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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 호황산업의 코드 ‘웰빙’

불황기 호황산업의 코드 ‘웰빙’

일러스트:조경보·siren71@hitel.net
'웰빙’(well-being). 좀 더 광범위한 의미의 영어 단어로 ‘웰니스’(wellness)도 쓰인다. 우리나라 말로는 한 단어로 번역할 수가 없다. 가장 짧게 말하면 ‘잘 먹고 잘 살기’다. 하지만 이 말은 너무 짧아 오해의 소지가 많다. ‘배부르게 먹고 신나게 놀자’나 ‘보란듯이 돈을 써 비싸고 고상한 음식을 먹고 비싼 놀이를 즐기자’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수천만원대의 회원권으로 헬스클럽을 다니거나 골프를 쳐야 ‘한 웰빙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웰빙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말은 이런 해석과는 사뭇 다르다. 삶의 방향은 ‘몸과 마음의 균형 있는 건강’을 추구하며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래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에게 몸의 건강은 마음의 건강 없이는 허구일 뿐이다. 몸과 마음의 조화, 평화로운 휴식, 자연을 더 가까이 하는 삶, 그것이 웰빙의 삶인 것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이들의 소비행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케팅조사 전문업체 인포서치의 최성기 사장은 “치열한 경쟁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는 욕구가 큰 웰빙족은 자기 삶의 가치를 구현시켜 주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다닌다”며 “욕구가 큰 만큼 다른 부분의 소비를 아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할 것”으로 분석했다. 몸과 마음의 균형 잡힌 건강·평화·휴식·자연·생명, 또 관련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강한 욕망… 결론적으로 이런 것들이 웰빙의 코드다. 웰빙을 먹고사는 ‘산업’의 코드도 여기에 있다. 주부 김씨(36)를 보자. 새벽 6시에 일어난 그는 가장 먼저 ‘송차갑 삼쌀’을 씻고 밥을 앉힌다. 순국산 곡물 12가지를 먹기 좋게 빻고 이상적으로 배합한 이 쌀은 최근 홈쇼핑 업체에서 크게 히트한 대표적인 건강 쌀이다. 소비자로부터 건강과 맛의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씨가 준비한 아침식단은 철저하게 ‘건강’에 주안점을 뒀다. ‘송차갑 삼쌀밥’ 외에도 채소나 계란·두부 등 찬거리 대부분이 ‘무공해’다.

건강 쌀에서 건강 베개까지 밥을 앉히고 아침상을 차리기 전 그는 요가와 명상을 즐긴다. 요가와 명상에 드는 시간은 40분 남짓. 김씨는 “명상을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은 컨디션에 큰 차이가 난다”며 “요즘은 가급적 매일 아침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발매된 몇몇 요가 테이프는 TV 옆에 구비해 놓고 틈나는 대로 보고 따라하고 있다. 아이들 비누나 칫솔 하나하나에도 가족 건강을 생각하는 김씨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비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천연비누를 써 왔고, 1년 전부터 칫솔은 치아 구석구석을 닦아주고 마사지해 주는 전동칫솔로 바꿨다. 아로마향을 피워 집안에서는 아로마향이 은은히 퍼진다. 딸 아이에게는 아로마향 목걸이를 걸어줬다. “아이들 건강에 좋다”는 것이 김씨 설명이다. 김씨는 또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난 후 설거지를 마치면 건강을 위한 한 가지 일을 더 하게 된다. 바쁜 일이 없는 한 8시 30분쯤이면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 40∼50분을 달리는 것이다. 그의 아파트는 헬스클럽이 필요 없을 정도다. 러닝머신과 스테퍼, 작은 역기에 아령까지 구비돼 있다. 그리고 나서야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웰빙족 김씨를 보면 웰빙산업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먹을거리다. 건강식품 열풍이 분 것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최근 김씨와 같은 웰빙족이 늘면서 보다 균형잡힌 영양과 자연을 강조하는 건강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저칼로리 음식에 각종 유기농 식품들, 여기에 이유식까지 ‘유기농바람’이 불고 있다. 전동칫솔은 웰빙족이 즐겨찾는 치아건강상품의 하나다. 일반 칫솔보다 치아건강에 좋다는 평과 함께 히트상품 반열에 올랐다. 업계는 각 대형할인점에서만 연간 1백%가 넘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대만족이다. 한국피엔지가 내놓은 저가의 건전지 장착용 전동칫솔 ‘크레스트 스핀 브러쉬’는 출시 5개월 만에 1백만개 이상 팔려 대박 상품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웰빙족이 늘면서 전동칫솔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씨가 관심을 갖고 있는 메모리폼 베개는 체온에 따라 인체에 반응해 목의 압력을 줄여주는 기능성 베개다. 올 들어 꾸준한 인기를 보이자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서는 아예 ‘메모리폼 베개와 매트리스 모음전’을 열었다. 신세계 이마트 등 각종 홈쇼핑·인터넷쇼핑에서 인기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매출 신장세도 놀라울 정도다. 또 건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비타민이다. 김씨처럼 비타민을 상용하는 웰빙족들이 늘어나는 덕에 이미 주요 홈쇼핑에서 비타민류 매출이 식품 부문 상위에 올라 있다. 이들은 마실 것에서도 ‘건강’을 따진다. 건강을 지켜주는 음료로는 과일음료가 제격이다. 체지방 제거 효과를 강조하는 롯데칠성의 건강음료 ‘플러스 마이너스’는 웰빙족들이 즐겨 찾는다.

