돼 있는 것은 아니다. 엔데몰이 스페인판 탤런트 선발 프로그램인 <성공작전> (Operacion Triunfo)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 한번 살펴보자. 2001년 가을 다재다능한 젊은이 16명이 바르셀로나 외곽에 위치한 <성공작전> 의 ‘탤런트 아카데미’로 들어갔다. 이들은 시청자와 지도교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에서 잠시나마 자신의 재능을 선보였다. 드디어 2002년 5월 어느 토요일 밤, 21세의 뚱뚱한 여성 로사 로페스가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스페인 TV 시청자의 68%에 이르는 1,500만 명이 환호했다. 프리미엄 요금이 부과되는 970만 통의 전화와 단문메시지(SMS)가 방송사로 쇄도하면서 엔데몰, 국영 방송국 텔레비존 에스파뇰라, 텔레포니카에 총수입 940만 달러를 안겨줬다. <성공작전> 출연자들의 인기는 탤런트 아카데미를 나온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스타로 떠올랐다. 엔데몰은 <성공작전> 출연자들이 만든 CD 480만 장 판매로 3,080만 달러를, 비디오 판매로 73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성공작전> 과 관련된 콘서트가 25회 열렸다. 그 가운데 1인당 입장료가 28달러인 한 콘서트에 관객 60만 명이 몰려 1,7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데몰은 “엔데몰이 이제 단순한 TV 프로그램 제작업체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컨텐츠를 서비스하는 업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컨텐츠 제공이 프로그램 아이디어 판매로 수수료를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짭짤하다는 뜻이다. 현재 컨텐츠 제공에 이용되는 주된 매체가 휴대폰이다. 휴대폰은 미국보다 유럽에 더 많이 보급돼 있으며 단문메시지서비스(SMS) 전송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메시지 전송료 가운데 25~50%는 엔데몰의 수입으로 들어간다. 현재 메시지 전송 등 엔데몰 프로그램과 교신하는
데서 비롯하는 수수료 수입이 엔데몰 전체 매출 가운데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향후 3년 안에 배로 늘 전망이다.

엔데몰의 상품 중에는 TV와 무관한 것도 있다. 엔데몰은 이번달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개인 맞춤형 다이어트 서비스에 나설 예정이다. 가입자에게 메시지당 최고 76센트에 SMS로 날마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방영 중인 리얼 TV 프로그램 <빅 다이어트> (Big Diet)와 관련해 이미 2개월에 12달러로 시범 회원 가운데 반에게 간단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TV 방송사도 동원할 계획이다. 엔데몰이 회원 개개인의 습관과 관련해 축적해 놓은 정보는 광고주에게 매우 유용할 것이다.

데몰은 “ <빅 브라더> 의 인기를 몰아 휴대폰용 프로그램까지 개발하면 경제적 효과가 25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화사업 규제가 완화되고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텔레포니카는 엔데몰이 본류에서 너무 벗어난 게 아니냐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데몰이 엔데몰을 다시 매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몰이 엔데몰을 다시 매입하면 리얼 TV 프로그램에 더 많은 몰래 카메라 ·쓴피자 ·곤두박질치는 비행기까지 동원하려 들지 모른다.



"연극은 내 사랑”

요프 반 덴 엔데(가운데)와 <삼총사> 의 출연진.
리얼 TV 프로로 돈방석 앉은 요프 반 덴 엔데,
이제 ‘꿈의 무대’서 정열 불태워


‘엔데몰’이라는 회사명 가운데 ‘엔데’에 해당하는 요프 반 덴 엔데(61) 역시 억만장자다. 애초 그가 운영한 프로덕션과 존 데몰은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1994년 합병했다. 반 덴 엔데와 존 데몰은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생각을 지닌 고집불통들이었다. 따라서 양사의 합병이 계속 이어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반 덴 엔데는 리얼 TV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엔데몰에 몸담고 있으면서 고혈압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반 덴 엔데는 “엔데몰과 엔데몰의 성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다시 혼자 사업할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여긴다. 그는 2000년 3월 스페인 통신업체 텔레포니카에 엔데몰이 매각되면서 13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받고 곧 사퇴했다.

반 덴 엔데는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무대’로 돌아갔다. 오늘날 그가 소유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소재 스테이지 홀딩은 4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프로덕션과 라이브 공연에서 4억 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스테이지 홀딩은 유럽에 5개 극장과 7개 레스토랑을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1,000만 달러를 들여 5개 극장이 들어 있는 미국 뉴욕의 복합 상영관을 개·보수하고 있다. 그가 99년 8,000만 달러에 엔데몰로부터 연극 부문을 인수한 것이 스테이지 홀딩의 시발점이었다.

반 덴 엔데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다. 하지만 연극사업은 내 사랑이자 열정이었다.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TV 사업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는 반 덴 엔데의 움직임을 반겨 맞이했다. 엔데몰이 연극 부문을 그에게 매각한 다음 날 엔데몰 주가는 17%나 올랐다.
반 덴 엔데의 ‘연극사랑’은 6세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그는 인형극을 무대에 올렸다. 동네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20대의 그는 ABN 암로은행에서 7,000달러를 대출받아 연극업에 뛰어들었다.

고전물과 현대물을 무대에 올렸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배우가 TV 프로덕션을 차려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시트콤으로 돈을 벌게 되자 드라마도 제작했다. 이렇게 해서 요프 반 덴 엔데 프로덕션스는 연간 매출 7,500만 달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 최대 TV 프로그램 제작사로 우뚝 서게 됐다.
텔레포니카 주식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합병 이후 6개월 만에 팔아치운 반 덴 엔데가 현재 갖고 있는 재산은 11억 달러 정도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10개 중 9개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가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 올린 작품이 <시라노> (Cyrano: The Musical)다. 93년 11월부터 137회 공연된 <시라노> 는 그에게 1,000만 달러의 손실만 안겨줬다.

다음 사업준비는 한층 철저했다. 97년 반 덴 엔데는 브로드웨이 경험이 풍부한 다저 스테이지 홀딩 시애트리컬스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어 그는 연극 <타이타닉> 에 투자했다. <타이타닉> 은 토니상 5개 부문을 수상했다. 스테이지 홀딩은 <타이타닉> 을 유럽 무대에 올렸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스테이지 홀딩은 네덜란드와 독일에 있는 자사 프로덕션 모두에 자금을 댔지만 뉴욕과 런던에서 공연한 쇼 제작비의 20~80%는 앤젤투자로 충당했다. 반 덴 엔데는 로열티 계약으로 위험을 분산시키는 방법까지 터득했다(일례로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상연된 디즈니의 <라이언 킹> 을 꼽을 수 있다).

영국에서 공연한 뮤지컬 <포시> (Fosse) 같은 몇몇 작품은 다른 회사와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스테이지 홀딩의 재무 담당 이사 바르트 반 슈리크는 스테이지 홀딩이 지난 3년 동안 매출 가운데 5~8%에 해당하는 세후 순이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반 덴 엔데는 최근까지 <삼총사> (3 Musketeers) 리허설에 눈코 뜰 새 없었다. <삼총사> 는 지난달 로테르담 무대에 올려졌다. 반 덴 엔데는 10여 년 전부터 알렉상드르 뒤마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그는 배역·무대미술·의상·홍보에서 다른 세세한 부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에 직접 관여한다. 그의 말마따나 마음은 무대 위 배우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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