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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휘청대는 유럽

술에 취해 휘청대는 유럽


Is Europe Drinking Too Much?

에게해의 그리스령 로도스섬에 있는 휴양도시 팔리라키. 영국 서머싯에서 휴가를 온 제마 거닝(18)은 베드록 클럽에서 베일리스 아이리시와 아이스크림을 섞은 ‘초콜릿 머드파이’로 첫잔을 시작했다. 알콜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듯한 칵테일이었다. 거닝은 칵테일을 열잔 정도 더 마신 뒤 보드카와 과일주스를 섞어 큰 사발에 가득 채워 내오는 ‘피시볼’까지 들이켰다. 그러고는 이 술집에서 월요일마다 열리는 비키니 콘테스트에 신청했다. 그녀는 “누구나 마음껏 즐기는 휴양지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다고 놀랄 사람은 없었다”고 돌이켰다.

승부욕이 발동한 거닝은 브래지어 대신 술집 홍보용 스티커를 가슴에 붙였다가는 나중에는 그것마저 떼어 버렸다. 열광한 클럽 손님들은 그녀를 1위로 뽑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상’은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사복으로 위장한 경찰들이 나타나 풍기문란 혐의로 그녀를 체포했다. 현지 주민들은 거닝을 동정하지 않았다. 거닝처럼 술을 마시고 소동을 피우는 유럽 젊은이들이 패키지 투어로 팔리라키를 찾기 시작한 1998년 이래 강간이 2배로 늘고 거리 싸움이 잦아지면서 경찰서도 없을 정도로 평온하던 마을이 ‘휴가 지옥’이라는 악명까지 얻게 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냥 짜증이 난 정도가 아니다. 이아니스 이아트리데스 팔리라키 시장은 지난 여름 영국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민들이 아주 질려버렸다. 한밤중에 젊은이들이 인사불성으로 취해 홀딱 벗고 돌아다닌다. 음란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유럽 전역에서 음주 문화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유럽 성인들은 전보다는 술을 덜 마신다. 와인 없이 살 수 없다고 믿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반대로 10대들의 음주는 계속 늘고 있고 음주 시작 연령도 낮아지고 있다.

게다가 그냥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들이붓는 식이다. 요즘의 유럽 청소년들은 주말이면 10잔 이상은 기본이다. 그로 인해 음주운전·청소년 범죄·자살·싸움·10대 임신 등에 따른 사회적인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주류 업계의 멋진 광고, 청소년을 타깃으로 하는 신개념 알콜 음료, 10대 영화나 레이브 파티를 통해 퍼지는 광란 파티 문화, 주류 업체가 후원하는 록 페스티벌 등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통계 수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영국의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마시는 술은 일주일에 맥주 2천5백cc 정도로 10년 전의 2배다. 18~29세 아일랜드 남성의 59%와 여성의 26%가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폭음을 한다.

덴마크의 15세 청소년 중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 술을 마시는 비율은 1988년에 비해 여성은 20%에서 39%로, 남성은 37%에서 50%로 증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1990년 조사에서는 12~18세 청소년 중 음주자가 45%였지만 지금은 70%다. 그리고 이제는 와인만이 아니다. 설문 응답자의 반은 독주로 ‘종목’을 바꿨다고 답했다. 더구나 11세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응답자가 여성의 경우 70%, 남성의 경우 80%나 된다.