비타민·과일음료도 히트 상품 향기산업은 두말할 것도 없는 웰빙산업이다. “집·자동차·사무실에서 퍼져나오는 은은한 향기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일상생활의 격을 높여준다”는 것이 김씨 등 향을 즐겨찾는 웰빙족의 생각이다.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감기를 막아주는 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이들을 위한 제품은 향산업의 틈새시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로마는 다양한 천연 식물에서 뽑은 에센셜 오일로, 오일 자체뿐 아니라 훈증기나 향초 형태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넷 아로마 판매업체 아로마앤라이프(www. aromanlife.com)의 지미영 사이트관리팀장은 “웰빙족의 증가로 매출 증가를 기대한다. 최근에는 특정 목적을 갖고 향을 사용하는 이용객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감기예방에는 유칼립투스, 잠이 잘 안 올 때는 라벤다가 도움을 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웰빙산업은 김씨와 관련된 것 훨씬 이상이다. 김씨가 하지 않는 것 중 두드러진 것이 스파다. 흔히 온천이나 목욕탕을 연상시키던 스파는 최근 1∼2년 사이 웰빙족의 급증과 함께 본래의 제 모습을 찾고 있다. 스파의 핵심은 물·색깔·소리·빛·향기와 뜨거운 돌 등을 이용한 마사지나 피부관리 등을 통해 심신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외국 휴양지를 찾는 부유층 사이에서 자주 거론됐지만, 최근 바쁜 일정에 쫓기다 잠시 휴식을 즐기고 싶어하는 샐러리맨 등 중산층에까지 번져가고 있다. 발관리 산업도 웰빙족 출현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다. 발관리 사업이 ‘된다’는 얘기에 7~8년 전 시작된 발관리산업이 이미 포화 직전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발에만 신경을 쓰던 발관리 매니어들로 꾸려온 사업이 이제 균형 잡힌 건강을 추구하는 웰빙족들이 대거 합류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패션이나 화장품 업계가 이처럼 좋은 시장을 그냥 놓아둘 리가 없다. 업계는 자연·천연·생명·건강을 캐치프레이즈로 과감한 신상품을 내놓고 있다. 듣기에 따라서는 해괴하기까지 한 제품도 내놓고 있다. 콩 단백질로 만든 천연섬유에 실크를 혼방했다는 ‘소이빈 실크 스웨터’, 은을 이용한 ‘실버 플러스 수트’, 옷감에 비타민을 녹인 ‘비타민 수트’, 옷과 몸 사이에 공기를 순환시키는 ‘에어컨 수트’ 등 웰빙족을 겨냥한 기상천외한 상품이 시장에 나왔다. 직접 피부와 맞닿는 내의 업계 역시 웰빙상품을 불황 극복의 신상품으로 꼽고 있다. 좋은사람들은 콩 단백질을 이용한 내의 ‘콩의기적’을 내놓았고, 쌍방울 트라이는 은행내의와 은내의를 선보였다. 생명력을 강조하는 바이탈 화장품이 성공을 거둔 것 역시 웰빙족의 등장 때문이다.

헬스·휘트니스, 웰빙으로 전환 중 헬스·휘트니스 센터는 급하게 ‘웰빙’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중이다. 체력보강·근력강화·건강유지를 목적으로 하던 헬스·휘트니스 센터는 올 들어 요가나 체조·스파·피부관리 등을 합쳐 ‘웰빙센터’ 또는 ‘웰니스 센터’로 거듭나고 있다. ‘몸’ 건강에서 ‘마음’ 건강까지 책임지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웰빙족들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웰빙족은 잡지시장까지 파고들었다. 지난 8월 두산그룹 계열 두산잡지는 국내 유일의 웰빙 라이프 잡지로 ‘얼루어’(www. allurekorea.com)를 창간했다. 지난 10월19일 얼루어는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웰빙족 대상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며 웰빙족 대변지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 박지선 얼루어 편집장은 “성장일로에 있던 건강·뷰티산업이 ‘웰빙’이라는 우산 하나로 모여들었다. 더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 흐름이어서 웰빙 관련 잡지가 필요해졌다”고 창간 취지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적잖은 뷰티·건강산업을 웰빙산업에 포함하고 있다. 송대길 대홍기획 광고기획 부국장은 “손톱관리를 주업으로 하는 네일업체들, 산소카페·헤어 케어 등 각종 산업이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방향을 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전혀 새로운 개념의 퓨전사업도 ‘웰빙’을 슬로건으로 선보일 채비를 하고 있다. 한방과 찜질 시스템을 결합시킨 ‘파낙스’라는 웰빙센터를 준비 중인 케이앤에이프리첼의 최준석 이사는 “웰빙족의 등장은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퓨전산업을 이끌어낼 것”으로 전망했다.

‘웰빙’, ‘웰빙산업’은? ‘웰빙’(well-being)은 부르조아와 보헤미언의 합성어인 ‘보보스’나 자녀 없는 맞벌이 부부를 지칭하는 ‘딩크’처럼 새로 만들어진 단어는 아니다. 사전에서는 ‘안녕’ ‘행복’ ‘복리’로 규정하고 있다. ‘좋다’는 의미의 ‘웰’(well)의 명사형인 ‘웰니스’(wellness)도 비슷하다. 이것이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굳어진 것은 10여년 전. 미국에서 건강과 생식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자는 메시지를 담게 됐다. 이후 미국, 특히 뉴욕에서 ‘웰빙’은 ‘요가와 자연을 즐기는 세련된 젊은층’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국내에서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지난 1997년 친환경적인 화장품 ‘아베다’가 수입되면서부터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2∼3년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2001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뷰티가 일상생활의 주요 코드가 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웰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때를 올해 이후로 본다. 식품·의류·피부관리·향·스파 등 건강과 관련된 상품에 다양한 관심을 보이는 인구가 늘면서 ‘웰빙’이라는 용어가 급속도로 파급됐다는 것이다. 최근의 건강·뷰티산업이 ‘웰빙산업’으로 재편되는 움직임까지 포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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