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도 힘차게 걷고 있는’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한때 명성을 휘날리던 우량 기업 또는 유명 브랜드들의 수명이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몇몇 세계적인 명품은 세월이 흐를수록 브랜드의 힘이 강성해지고 있다. 조니 워커(Johnie Walker)도 그런 브랜드다.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인 조니 워커는 1820년 탄생했다. 조니 워커의 브랜드 파워는 18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막강하다. 조니 워커는 지난 50여 년 동안 판매량 1위 자리를 고수하면서 계속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지난해 조니 워커의 총 판매량은 1,100만 상자(9ℓ기준)로 2위인 제이앤비(J&B)의 800만 상자와 큰 격차를 유지했다. 조니 워커는 스카치 위스키의 세계화를 이끌었으며 생산 면에서 고품질화와 탁월한 마케팅 활동은 늘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존 워커는 1820년 스코틀랜드 서남부 킬마녹에서 위스키 사업을 열었다. 존 워커는 탁월한 블렌더로서 스코틀랜드 전역의 위스키 원액을 매입해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개발했다. 그의 자손들은 수대에 걸쳐 사업을 계승 · 발전시켰다. 존 워커의 손자인 알렉산더는 1908년 조니 워커의 심벌인 ‘활기차게 걷는 사람(Striding Man)’을 창안해 상표로 도입했다. 알렉산더는 조니 워커 브랜드에 새롭고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찾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한 만화가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그가 메뉴 카드 뒷면에 그린 그림에 눈이 번쩍 뜨인다. 활기차게 걷는 사람은 이렇게 ‘발탁’됐다. 이 그림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조니 워커의 기업문화와 잘 어울렸다. 도안의 밑에는 ‘1820년에 태어나 아직도 힘차게 걷고 있다’라는 문구로 장식했다.
조니 워커는 1909년에 블랙라벨과 레드라벨을 도입했다. 블랙라벨은 프리미엄급 위스키로, 레드라벨은 스탠더드급으로 발매했다. 조니 워커는 1차 대전 말기에 세계 120개 국가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알렉산더 워커는 1920년 기사 작위를 받은 뒤에도 위스키 블렌딩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1932년에는 조니 워커 스윙을 개발하였는데 이 병은 흔들리는 배에서도 병이 쓰러지지 않게 고안된 것이었다. 당시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해외 여행을 많이 해서 조니 워커 스윙은 긴 항해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영국 왕실은 1933년 조니 워커를 공식 만찬주로 지정했다. 조니 워커는 2차 대전 말에 이르러서는 세계 판매량 1위 자리를 확고히 했고, 오늘날까지 위스키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고 있다. 조니 워커는 1990년대에는 조니 워커 골드와 블루를 개발해 스탠더드로부터 슈퍼 프리미엄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객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조니 워커가 이러한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탁월함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우수한 원액의 확보와 탁월한 블렌딩 기술 없이는 명품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니 워커 가족은 스페이 강 유역의 카듀(Cardhu) 증류소를 중심으로 27개의 몰트(Malt) 증류소와 2개의 그레인(Grain) 증류소를 소유하고 있다. 조니 워커는 세계 최대의 원액 보유사로 스코틀랜드 전역의 수많은 천사들에게 향기로운 위스키를 공급하고 있다(위스키 원액 숙성이 목통에서 증발되는 부분을 ‘천사의 몫’이라고 부른다).
조니 워커를 생산하는 킬마녹 공장에는 근무 연수가 30년 이상 된 근로자가 100명이 넘는다.
스카치 위스키는 장기간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원액의 수급이 중요하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탁월한 기술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세계인들의 입맛과 문화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므로 명품을 대중화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스카치 위스키의 명품 조니 워커는 다방면에서 연구할 만한 흥미 있는 브랜드다.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인 조니 워커는 1820년 탄생했다. 조니 워커의 브랜드 파워는 180여 년이 지난 오늘날도 막강하다. 조니 워커는 지난 50여 년 동안 판매량 1위 자리를 고수하면서 계속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지난해 조니 워커의 총 판매량은 1,100만 상자(9ℓ기준)로 2위인 제이앤비(J&B)의 800만 상자와 큰 격차를 유지했다. 조니 워커는 스카치 위스키의 세계화를 이끌었으며 생산 면에서 고품질화와 탁월한 마케팅 활동은 늘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존 워커는 1820년 스코틀랜드 서남부 킬마녹에서 위스키 사업을 열었다. 존 워커는 탁월한 블렌더로서 스코틀랜드 전역의 위스키 원액을 매입해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개발했다. 그의 자손들은 수대에 걸쳐 사업을 계승 · 발전시켰다. 존 워커의 손자인 알렉산더는 1908년 조니 워커의 심벌인 ‘활기차게 걷는 사람(Striding Man)’을 창안해 상표로 도입했다. 알렉산더는 조니 워커 브랜드에 새롭고 독특한 개성을 불어넣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를 찾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한 만화가와 함께 점심을 먹다가 그가 메뉴 카드 뒷면에 그린 그림에 눈이 번쩍 뜨인다. 활기차게 걷는 사람은 이렇게 ‘발탁’됐다. 이 그림은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조니 워커의 기업문화와 잘 어울렸다. 도안의 밑에는 ‘1820년에 태어나 아직도 힘차게 걷고 있다’라는 문구로 장식했다.
조니 워커는 1909년에 블랙라벨과 레드라벨을 도입했다. 블랙라벨은 프리미엄급 위스키로, 레드라벨은 스탠더드급으로 발매했다. 조니 워커는 1차 대전 말기에 세계 120개 국가에서 판매되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알렉산더 워커는 1920년 기사 작위를 받은 뒤에도 위스키 블렌딩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1932년에는 조니 워커 스윙을 개발하였는데 이 병은 흔들리는 배에서도 병이 쓰러지지 않게 고안된 것이었다. 당시는 배를 타고 항해하는 해외 여행을 많이 해서 조니 워커 스윙은 긴 항해에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영국 왕실은 1933년 조니 워커를 공식 만찬주로 지정했다. 조니 워커는 2차 대전 말에 이르러서는 세계 판매량 1위 자리를 확고히 했고, 오늘날까지 위스키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고 있다. 조니 워커는 1990년대에는 조니 워커 골드와 블루를 개발해 스탠더드로부터 슈퍼 프리미엄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객의 입맛을 충족시키고 있다.
조니 워커가 이러한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장인들의 탁월함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우수한 원액의 확보와 탁월한 블렌딩 기술 없이는 명품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니 워커 가족은 스페이 강 유역의 카듀(Cardhu) 증류소를 중심으로 27개의 몰트(Malt) 증류소와 2개의 그레인(Grain) 증류소를 소유하고 있다. 조니 워커는 세계 최대의 원액 보유사로 스코틀랜드 전역의 수많은 천사들에게 향기로운 위스키를 공급하고 있다(위스키 원액 숙성이 목통에서 증발되는 부분을 ‘천사의 몫’이라고 부른다).
조니 워커를 생산하는 킬마녹 공장에는 근무 연수가 30년 이상 된 근로자가 100명이 넘는다.
스카치 위스키는 장기간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원액의 수급이 중요하고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려면 탁월한 기술과 끈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세계인들의 입맛과 문화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므로 명품을 대중화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스카치 위스키의 명품 조니 워커는 다방면에서 연구할 만한 흥미 있는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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