동유럽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한때 공산국가였던 이 지역의 주류 소비량은 늘 높은 편이었지만 지금은 음주량이 한층 폭증하고 있다. 청소년층의 음주가 리투아니아에서는 4배, 체코에서는 2배, 슬로바키아에서는 25% 늘었다. 헝가리에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알콜 중독이 3배로 늘었으며 음주를 시작하는 나이도 예전에 17~18세였던 것이 이제는 12∼13세로 낮아졌다.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체코 프라하의 술집들은 광란파티만을 목적으로 몰려드는 서유럽 관광객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만이 도가 지나친 폭음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맥주 값이 일반 음료보다 저렴한 체코에서 응급실에 실려오는 청소년 가운데는 11세짜리도 눈에 띈다. 술을 먹고 자신이 토해 놓은 것 위에 쓰러져 있는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해 데려다 놓고 가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술바람’이 일고 있는 것일까? 동유럽의 경우 공산체제에서는 없던 현란한 광고, 야외 축제, 마케팅의 폭주가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서유럽의 경우도 같은 것이 원인으로 인식된다. 20대 이상의 유럽인들이 럼이 들어간 모히토나 열대 지방의 피냐 콜라다 같은 이국적인 칵테일을 다시 즐기기 시작한 반면 주류 업계는 10대를 공략하기 위해 초보 음주자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신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인기있는 것이 ‘알코팝’이나 ‘브리저’라고 불리는 알콜 함유량이 높은 달콤한 과일맛 혼합 음료다. 상표도 ‘마이크스 하드 레모네이드’·‘테퀴자’·‘서블라임’·‘후퍼스 후치’ 등으로 산뜻한 느낌을 주고 포장도 현란하다. 음료와 독주를 반씩 섞어 만든 이 술은 마시기에 부담이 없기 때문에 빨리 마실 수 있다. 이 음료들의 주요 타깃은 어린아이들이다. 이탈리아 청소년 음주 상설 감시단의 시모나 아나브는 “어떤 어른이 형광색이 나는 과일맛 음료에 끌리겠는가?”고 지적했다.

음주는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광고주들만 비난하는 것은 공평치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단일시장화로 주류 가격이 인하됐다거나 세계화 추세의 영향도 음주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청소년 음주는 유럽에서 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가장 많이 부추기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매일 아침 접하는 시리얼 상자에 나오는 만화 캐릭터보다 버드와이저의 마스코트 개구리를 더 잘 안다. 아일랜드 연구진들도 광고에 대한 청소년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기네스와 버드와이저 같은 주류 광고가 모든 소비재 광고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아울러 주류 업체가 철야 댄스파티·레이브·음악 콘서트·스포츠 행사 등 10대들에게 인기있는 행사들을 후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따라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쪽은 당연히 주류업계다. 영국의 양조회사 포트먼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진 쿠신스는 “술을 사거나 마시는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광고 외에 많다. 연구자들은 광고가 브랜드 교체에는 강력한 효과가 있지만 소비에는 상대적으로 미약한 영향을 준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가장 인기있는 알코팝 브랜드를 많이 생산하는 바카르디사는 거듭된 인터뷰 요청을 묵살했다.

알코팝이 보편화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알코팝은 1990년대 중반 영국·아일랜드(유럽에서 10대 음주율이 가장 높다)에서 첫선을 보였다. 런던 소재 시장분석업체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알코팝은 그 이래 연간 21%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청소년 문화의 유행을 매년 조사하는 암스테르담대의 더크 코프 박사는 “브리저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이 됐다”고 말했다.

또 브리저는 수많은 보조 산업 성장에도 일조했다. 영국·아이슬란드 등지를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할인 항공사가 속출하면서 해외에서 술파티를 찾는 사람들(주로 청소년들)에게 할인 패키지 여행을 제공하고 있다. 또 그런 고객들을 위한 바와 나이트클럽이 모스크바·프라하·그리스·마드리드에서 많이 생겨났다. 지중해 서부 마조르카섬에서부터 크레타섬에 이르기까지 유명 유흥지에서는 걸핏 하면 싸우고 문간에서 소변을 보며 거리에서 술을 마셔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흔히 눈에 띈다.

