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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脫학교생들’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脫학교생들’

"한때는 학교를 나오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대학을 나오지 못한 나는 바보가 되는 줄 알고/ 정해진 나이에 정해진 코스를 밟아가지 못한 나는/ 차가운 우주의 고독 속에 갇히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이미 쓸모없어져 버린 그 고민들과/ 이제는 더 이상 관심 없어져 버린 그 삶들이/ 내 곁을 떠나 내 안에서 흩어지는 걸 볼 때/ 이미 나는 너무 다른 사람. 아무도 보지 못한 우주 속에 춤을 추고 있는/ 소담이처럼 나도 새로운 아이”(원이의 자작시)

원이(22·문지원)는 1999년 여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만두지 않고 잘 다녔으면 소위 명문대에 진학할 만큼 공부를 잘했던 원이가 자퇴를 결심한 이유는 “무기력한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였다. “가르치는 즐거움을 잃어버린 선생님들과 배우는 기쁨이 없는 학생들이 가득한 교실”은 원이에게 지옥과 같은 곳이었다. 원이는 미련없이, 그리고 대책없이 학교를 ‘탈출’했다. 원이의 어머니와 자신도 고등학교를 자퇴한 경험이 있던 담임교사가 자퇴를 극구 말렸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학교를 그만 둔 뒤 원이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하자센터’를 찾았다. 이 곳은 연세대 사회학과 조한혜정 교수가 서울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청소년 문화학습 공간으로 1999년 12월 문을 열었다. 센터는 청소년들이 매체를 이해하고 장차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영상, 대중음악과 공연, 생활디자인, 웹 등을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원이는 하자센터의 초기 멤버로 참여하면서 자신이 꿈꾸던 영화감독의 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단편영화 두편을 제작했고, 기성 작가와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도 얻었다. 학창시절 친구가 없던 원이는 하자센터에서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던 동료들을 만났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같이 성장했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원이는 이제 의젓한 매체 비평가이자 영화 제작자로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하자센터는 원이처럼 ‘탈학교생’(대안학교에선 자퇴생이란 표현 대신 탈학교생이라 부른다)들의 성장과 이들의 도움, 그리고 교사들의 헌신으로 센터 내 소규모 공부그룹을 발전시켜 2001년 9월 ‘하자작업장학교’를 세웠다.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은 학교지만, 교사들과 학생들은 독특한 수업방식과 내용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기존 교육 시스템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실험하고 있다.

학생들은 평균 3년 동안 ‘자신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단계별(길찾기-주니어-시니어 과정)로 완성해야 하며, 기업에서 인턴십 과정을 거쳐야 하고, 외국의 포럼에 참가하는 등 글로벌 프로젝트도 수행해야 한다.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은 하자학교는 드디어 2003년 12월 18일 첫 졸업생 세명을 배출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원이, 디자인 네트워커가 되려는 남이(21·김남이), 평화운동을 위한 문화 기획자로 살려는 제리(21·박재식)는 1백여명의 친구들과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졸업장을 받았다.

6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하자학교의 졸업식은 축제였다. 세명의 졸업생이 만든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가 상영됐고, 조한혜정 교수와 간디학교(대안학교) 양희규 교장의 대담이 진행됐다. 소박한 저녁 식사 자리도 있었고, 졸업생들의 ‘멘토’(조언자) 역할을 했던 어른들이 나와 학생들의 성장사를 들려주기도 했다. 하자학교의 교장 조한혜정 교수는 “석사나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를 내보낼 때보다도 공식 졸업장 없이 졸업하는 이들을 내보내는 것이 더 마음이 놓인다”며 “누구의 앞길도 순탄할 수 없는 ‘위험 사회’에서 이곳을 졸업하는 아이들은 새로운 시대를 살 수 있는 내공을 갖춘 아이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조한혜정 교수가 말하는 새로운 사회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의 후기산업사회다. 대량생산체제 시절 교육은 대량생산 시스템을 운영할 학생들을 대량으로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기호가 다양해지면서 기업은 이미 다양한 품목을 소량으로 생산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교육만 이런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한 채 근대적인 산업생산체제에 갇혀 몰개성의 아이들만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의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인 세상에서 교육은 여전히 사회의 변화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고 조한혜정 교수는 지적한다. 어쩌면 멀지않은 미래에 하자학교 졸업식처럼 모든 학교가 매일 조금씩 졸업생을 배출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겉으론 수줍은 소녀 같지만 할 말은 똑부러지게 하는 남이는 중학교 때까지 학교를 좋아하고 잘 다녔던 아이였다.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낸 남이가 학교에 염증을 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고등학교 선생님은 남이를 이름 대신 학급 번호 ‘16번’으로 불러주었다. 사제지간에 속 깊은 대화도 없었다. 그저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생활이 반복되자 남이는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디자이너를 꿈꾸며 다녔던 학원 생활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학원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남이는 학원 강사들로부터 “네 스타일을 고집하지 마라. 그러면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충고만 들었다. 학교와 학원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남이는 결국 학교와 학원을 그만두었다.

