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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원초적 생명의 에너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원초적 생명의 에너지

국도로 가는 국토 기행―영덕·청송

봄날 ‘꽃분홍 연가’ 복사꽃을 연상하며 7번 국도를 따라 영덕으로 향한다. 벌써 그 꽃이 커다란 복숭아로 변해 영덕 주변의 거리는 천막마다 복숭아 잔치다. 영덕이 복사꽃 마을이 된 데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1959년 그 유명한 사라호 태풍 때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벼농사를 제일로 쳤던 시절, 토사로 뒤덮인 농토는 황무지나 다름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토사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수종을 찾다보니 그것이 복숭아나무였다.

지금이야 배고픔에서 벗어나 복사꽃의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당시만 해도 처절한 생존의 법칙이었을 게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슬픈 복사꽃을 보고 감탄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라고나 해야 하지 않을지. 복사꽃이 지고 없는 과수원 주변에는 대신 분홍색 부처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다.
포항에서 영덕쪽으로 가다보면 삼사해상공원을 10여분 남겨두고 이정표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개인이 운영하는 ‘경보화석박물관’이다.

박물관 앞에 전시된 규화목을 보고 냉큼 표를 사들었는데 3천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다. 전시장에는 수천여종의 화석들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건설업을 하던 강해중(62)씨가 지인으로부터 화석 한점을 선물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20여년간 사재를 털어 사모았다고 한다. 1996년 문을 열었는데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삼엽충 화석은 나이가 5억살 이상이라며 얼굴을 내밀고, 페름기의 메소사우루스와 중생대 쥐라기의 파킨소니아 화석…. 인간이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것이 불과 3백만년 전부터라고 치면 상상하기조차 힘든 어마어마한 시간의 잔재들이다.

이와 함께 경북도민들이 새 해 해맞이를 하는 삼사해안해상공원도 잠시 들러볼 만하다. 인공폭포·연못·망향탑 등이 있는 유원지로 방갈로와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서 2~3분만 가면 영덕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이다. 지난날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촬영지로 유명해진 이 곳은 오전 5시 30분이면 벌써 부산스러워진다. 고깃배가 들어오면 수협공판장에서는 알 수 없는 수신호가 오가는 가운데 경매가 이뤄지고, 어민들은 항구로 몰려나와 하루를 준비한다. 아울러 여행객들도 덩달아 몰려나와 갓 잡아온 게와 퍼덕거리는 생선을 들추며 항구의 아침을 맞는다.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라 특히 갈매기떼가 많아 어디서든 끼루룩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강구항을 한바퀴 돌자면 드라마 속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버지인 최불암과 푼수데기 교수였던 박원숙의 구김살 없는 함박웃음이 곳곳에 배어 있는 듯하다. 이어 오십천을 따라 나 있는 34번 국도를 타고 주왕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축제의 고장답게 영덕은 다양한 행사들이 여행객들의 옷깃을 잡는다. 그중 하나가 오십천 은어축제. 매년 7월 말이면 오십천변에서 은어 낚시대회, 민물고기 맨손으로 잡기대회 등이 열린다.

한쪽에 오십천을 끼고 달리는 34번 국도가 무척 운치 있다. 우리나라 3대 산골로 불렸던 청송이고 보면 주왕산 가는 드라이브 코스는 단연 비경이다. 비 갠 하늘에는 구름이 피어 오르고 겹겹이 쌓인 산들은 달리아 꽃잎이 포개져 있는 것처럼 신비롭다. 길가에는 패랭이꽃이 즐비하게 피어 있다.
이어 34번 도로에서 69번 지방도를 타고 다시 914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우포늪만큼이나 원초적인 생명의 에너지를 간직한 주산지가 나온다.

청송군 부동면 이전동 소재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약 1백년 전 준공된 것으로 지금까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호수 속에서 자생하는 능수버들과 왕버들 수림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산지 입구에 있는 절골 표지판을 따라가면 매표소가 나오고, 시간이 허락하면 산행을 해도 좋다.
7번 도로변 바다는 열병을 앓고 있다. 연일 내린 비로 계곡물은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고, 그 물을 받아들이는 바다 또한 황톳빛이다.

여름장마 때 이렇게 자연스럽게 황톳물이 바닷속으로 유입되면 병든 바다는 황토 약을 받아 먹고 자연 치유되고, 그렇게 생각하면 자연의 섭리는 얼마나 위대한가.
해맞이 축제를 시작으로 복사꽃 축제·오십천 은어축제·대게 축제·영덕 해변축제·문화 예술축제까지 1년 내내 ‘축제의 고장’인 영덕. 어느 때, 어느 길목에서 풍물패의 흥겨운 징소리를 만날지 모를 일이다. 여행은 낯선 풍경과의 어울림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것 아닌가.
(여행가·for NWK)

■ 주요 통과 지역:포항∼영덕



맛집을 찾아서



40년 자존심의 영덕대게

영덕에 오면 우선 대게 맛을 봐야 큰소리칠 수 있을 터. 영덕군 강구면 강구 2리 강구항은 새벽부터 대게 혹은 청게의 경매로 활기차게 하루를 연다. 그래선지 강구항은 밤이 없는 듯 느껴지고, 밤낮없이 식도락가들이 대게 맛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강구항에 가면 수많은 대게 집이 있지만 그 중 대게의 참맛을 내는 곳이 ‘원조할매대게집’(054-733-7480)이다. 작고하신 어머니 김난이씨의 요리법을 그대로 전수받은 정기한(44)씨가 온종일 손님을 맞는 곳이다. 정씨의 어머니는 40년이 넘도록 이 곳에서 식당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몇년 전에 돌아가신 후로 맏딸인 정씨가 대물림했다.

대게는 자칫 ‘큰 게여서 대게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실제로는 게 다리가 대나무처럼 길고 쭉쭉 뻗어서 붙은 이름이다. 대부분 게를 쪄서 내놓기 때문에 맛이 뭐 그리 집집마다 차이가 날까 싶지만 분명 다르다. 우선 게를 고르는 과정부터 전문가의 눈짐작은 맵다. 4남매가 모두 대게요리 전문점 내지 대게 중매인 일을 하는 전문가인 탓에 게 한마리를 살짝 들어보기만 해도 그 맛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고.

가위로 요리조리 갈라가며 잘 쪄진 대게 다리의 하얀 속살을 파먹을 즈음이면 별미 중 별미인 게 뚜껑이 나온다. 잘게 썬 야채와 김을 넣고 참기름에 볶은 밥을 뚜껑에 담아 내놓는다. 게맛을 아는 사람은 다리살보다 노란 장과 함께 비벼먹는 고소한 뚜껑맛에 눈독을 들인다. 아울러 게다리 한두개를 넣고 버섯·호박 등 야채와 함께 바글바글 끓인 대게탕도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이 집은 대게 가족이기도 하거니와 대게요리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하다. 독특한 맛을 지켜온 비결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요즘 영덕에서 내놓는 게는 영덕 대게가 아니다. 영덕 대게는 11월 1일부터 산란기 직전인 5월 말일까지만 잡는다. 그래서 그 이후 6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시중에 나도는 게는 러시아산이나 일본산으로 영덕 대게에 비하면 반값에 지나지 않는다. 시세에 따라 매일 가격변동이 있는 게 특징. 두 사람이 먹는다면 수입산일 경우 5만원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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