로도스섬의 팔리라키에서는 올해 초여름 17세 영국 소년이 깨진 병으로 살해당했으며, 다른 14명이 체포됐다. 로마에서는 매일 밤 그림처럼 아름다운 광장의 계단에 10대들이 모여앉아 술을 들이키며 쇼핑객·관광객, 심지어 수녀들까지 희롱한다. 로마 중심부 캄포 데이 피오리의 길모퉁이 바인 드렁큰 십의 한 웨이트리스는 “골칫거리다. 그들은 병을 던지고 우리 고객들에게 침을 뱉는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는 젊은이들이 도심 광장을 점거해 ‘엘 보텔론’(큰 병)이라는 철야 술파티를 연다. 거기서는 알코팝의 아류인 칼리모초(콜라에 적포도주를 섞은 술)가 주종이다. 데이터모니터에 따르면 젊은 스페인 여성들의 술 소비는 1999년 이래 31%나 늘어 유럽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2007년에는 60%가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영국의 젊은 여성들이 2002년 1인당 2백3ℓ를 마셔 유럽 최고다. 스페인은 72ℓ).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젊은 층 음주자가 지난 10년 동안 80%나 늘어난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음주가 “주말 밤 치명적인 교통사고”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한 전문가는 지적했다. 아일랜드에서는 알콜 관련 암이 증가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년 동안 젊은 층에서 알콜 관련 사망이 세배로 증가했으며 현재 응급실 환자의 40%가 알콜과 관련이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서유럽에서 15∼29세 남성 사망의 약 4분의 1이 알콜과 관련이 있다. 동유럽에서는 3분의 1로 비율이 더 높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의 알콜 남용으로 인한 금전적 비용을 연간 2백1억파운드로 계산한다. 범죄와 질서 혼란으로 발생하는 직접 비용이 73억파운드, 그리고 그런 범죄로 인한 인적 및 사회적 비용이 47억파운드다. 영국에서 알콜 관련 폭력은 연간 1백20만건으로 추정되며 폭음에 따른 결근 일수는 약 1천7백만일로 추정된다.

대다수의 유럽 정부들은 이런 기막힌 통계치와 막강한 주류업계의 로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정부는 유럽연합(EU)의 국경에 점점 허점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밀수를 줄이려면 주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업체들의 주장에 굴복했다. 그 결과 낮은 가격으로 10대들이 술을 구입하기가 더 쉬워졌다. 그러나 많은 EU 국가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보건부는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술광고를 금지했다.

스위스 의회는 지난 9월 알코팝 1병에 1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덴마크 의회는 1998년 사상 최초로 주류 구입 최저 연령을 15세 이상으로 제한했다. 폴란드 의회는 2001년 청소년 음주를 줄이기 위해 엄격한 반알콜중독법안을 통과시켰다(폴란드의 경우 11∼15세의 71%가 적어도 한번은 술을 마신 적이 있다고 말했다). 골자는 양조회사의 광고와 스포츠 후원을 엄격히 제한하고 여러 가지 주류세를 추가하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음주운전 허용 수준을 낮추고 주류에 경고문을 더 많이 부착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 버티 에이헌 아일랜드 총리는 양조회사들에 “알코팝의 제조·수입·유통·판매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한 행사장에서 업계 대표들에게 “EU의 내부시장 규정 아래서는 정부가 그런 주류를 금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당연히 알코팝을 금지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새로운 종류의 알콜을 찾는 청소년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성가신 잡음에 불과하다. 또 아직은 유럽의 젊은이들이 술을 사고 마시는 것이 너무도 쉽다. 13세 동갑인 티나와 마야에게 물어보자. 최근 어느날 그들은 코펜하겐 교회의 한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보드카·맥주·바카르디 브리저·스미르노프 아이스의 상대적인 장점을 토론했다.

티나는 “때로는 술에 취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재미삼아 술을 마신다. 또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나도 마신다”고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정부와 부모들이 음주가 알콜 중독 및 수많은 사회 병폐를 일으킨다는 점을 청소년들에게 인식시키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유럽은 길고 고달픈 숙취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듯하다.

With KATKA KROSNAR in Prague,
BARBIE NADEAU in Rome, STEFAN THEIL in Berlin, CHARLIE FERRO in Copenhagen, TEMMA EHRENFELD in New York,
MARIE VALLA and ERIC PAPE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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