학교는 그만두었지만 “고등학교는 나와야 한다”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한달에 두번만 나가면 되는 방송통신고등학교로 옮겼다. 시간을 번 남이는 하자학교를 찾았다. 학원 생활의 실패로 디자이너의 꿈을 접었지만 남이는 하자학교에 와서 다시 디자이너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남이는 하자학교 동료들과 ‘교복찢기 퍼포먼스’ 등을 연출하고 기획하면서 디자인이란 남과 내가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자 다시 디자인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 미술관을 찾아 작품을 보고 판돌이(‘학생들에게 공부하고 노는 판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하자학교에서 교사를 가리키는 애칭)들과 토론도 했다. 때론 미술관을 빌려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남이가 디자인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하자학교만의 특별한 수업 덕분이었다. 남이의 담임교사 김희옥(이화여대 철학박사)씨가 진행한 ‘온라인 문장 사전 만들기’는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문장을 찾아 단어의 뜻을 이해하는 목적으로 만든 프로젝트(수업을 뜻하는 말)였다. 초기에 남이나 원이 등 10대들이 수집한 단어는 “쌩 까다”(거짓말 하다)·“쌔끈하다”(섹시하다) 등 주로 은어였다. 모범생으로 보인 담임교사에 대한 10대들의 텃세이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10대들이 가져온 은어가 한달만에 동이 났다는 점이다.

김희옥씨는 “아이들은 언어의 고갈 상태를 맛봐야 했고, 일반적인 상용 어휘에 더 주목하게 됐다”며 “새로운 단어를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7개씩 자신이 좋아하는 문장을 찾아 친구들과 토론했고, 이를 자신들의 언어로 소화했다. 남이는 이 학습을 통해 ‘디자인은 남과 나의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제리 역시 하자학교에 와서 자기의 길을 찾았다. 제리는 중학교 때부터 콘서트에서 음향 기술자로 실력을 발휘한 ‘튀는 아이’였다. 음향 기술 분야의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전문가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제리는 2000년 봄, 고등학교에 다니는 것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퇴서를 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유를 찾아보니 대학 진학과 친구 사귀기밖에 없었어요. 친구는 어디서든 사귈 수 있고, 또 대학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바에는 고등학교 과정이 필요없다고 생각했어요.”

좀 더 빨리 음향 전문가가 되는 방법을 찾고 있던 제리는 하자학교에 와서 목표를 바꾸었다. 하자학교 내 각종 행사를 기획하던 제리는 음향 엔지니어로서 실력을 발휘했지만 정작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 왜 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지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제리가 하자학교 내 수업의 일환으로 참가한 CBS TV의 3개월 인턴십 기간 중 ‘반전운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연을 통해 자신이 생각한 반전운동을 표현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문화란 사람들이 함께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제리는 2003년 3월부터 6월까지 대학로에서 평화 기원 반전 콘서트를 기획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단순한 테크니션에서 문화 기획자로 큰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하자학교가 탈학교생들에게 천국과 같은 곳은 아니다. 어쩌면 공부하기가 더 어려운 학교일지 모른다. 스스로 과제를 찾고, 친구를 설득해 하나의 프로젝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들과 교사들의 신랄한 평가도 받아야 한다. 원이는 하자학교의 생활을 “더 이상 핑계를 댈 데가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선택한 이상 힘들어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원이는 종종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다. 원이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가도 곧잘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지기 일쑤였다. 교사들과 함께 하는 작업에서 이탈하기도 했고, 원인을 물어도 문제가 무엇인지 대답하지 않았다. 원이의 멘토이자 전 하자학교 교사였던 양선영씨는 “당시 원이 때문에 영향을 받아 나 역시 10대때의 끔찍한 좌충우돌 경험을 다시 겪어야 했다”며 “너무 힘들어 원이와 잠시 소원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개성이 강한 원이는 첫 영화 ‘바다를 간직하고’를 계획할 무렵 담임교사 김희옥씨의 따끔한 지적에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자퇴 10대 소녀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 시나리오를 보자 김희옥씨는 “왜 아직도 너는 문제점에서만 맴돌고 있니”라고 충고해주었다. 충고를 듣고 원이는 새로 시나리오를 썼지만 “여전히 문제의 늪에 빠져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급기야 “담임이면 격려를 해줘야 하지 않느냐”며 대들었다. 김씨는 “담임이 때론 지적도 하고 격려도 해야 했는데 당시엔 그러지 못했다”며 “원이가 담임은 박수치는 조언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10대들과 교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갈등은 술과 담배다. 이 문제 역시 하자학교에서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10대들은 “18세 이상이면 흡연할 수 있다는데 도대체 17세와 18세는 무엇이 다르냐”고 성토했다. 공청회 끝에 공식 모임에서는 교사든 학생이든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과 흡연은 공용장소에서만 하고 숨어서는 하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 10대들과 교사간에 공부시간 문제도 불거져 나왔다. 하자학교는 청소년문화센터여서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10시면 닫는다.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창의적 작업에 매달리다보면 늦게 갈 수도 있다.

우리 삶은 우리 것”이라며 24시간 오픈을 요구했다. 1년을 넘게 교사들과 학생들의 입씨름이 있었지만 결국 “햇빛과 사이클을 맞추는 삶의 리듬”이 강조되면서 갈등은 해결됐다.
갈등은 많았지만 자신에게 닥친 문제들을 스스로 풀어내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했다. 원이는 2002년 첫 영화 ‘바다를 간직하고’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서울여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그리고 광주국제영화제 등에 초청 상영됐다. 반응도 좋았다. 그리고 2003년 메시지가 있는 페미니즘 단편영화 ‘헬멧’을 제작했다. 첫 작품을 제작할 때와 달리 원이는 두번째 작품에선 다음커뮤니케이션 등 기업체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기도 했고, 20여명이 넘는 출연진과 스태프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체득하기도 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남이는 하자학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 ‘깔깔체’를 만들어 동료와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소리내어 웃는 듯한 유쾌함’이 담긴 깔깔체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남이가 활동한 명함 제작팀 ‘명함하자’는 10대들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강홍빈 전 서울시 부시장의 명함을 제작하기도 했다. 강 전 부시장은 10대들이 만든 명함으로 외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남이는 점점 더 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남이는 2003년 3월 디자인 전문학원 사디(SADI)에 입학했다. 자신이 하자학교에서 한 작업이 기성 학원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남이는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 디자인학회에서 하자학교에서 배운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화 기획자의 꿈을 꾸는 제리는 2001년 LG카이홀맨 10대 비즈니스 캠프를 공동 기획했고, 2003년 3월 반전 콘서트 ‘맘맘 바이러스’를 연출하고 제작했다. 반전 콘서트를 함께 기획한 조윤섭(39·황신혜 밴드 출신)씨는 “제리가 10대인데도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데 감동을 받았다”며 “어른인 내가 제리에게 의지한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당시 반전 콘서트는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지 못해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 공연이 취소될 뻔했지만, 제리가 끝까지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첫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만큼 많이 배웠다고 고백한다. 교사들은 “어른들은 성급하게 답을 찾거나 답이 있는 체해서는 안된다는 것, 10대가 답답해보여도 그들이 물어 오기 전까지 일러주면 오히려 부작용이 난다는 것, 10대들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으니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원이가 말한 대로 졸업의 의미는 “어떤 마침표”다.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이들은 끊임없는 어려움을 참거나 극복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은 변변한 졸업장없이 이들이 어떻게 험난한 인생의 파도를 헤쳐 나갈지 걱정하겠지만 세명의 졸업생은 “이제 어디서도 배울 수 있는 준비를 끝냈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서로를 지원하고 보살펴준 동료들, 위기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며 성장시켰던 경험이 이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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